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우리 딸이 주말 오후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중간 기말 고사 걱정이냐고요? 아닙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라크로스(Lacross) 운동부 선발전인 ‘트라이 아웃’에 대한 설레임 반 그리고 걱정 반입니다. 이번 학기에 여학생 라크로스 팀은 약 20명 선발을 예고했는데, 여기에 합격하기 위해 지난 겨우내 라크로스 개인 교습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유료로’ 틈틈히 받았습니다. 이제 동계훈련에서 갈고 닦은 기량을 트라이아웃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딸 파이팅!
미국 연수와서 가장 색다른 경험을 하실 수 있는 건 아마도 아이의 학교 뒷바라지일 것입니다. 한국과 거의 180도 다른 분야가 한 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그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는 스포츠, 체육 활동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 학교 체육의 시스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미국 학교에는 운동부가 따로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학교의 운동부는 앞으로 운동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전문 선수로 진로를 결정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죠. 나머지 일반 학생들이 방과 후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특활’이라는 다른 용어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미국은 다릅니다. 운동 전문 선수들을 키워내는 운동부 자체가 따로 없고, 일반 학생들 상당수가 방과 후 스포츠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정말 특출한 재능과 열정을 보이고 있는 ‘선수’들은 스포츠 전문 인재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처음 전학 등록을 마치면 학교에서 갖가지 안내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8월 가을 학기 개학을 며칠 앞두고 아이가 다니는 스미스 중학교의 ‘Final Form’이라는 부서로부터 운동부 선발 안내장을 받았습니다. 지난 가을 학기의 경우 미식축구와 축구, 테니스, 배구, 필드 하키, 크로스컨트리 등의 종목에서 신입부원을 선발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이거 안하면 안되는 건가보네. 뭘 하지? 우리 딸은 할 줄 아는 운동이 배드민턴밖에 없는데…’
딸과 상의한 끝에 가장 만만한(?) 필드 하키에 지원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 학기 하키는 선발 인원을 제한하지 않아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필드 하키 팀 훈련을 하기 일주일 전쯤 하키 팀 코칭스태프와 학부모 간담회가 있었는데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키 팀 총감독은 “훈련은 월화수목금 오후3시30분 방과 후부터 5시까지 진행합니다. 학부모님들은 하키 장비를 구입해주시고 매일 5시에 훈련이 끝나면 픽업을 오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마다 채플힐 인근 중학교 필드하키 팀과 리그전을 치르는데 학부모님들이 응원 많이 와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일단 정규 수업이 끝나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도 무려 90분 넘게 훈련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스포츠 기자인 저는 “와 이게 말로만 듣던 미국의 학교 체육 시스템이구나”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키의 하 자도 모르는 우리 딸은 그때부터 졸지에 필드 하키 학생 선수로 등록됐습니다. 매일 90분씩 하키채로 열심히 훈련하니 제법 하키 스틱으로 공을 때리는 요령을 그럴듯하게 익혀나가더군요. 일주일 단위로 홈&어웨이 리그전에 출전하는 딸을 응원하기 위해 원정팀 경기장을 방문하면 7달러씩 입장료까지 내야 했습니다.
서울에서 보습학원 다니느라 저녁 9시까지 파김치가 되던 우리 딸은, 노스 캐롤라이나 채플힐에서는 땡볕에 반바지 반팔 입고 운동하느라 녹초가 되는 신박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쩌다 학생 운동 선수가 된 우리 딸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나 미국에 더 있고 싶어. 너무 재미있어.”
주전이 아닌 후보 선수였지만 필드 하키 학생 선수로서의 가을학기 넉달의 경험은 딸에게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귀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딸은 필드하키를 기점으로 운동에 취미가 생겨, 배구와 피클볼, 펜싱에 테니스까지 두루 경험하다 듀크대학교 라크로스 팀의 언니들이 너무 멋있다면서 다음 학기에 개설될 라크로스 팀에 지원하는 원대한 목표까지 세웠습니다.

사춘기 나이에 미국에 와서 적응 할 수 있을까, 우려도 많았지만 딸의 학교 적응은 예상보다 순조로웠고 그 원동력은 역시 방과 후 운동부 활동이었습니다.
미국 학생들은 왜 이렇게 체육 활동에 진심인가를 교민들과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일단 미국은 운동 잘 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확립되어 있는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방구석에서 공부만 잘 하는 학생보다는, 운동을 통해 리더십과 인성을 두루 보여주는 인재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뛰어난 운동 경력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가중치를 부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학생들은 정규 수업이 땡 하고 끝나는 오후 3시쯤, 수학이나 과학 학원으로 향하는 대신 학교앞 운동장으로 달려갑니다.
이렇게 대다수 학생들이 참여하는 스포츠 시스템을 통해,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스포츠 선진국으로서의 위상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아주 극소수의 학생들만 운동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은 선수층을 통해 운동 천재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뿌리깊게 확립된 것이지요. 입시 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나라에서 미국식 학교 스포츠 정책을 펼치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인재를 배출하는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부러운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