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운전안전 규정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들이 많이 나온다. 써놓고 생각해 보건대, 상당부분의 내용은 미국 전 지역 공통일 것 같다. 바쁜 분들은 그림만 한번 쭉 보셔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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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편에서 서술한 대로 서류심사의 관문을 거쳐 시험장에 입장했다. 경찰관이 응시료(10불쯤 했던 것 같다.)를 징수하고는 줄지어 늘어선 컴퓨터 앞으로 나를 보냈다. 시험은 4-5지선다형이며 터치스크린 PC로 치게 되어있다. 터치스크린 방식이긴 한데 옛날것이라 그런지 손 가는 대로 화면속 화살표가 민감하게 따라오지 않았다. 다행히, 처음에 자기 이름을 입력하고 연습문제를 풀어보는 과정이 있어서 곧 익숙해 질 수 있었다.
한국면허증과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가면 실기는 면제된다는 사실은 앞글에서 밝힌바와 같다. 뉴저지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50문제 중 40문제를 맞춰야 한다. 한 문제를 읽고 내가 고른 답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맞았는지 틀렸는지 바로 알려준 뒤 다음으로 넘어간다. 잘 모르는 문제일 경우 `나중에 다시`를 눌러 일단 뒤로 넘길 수도 있다. item pool 방식이므로, 똑같은 사람이 다시 시험을 본다고 해서 같은 문제가 전부 다시 나오지는 않지만 재출제 되는 문제도 꽤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첫 도전에서 낙방하고 말았다. 왜? 이런 문제들 때문이었다.
All Graduated Driver License (GDL) permits are valid for how long?
a. Two years
b. 90 days
c. Six months
d. One year
(정답 a. two years)
To get a provisional license you must:
a. Pass the MVC road test, be at least 18 years old and have completed 6 months of supervised driving without any suspensions
b. Pass the MVC road test, be at least 17 years old and have completed one year of supervised driving without any suspensions
c. Pass the MVC road test, be at least 17 years old and have completed 6 months of supervised practice driving
d. Pass the MVC road test, be at least 18, completed 6 months of unsupervised driving
(정답 c.)
GDL이니 Provisional License니 하는 것들은 정식 면허증을 받을 나이가 안된 청소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설명은, 앞글에서 말씀드린 바 온라인 공개되어 있는 운전면허 매뉴얼에 다 나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는 설마 이런 면허`제도` 파트에서 많은 문제가 나올 줄 몰랐다. 매뉴얼에 이런 내용들이 나오긴 했지만, 출제되어봐야 한 두개겠지 하고 이 부분은 포기했던 것이다. 나는 완전히 당황했고, 침착했으면 찍어서 맞출 수 있었을 문제도 틀려버렸다. 보기 4개 중 1개가 `all of the above`인 경우 이게 답일 것이라는 객관식 시험의 상식마저 망각했다. 결국 서른다섯개쯤 풀다가 틀린 문제 10개에 도달하자 시험은 끝나버렸다. 재시험은 1주일이 지나야만 응시할 수 있다.
나의 패착은, 시험의 성격을 제멋대로 예단한 데에 있었다. 별다른 사전 정보도 없이, 나는 “안전운전에 도움 되는 것 위주로 나오겠지”라고 안이한 생각을 했다. 운전 매뉴얼도 그래서, 주차 규정, 교차로 통과규정 등등 운전실기에 관계된 것 위주로 읽었다. `실제 남의 나라에서 운전하려면 이런게 중요하잖아? 출제도 이런 것 위주로 될거야.` 하면서. 그런데, 그것은 나만의 합리적인(?) 생각이었을 뿐, 시험의 상당부분은 면허제도와 시험응시 자체에 대한 관련규정에서 나왔다.
이것도 한번 풀어보시라.
When moving to New Jersey from out-of-state, how soon are you required to get a New Jersey license?
a. 30 days
b. 60 days
c. 90 days
d. One year
답은 b.60일 내에 뉴저지 면허로 바꿔야 한다. 주소지가 변경되었을 경우 며칠 이내에 DMV에 통보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들도 나온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인데, http://www.state.nj.us/mvc/manuals/chap_01_quiz.html 에 가면 기출문제 모의고사를 볼 수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 문제가 나오는지 맛보기로는 충분하다. 내가 시험보던 작년 이맘때에도 이런 온라인 서비스가 있었던가? 확인도 안해봤다면 내 불찰이다. 아무튼, 이런 제도 및 규정에 관한 사항들은 응시하실 분이 매뉴얼을 찬찬히 읽고 외우시면 된다.
지금부터는 매뉴얼에 나오는 내용 중 시험에도 등장하고 실제로도 도움되는 것들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상당부분은 다른 주에도 공통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안전운전 규정이니, 뉴저지에 살지 않을 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시험에 대비해 미리 말하자면, 매뉴얼에 그림 또는 표와 함께 나오는 것은 특히 잘 외워두시라.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고, 출제빈도가 높다. 안전과 관련된 수치(numbers)도 마찬가지다.
스티어링 휠을 잡는 올바른 손의 위치. 9시-3시가 답이다. 핸들을 여러바퀴 돌려야 하는 경우 쓰이는 `hand-over-hand steering`도 자주 나오는 문제이니까 자세히 읽어보도록 하자.
