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기간 중 여행은 ‘불가피’하다.
연수를 떠나기 전부터 선배 동료들에게서 “여행 많이 하라”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은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미국 여행을 해보겠는가. 브레이크(방학)가 시작되면 너도 나도 여행을 떠나고 한동안 여행 얘기가 만발하는 분위기는 외면하기 어렵다.
1년 미국 연수 기간에 모두 네차례 여행 기회가 있다. 여름에 연수를 시작했다면 생스기빙데이 연휴(11월 중순 일주일), 겨울방학(12월 하순~1월초 2주), 봄방학(3월 하순 일주일), 여름방학(5월말~) 순이다. 괄호안 시기는 미조리주의 경우이고 주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교통편과 길 찾기
내 경우 생스기빙데이 연휴에 플로리다(아틀란타-올란도-펜사콜라 9박10일), 겨울방학에 서남부(라스베가스-LA-샌디에고-엘파소-멕시코 후아레스 14박15일), 봄방학에 동부(워싱턴-뉴욕-보스톤-캐나다 퀘벡-오타와-나이아가라 폴스 12박13일)여행을 했다.
앞의 두 여행은 보유하고 있는 밴을 이용했고 동부 여행은 항공과 렌터카를 이용했다.
항공을 이용할 경우 장시간 운전의 고역을 피할 수 있고 일정을 3~4일 가량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날아가는 구간을 놓친다는 점은 분명한 손실이다.
고되기는 해도 미국 여행은 역시 미국 곳곳을 샅샅이 훑는 느낌의 자동차 여행이 진수다.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놓치기 아까운 여행의 일부다. 기름값이 싸니(도시마다 편차가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한국에 비해 절반 이하)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다만 차량은 승용차 보다는 미니밴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가족 단위 여행에서 승용차로는 장거리 여행이 힘들다. 짐도 제대로 실을 수 없고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장시간 운전에 견디기 어렵다.
보유한 밴이 없다면 렌트하는 것도 방법이다.
프라이스라인닷컴(http://travel.priceline.com) 비딩(경매입찰)을 이용하면 렌트 비용을 25%가량 줄일 수 있다.
동부 여행때 이 방법으로 미니밴(크라이슬러 타운&컨츄리)을 하루 29불, 11일 318불에 빌렸다. 허나 여기에 세금이 절반 가량 붙어 비용은 450불로 뛰었다.
길찾기는 보험사 트리플A(AAA)에서 제공하는 트립틱과 맵퀘스트(www.mapquest.com) 길안내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하는 게 좋다. 연회원 가입시(가입비 70불 가량) 서비스받을 수 있는 트립틱은 도시와 도시간 길 안내를 도로 지도를 곁들여 상세히 알려준다.
여행 떠나기 전 트리플 A 에이전시를 찾아가 경유하는 도시를 순서대로 알려주면 넘기면서 볼 수 있는 작은 책자 형태로 트립틱을 만들어준다. 보통 한두시간이면 만들어주는데 여행 성수기엔 2~·3일 걸리기도 한다.
트립틱은 도시와 도시간 경로만을 알려줄 뿐이어서 정작 도시안 숙소나 관광지 등 구체적 장소를 찾는데는 무용지물이다. 이 때 맵퀘스트의 길안내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맵퀘스트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디렉션’(directions)을 클릭한 뒤 출발지와 도착지의 주소를 입력하면 지도와 함께 상세히 길안내를 해준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 떠나도 복잡한 대도시에서 길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특히 해가 진 경우는 헤매기 십상이다.
내 경우 올란도와 뉴욕 인근에서 한두시간 길을 잃어 고생한 경험이 있다. 모두 해가 진 뒤 발생한 ‘사건’이다. 길을 찾아가는데는 맵퀘스트 길안내 프린트를 들고 있는 조수석 탑승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운전자보다도 그가 먼저 방향을 파악한 뒤 상세한 길들을 찾아 안내해줘야 한다.
