< 목록보기

미국 시골마을 시장이 처음 본 외국인에게 예산을 공개한 이유

by

미국 시골마을 시장이 처음 본 외국인에게

예산을 공개한 이유는?


미국 켄터키주 미드웨이 시티의 그레이슨 반더그리프트 시장. 2022년 9월 16일 켄터키대학교 마틴스쿨 학생들과 미팅을 갖고 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나는 지난 8월(2022년)부터 미국 켄터키대학교 행정대학원 마틴스쿨에서 LG상남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수를 하고 있다. 내가 듣는 수업 과정은 마틴스쿨이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별도로 마련한 프로그램인데, 주로 아시아 지역 공무원이 수강생이다.

마틴스쿨은 종종 미국 행정기관을 현장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9월 16일엔 학교의 도움으로 켄터키주에 있는 미드웨이(Midway) 시를 견학하고 시장과 직접 미팅을 할 수 있었다.

먼저 미드웨이 시란 곳을 간단하게 소개해야할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이자 켄터키대학교 소재지인 렉싱턴(Lexington)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떨어진 인구 16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사실 ‘시’보단 ‘마을’에 가까운 규모이지만, 정식 행정 구역 명칭이 ‘City’이기 때문에 ‘시’로 표기한다. 이 도시 이름이 미드웨이인 것은 켄터키주에서 가장 큰 도시 루이빌(Louisville), 그리고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렉싱턴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도시의 시장은 그레이슨 반더그리프트(Grayson Vandegrift)란 사람이다. 올해가 3연임이라고 한다.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주민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반더그리프트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시장 임기는 4년으로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장과 같다.

반더그리프트 시장은 나를 포함한 20여명의 견학단을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았다. 미리 준비한 자료도 나눠주는 등 상당히 준비를 한 듯 했다. 총 3가지 자료였는데, 하나는 미드웨이 시의 역사, 다른 하나는 시 행정 조직에 대해 설명한 것이었다.

여기까진 평범했는데 마지막 세번째 자료가 특이했다. 시의 예산과 집행 현황을 각 항목별로 자세히 설명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총 3페이지로 이뤄진 일종의 표였는데, 올해 예산이 얼마이고 현재 얼마가 남아있는지 센트 단위까지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예를 들어 9월 미드웨이 시 수입은 총 10만 6635달러 1센트였고, 연간 누적으론 118만 3804달러 73센트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더 눈에 띄는 건 예산 집행 내역도 항목별로 모두 공개한 것이었다. 9월에 시장 월급으로 지급한 금액은 4200달러, 공무원에 대한 교육과 출장 경비는 1197달러가 지출됐다고 명시하는 등 어찌보면 민감한 내용도 모두 담고 있었다.


미드웨이 시가 마틴스쿨 학생들에게 공개한 시 예산 집행 현황. 시장 급여 등 모든 지출 내역이 센트 단위까지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런 점이 흥미로워 시장에게 질문을 했다. “왜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 이처럼 시 예산 현황을 자세하게 공개했는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은 국민은 물론 기자도 정부 예산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다.”

나는 오랜 기간 우리나라 예산 편성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를 출입했지만, 예산에 대한 정보는 접근하기 쉽지 않다. 기재부는 물론 예산안을 발표할 때 한가득 보도자료를 내지만, 그들이 알리고 싶어하는 예산만 소개한다. 내가 궁금한 정부 예산을 보려면 기재부 공무원 못지않은 전문 지식을 갖추고 국회에 제출한 수만 페이지 자료집을 일일이 뒤져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 이슈가 된 대통령실 영빈관 신축 예산이 뒤늦게 한 언론사의 단독 보도로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나의 질문에 시장은 “(정부의) 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고, 이를 위해 예산을 공개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이 자료는 시청 홈페이지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모든 행정기관이 저희와 같진 않을 겁니다. 어떤 기관은 예산을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고, 시민이 정보 제공을 요청해도 신문에서 찾으라고 퉁명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나중에 확인한 것인데 미드웨이 시 같은 미국의 작은 지방 정부는 그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고 예산을 공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의식을 갖춘 행정기관과 단체장은 저희처럼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인구 1600명의 작은 마을 시장도 투명하게 공개하는 예산. 우리나라는 어떤 실정인가 생각해본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