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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5) ‘합리적인 미국, 합리적인 미국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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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합리적인 미국, 합리적인 미국인-1





못마땅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은 역시 합리적인 곳이다. 세세한 부분에까지 미쳐져있는 미국사회와 미국인의 합리성을 두 번에 걸쳐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작년말께 아이들과 함께 해리포터 2편을 보러 영화관에 갔었다. 개봉날인데다 하도 유명한 영화라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아침 일찍 표를 사러 갔는데 역시나 저녁시간대 표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손에 쥔 입장권에는 좌석번호가 없었다. 이상한 일인지라 영화관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원래 좌석번호는 없다”며 “오는 순서대로 좋은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아닌가. first come, first service란 얘기다. 그러고보니 유명한 영화인데도 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먼저 오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니까 원하는 시간대의 표만 사면 되는 것이니 한국에서처럼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표를 살 때부터 줄을 끝 모르게 설 필요도 없고 새치기를 하니 암표를 사니 하는 등의 시비를 할 필요도 없게 된다. 생각해보면 참 간단한 일이다. 이런 단순한 규칙 하나로 한국에서와 같은 그런 번잡한 일들을 없애버릴 수 있는 합리성이랄까 지혜가 부러웠다.



좋은 자리를 차지할 심산으로 영화 시작 40분 전에 갔고 결과적으로 가운데 중간 좋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리 서둘 필요가 없었던 일이었다. 나는 영화관 직원이 “몇시에 와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겠냐”하는 내 질문에 “모르겠다. 그런데 개봉날인 오늘 첫 상영시간에는 몇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린 사람도 많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좀 빨리 갔는데 대부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오는 얘들을 데리고 보러 오는 부모들이 많은 터여서 그리 붐비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이 우리같았다면 한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자기 일행을 위해 몇 개씩의 좌석을 점거했을 법도 하건만 내 자리 옆과 뒷 쪽의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 두쌍 정도만 파트너의 자리를 잡아줬을 뿐이고 ‘한국식 자리잡아주기’ 같은 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실 미국의 줄서기 에티켓은 우리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시설을 이용하던 간에 줄을 서면서 우리처럼 부모(특히 아버지)만 줄을 선 다음에 차례가 가까이 오면 “얘들아 빨리 와”하고 얘들을 자기 앞에 세우는 식의 일은 없다. 얘들 스스로도 당연히 처음부터 줄을 선다. 또 앞사람이 볼 일을 다 마칠 때까지는 일체 불평불만없이 참고 기다린다. 화장실이든 어디든 간에 창구(데스크)가 여러군데여도 줄은 한 줄이니까 늦게 온 사람이 볼 일을 먼저 보는 그런 불합리한 결과가 없기 때문에 그냥 창구에서 ‘Next’할 때까지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영화와 관련해서 주로 저녁시간대인 골든타임 이외의 상영시간대(대개 오후 5시 이전인 것같다)에는 영화표 값이 거의 절반 정도 싸다는 점도 특이해 보였다. 우리 영화관에서도 그렇게 하면 대학생같은 관람객들은 할인시간대를 이용할 것이고 그리 되면 한가한 시간대에 자리가 텅텅 비는 일도 줄어들텐데.. 우리 영화관 주인들은 대신 저녁시간대에만 제 값 그대로 받고 만원사태가 되면 더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또 오전에 표를 살 때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성 2-3명이 야외수업(field trip)인 듯 학생들을 기십명 데리고 해리포터 영화보러 오던 일도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얘들이 그 영화를 더욱이 개봉날에 얼마나 보고 싶어했으랴. 그만큼 아이들에 대한 배려,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적절한 공급을 보는 듯해 우리도 도입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한가지만에도 미국사회의 합리성, 합리적인 원칙들이 한 뭉치씩 묻어있다.



미국의 합리주의는 시청부설 시민센터의 편의시설이나 골프장같은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느껴진다. 우선 이용요금부터가 해당시의 시민(resident)냐 아니냐(non resident)에 따라 차이가 난다. 수영장 라커시설 1년사용요금은 3달러,골프장의 경우엔 많게는 10달러 정도나 차이가 있다. 세금을 내는 자기 시민에게는 요금혜택을 준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렇지만 운전면허증에 기재된 주소 정도만으로 resident임을 확인할 뿐이고 특별한 절차는 없다. 다른 시에서도 그런저런 혜택이 있으니까 굳이 이쪽 시에 와서 시설을 이용하겠나 하는 생각인 것같고 또 일단 사람을 믿고 보는 신뢰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그렇지만 스테이트(주)별로는 요금차이가 없는 것같다).



한국도 일부 지자체의 경우 일부 부분에서 이같은 방식의 요금차이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내가 알기론 해당 시민 또는 도민에게 할인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에게 요금을 더 물리는 방식이어서 기본 사고방식이 다르다.



심지어 몇년전에 문경새제를 갔을 때는 충북도와 경북도가 각각 자기 영역에 해당된다며 별도의 요금창구를 두고 요금을 각각 받아 입장객 입장에서는 한번 이용하는데 요금을 두 번이나 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 한쪽 입구에서 들어가 다른 입구로 빠져나간 입장객이 다시 들어가려고 할 경우 또 요금을 내라고 하는 국.공립공원은 얼마나 많은가. 미국에서는 국립공원을 이용할 때 입장권을 구입한 날로부터 3일간 추가 요금없이 계속 쓸 수 있게 한다. 그만큼 규모가 크고 볼거리도 많아 하루에 다 보지못한다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이용객의 입장과 수요를 감안한 참 근사한 요금정책이다. 놀이공원들도 그날 산 표는 그날에 대해 횟수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우리의 문경새제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는 이런 근사한 합리적인 정책을 펼 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 문희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