숙소 잡기
숙소 예약은 필수다. 예약 없이 갔다가는 방이 없을 수도 있다. 있다고 해도 두배 이상의 비용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숙소 예약시 많은 이들이 프라이스라인 닷컴(http://travel.priceline.com)에서 제공하는 역경매 방식의 비딩(경매입찰)을 이용한다. 비용을 절반까지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두 번째 여행까지는 90%가량 이 방법을 이용했다.
통상 비딩을 통해 방을 예약하면 싼 대신 환불이나 변경이 불가하다. 방의 조건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전망 좋은 방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운이 나쁘면 담배 냄새가 밴 방(흡연이 가능한 방)을 쓰게 될 수도 있다.
내 경우 별 두개짜리인 아틀란타 라퀸타인에서 어쩔 수 없이 흡연이 가능한 방에 묵었는데 당시 카운터 직원은 “비딩을 통해 방을 예약한 손님은 정상 숙박비를 낸 손님에 비해 조건 선택에서 후순위로 밀린다”고 얘기해줬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단 한번 뿐이었다. 대개 전망이 좋지 않은 정도의 방이 주어질 뿐 그 외 조건에서 손해를 본 일은 그 때뿐이다.
환불도 절대 불가한 것은 아니다. 서남부 여행때 폭설로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발이 묶여버렸다. 이 때문에 산타페와 그랜드캐년 사우스림 길목인 플래그스태프 두곳의 숙소 예약이 펑크날 판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프라이스라인 닷컴 소비자 센터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니(연결되기까지 분통터지게 하는 ARS와 20~30분 씨름한 끝에) “천재지변이므로 예외적으로 환불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경비를 최대한 줄이는 경제적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비딩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좋은 숙소를 싸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이게 가장 싼 것만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원하는 숙소가 걸리지 않을 확률, 리스크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지역에 있는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숙소를 원했는데 B지역에 있는, 아침 식사를 제공치 않는 숙소가 잡힐 수도 있다. 이 경우 숙박비를 절반 가량 깎았다해도 아침 식사에 별도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부담이 있으니 이를 합친다면 그리 싸다고 할 수도 없다.
어떤 때는 그냥 예약하는 것보다 별로 싸지 않거나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낙찰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그리 흔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을 몇차례 하고 나니 비딩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졌다. 요즘은 비딩보다는 원하는 조건의 숙소를 바로 선택할 수 있는 expedia.com이나 비슷한 조건, 등급의 숙소를 묶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핫와이어닷컴(hotwire.com)을 함께 이용하고 있다. 이 두 사이트를 열심히 뒤지다보면 원하는 조건의 숙소를 비딩한 것처럼 할인된 가격으로 잡을 수도 있다.
워싱턴 D.C.나 뉴욕처럼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지역의 경우 특히 핫와이어닷컴에서 할인가격으로 제시된 숙소를 예약하는 것이 시간과 돈을 동시에 절약하는 방법이다. 내 경우 이 지역 여행시 숙소예약의 절반을 오랜 시간에 걸쳐 비딩으로 해결했는데 낙찰가도 별로 싸지 않았고 지역도 원하지 않는 곳이 걸려 낭패감에 빠진 경험이 있다.
숙소 등급은 주로 별 두개 또는 세개 짜리를 잡으면 무난하며 지역에 따라 가끔 별 네 개 이상의 고급호텔을 잡아야 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라스베가스의 경우 스트립-프리몬트 스트릿 에어리어에 숙소를 잡는 것이 관광하기에 좋은데 이곳에 별 네 개짜리 호텔이 즐비하다.
숙소 형태로는 일반적인 형태(침실+화장실)의 레귤러 룸과 침실과 화장실 외에 부엌과 거실이 달린 스위트룸(Suite room)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스위트룸이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가격도 레귤러에 비해 반드시 비싼 것은 아니었으며 거의 모두 무료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대개 열흘 안팎, 길게는 20일간의 여행에서 밥을 모두 사먹을 수는 없다. 비용 부담도 그렇고 막상 사먹으려 해도 메뉴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행중 숙소에서 밥을 해먹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 경우 밥 해먹기 옹색한 레귤러 룸(원칙적으로 취사 금지)보다는 스위트룸에서 맘 놓고 밥 해먹는 편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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