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내가 올린 글을 읽다 보면 ‘이래갖고 어디 연수 가겠나’란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미국 대학은 전통의 연수 강호다. 사람들이 왜 유럽이나 캐나다, 호주를 제치고 압도적으로 미국 연수 기관을 찾는지 이유가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 연수를 체험하면서 정말 행복했다고 느낀 베스트 6를 소개한다.
골프를 가족과 함께
골프가 귀족 스포츠여서 대한민국에서는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지만, 미국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퍼블릭 골프장이 굉장히 많고 가격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카트 대여 포함 1인당 25달러까지 가능하다. 물론 시설은 한국의 고급 골프장과 비교할 수 없지만, 백돌이부터 싱글까지 골프 자체를 즐기는 데 전혀 지장 없다.
특히 미국의 골프 시설은 가족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야외 골프 전용 연습장인 ‘탑골프’는 진지하고 엄숙하기만한 국내 연습장과 달리, 엄마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오락 장소다. 햄버거와 피자 등 먹을 게 많고 신나는 팝음악이 나오면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한국의 락 볼링장 같은 스타일이다.
가족끼리 부담없이 주말 라운드도 즐기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 캐리 지역의 ‘Knights’라는 골프 클럽은 파3 전용 골프장인데, 주말이면 가족 단위로 한 게임 즐기러 온 입장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이곳에서는 굳이 비싼 돈 내고 골프 레슨을 거치지 않아도 골프장에 와서 자신만의 괴상한 스윙으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한국도 빨리 퍼블릭 골프장의 대중화가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테니스는 공짜로
스포츠 천국 미국의 진짜 위력은 체육 복지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 테니스를 치려고 하면 서울의 경우 일단 예약이 불가능하다. 간신히 예약에 성공하면, 1시간에 4~5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하지만 미국은 일부 사설 테니스 클럽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모든 테니스장을 무료 개방한다. 관리도 깔끔하게 되어 있어, 한국의 비싼 테니스 시설 못지 않다. 테니스장 시설도 충분히 많아, 굳이 코트 잡기 쟁탈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 교민들의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해 함께 운동을 하면서 이교민 생활의 애환을 듣는 시간은 연수 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 가운데 하나다.
트레이더 조의 맛있는 식빵

처음 미국 연수를 오게 되면 너무도 거대한 미국 마트의 규모와 다양한 먹거리에 문화적 쇼크를 먹게 된다. 잘 알려진 월마트와 코트스트코는 잠시 접어두자. 이미 한국 주부들에게 입소문 제대로 난 트레이더 조라는 마트에 요리와 별 인연이 없는 나조차 푹 빠져 들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트레이더 조의 식빵이 끝내준다. 사실 월마트나 해리스 티터와 같은 대형 마트에서 파는 식빵은 미국 취향이라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팍팍하고 냄새도 별로. 하지만 오랜 리서치 끝에 트레이더 조 전용 식빵을 발견하고 나는 아침마다 토스트기로 빵을 구워 크림 발라 먹는 재미로 하루를 시작한다. 입에 살살 녹는다.
트레이더 조는 간편 가공 식품의 넘버 원이다. 이곳에서 파는 잡채밥 등 각종 볶음밥, 그리고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슈크림 붕어빵은 늦게 가면 매진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가끔 아내 없이 혼자 연수오면 뭘 먹고 살았을까 생각했었는데, 그 고민의 해답은 트레이더 조가 될 듯 하다.
노스 캐롤라이나 연수에서 슬기로운 마트 생활은 집에서 가까운 트레이더 조를 주로 이용하고, 40km 정도 달려서 가야 하는 한인 마트인 H마트를 열흘에 한번 정도 이용하는 것이다. 거기에 스테이크 등 미국산 쇠고기의 가성비를 느끼려면 역시 코스트코 회원권 구입도 권장된다. 웨그먼스라는 마트도 중산층 이상을 타깃으로 한 고급 마트인데, 여기는 싱싱한 해산물과 초밥, 샐러드가 내 입맛에 맞았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많이 떠오르는 생각이 미국 마트에서 음식 사먹는 것 아닐까 싶다.
미국 도서관에서 한국 고전 읽기

연수는 채움의 시간이다. 마냥 놀고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패드에 ‘밀리의 서재’ 구독을 해서 최신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연수 온 지 몇 달 안 되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UNC 중앙도서관에 한국의 명저들이 가득 꽂혀 있다는 것을. 황석영과 이문열, 조정래와 박완서 등 한국 거장 소설가들의 작품들이 빼곡히 책장을 메우고 있었다. 아마 회사 다니면서 소설 읽을 시간 내기는 어려웠을 분 많을 것이다. 연수 때 아니면 또 언제, 내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10권짜리 ‘태백산맥’을 완독해 낼 수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큰맘먹고 도전 중이다. 또 채플힐 공공 도서관이 있는데, 넓지는 않지만 아동들을 위한 책과 공간이 아주 잘 마련되어 있고, 전체적인 톤도 고급 커피숍 같은 느낌이어서 주 1~2회 즐겨찾기 중이다.
렌트카 빌리고 국내선 타기
미국 연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가족과의 여행일 것이다.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른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미국의 명소들만큼은 가보려 했다. 그랜드캐년, 라스베가스, 뉴욕과 워싱턴, 그리고 마애애미 등등. 미국은 여행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항공 스케줄이 충분하다. 국내선 이용의 경우 기준점은 1인당 왕복 300달러라고 보면 된다. 성수기와 좋은 탑승 시간대는 가격이 올라간다. 미국 국내선은 우리나라로 치면 거의 고속버스나 KTX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승하차가 국제선과 달리 심플한 면이 있다.
동부 쪽 가까운 곳을 여행할 때는 집 앞 렌트카 업체 ‘엔터프라이즈’를 이용하는데, 전임 연수자에게 물려받은 구닥다리 중고차를 몰다 상큼한 최신식 차로 렌트해서 로드 트립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 몇 년 있으면 자율주행 차가 렌트카 시장에 본격 진입할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미국 대륙 횡단도 시도해볼만 하지 않을까? 미국 여행의 또 한가지 특징은, 여행 천국답게 숙소가 등급별로 정말 끝도 없이 많다는 것. 여행 임박해서 가격이 특별히 오르거나 하지도 않기 때문에 느긋하게 가성비 높은 호텔을 골라볼 것을 추천한다.
학원 안 가는 딸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미국 연수의 최대 자랑거리는 아이 키우는 환경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딸이 13살에 미국에 건너와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왔는데, 우려와 달리 학교 생활에 120% 만족하고 있다. 언어 장벽이 있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문제이고 무엇보다 학교 교육 커리큘럼에 만족도가 높다. 방과 후 수학 학원 대신 운동장에 나가 마음껏 뛰어노는 경험. 이것은 정말 돈 주고도 못할 최고의 맹모삼천지교라는 걸 미국 연수 생활 내내 절감하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