브레이크는 시속 20마일일 때 25피트 안에서 제동할 수 있어야 한다.
(A motorist should be able to stop within 25 feet at 20mph.)
타이어의 트레드는 16분의 1인치 이상이어야 한다.
(A vehicle should not be driven with tires that have less than 1/16 inch of tread (about the edge of a dime.))
자동차 출발 전에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 중에는 “Doors should be locked.”도 있다. 겨울에는 차에 눈이나 얼음이 붙어있다면 모두 제거해야 한다. 달리다가 도로에 떨어뜨려 다른 운전자의 안전에 영향을 주면 불법행위가 된다.
운전에 쓰이는 수신호들은 다음과 같다.
운전자들간에 쓰이는 신호 가운데는 상향전조등(하이빔)을 번쩍거리는 행위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 관습과 미국사람들 관습이 전혀 다르다. 우리가 앞차에게 번쩍이는 것은 “오지마!” 하는 경고의 의미인데, 이들은 `번쩍`을 양보의 경우에 쓴다. 이를테면, 비보호좌회전 하려는 맞은편 차량에게 양보하고 싶다면 제자리에 가만히 선채 하이빔을 번쩍거려주면 된다.
다음은 넘어갈 수 있는 차선과 없는 차선.
모든 운전자는 일차선도로에서든 다차선 도로에서든, 가급적 도로의 오른쪽(right side of the road)에서 운전하여야 한다.
다만, 좌회전하여 4차선 도로로 들어갈 때는 예외가 된다.
일단 좌회전을 마친 뒤 교통사정에 따라 안전하게 도로 우측으로 붙는다.
주차 및 정차규정 문제도 꼭 나온다.
노란 스쿨버스가 정차해 있으면 일단 모두 서야 한다. 언제 아이가 뛰어나와 어느 방향으로 길을 건널지 모르기 때문이다. 스쿨버스가 빨간색 `STOP`사인을 펼친 채 서 있다면 버스 양방향으로 25피트 밖에서 정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뉴저지 교통법규에는 재미있는 규정이 있다. 아이스크림 트럭(길가에 세워놓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파는 소형 트럭. 행사장 주위나 동네 공원 근처에 흔히 온다.) 주위에서 운전할 때의 주의 의무이다.
– 아이스크림 트럭을 오가는 보행자에게 통행우선권(right-of-way) 양보
– 일단 정지. 이후 시속 15마일 이하의 속도로 통과.
아이들의 왕래가 많은 차량인 점을 감안, 스쿨버스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사이렌을 울리는 응급차량(경찰/앰뷸런스/소방차 등)이 있다면 일단 도로의 가장 우측으로 차를 바짝 붙이고 서야 한다. 편도2차선 도로의 좌측차선에서 운전하고 있었더라도 재주껏 우측차선으로 빠져나와 길가에 차를 세워야 한다. 한국운전자들은 이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아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응급차량이 지나가면 최소한 300피트의 거리를 응급차량과 유지한 상태로 운전한다. 운전자는 업무중인 소방차량의 200피트 이내에 주차하면 안된다. 소화전(fire hydrant) 10피트 이내는 주차 금지다. 특히 뉴욕같은 대도시의 경우 이 규정이 사람 약올리는 경우가 많다. 모처럼 길가에 차 댈 공간이 있다 싶으면 대개 소화전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매뉴얼의 Chapter5는 `Defensive Driving`편이다. 물이 고인 도로, 눈 위, 브레이크가 잠겼을 때, 물에 빠졌을 때, 갑자기 엔진이 꺼졌거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등 다양한 위험상황에 대한 대처법 매뉴얼이므로 꼼꼼히 읽어보도록 하자. 물론 시험에도 많이 나온다.
음주운전과 관련한 기출문제.
즉, 술의 종류와 관계 없이 음용 단위(양주 한 샷, 와인 한 글래스, 맥주 한 병)에 든 알콜의 양은 대략 같다는 것이다.
음주운전하다 걸린 경우의 벌칙규정도 꽤 복잡한데, 시험에 등장하는 문제이니 잘 읽어보아야 한다.
동네 수퍼에도 대형 콘테이너 트럭이 드나드는 미국도로에서 꼭 알고 있어야 할 안전규정.
트럭 운전석 앞 10-20피트, 트럭 바로 뒤 200피트는 트럭운전자의 시야사각지대이다. 이 숫자, 시험에 나온다.
위 그림은 미국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승용차 운전자인 내 우측, 심지어는 내 뒤에 있던 대형트럭이 내 차 앞을 가로질러 좌회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에 비해 긴 트럭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이다. 그림의 빨간 X자는 신경쓰지 말고, 트럭의 진행궤적과 하늘색 승용차의 관계를 잘 보시라. 실제로 나도 이런 경우를 당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주변에 트럭이 있다면 조심 또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이번에는 도로 표지판 몇가지를 보자. 매뉴얼pdf파일 중 appendix에 수록되어 있는데, 몇가지만 소개한다.
도로표지판에서 중요한 것은 색깔과 도형의 개념을 숙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란색 다이아몬드는 `주의 또는 경고`사인이다. 빨간색 역삼각형은 `양보(Yield)`하라는 뜻이다. 즉, 노란 다이아몬드 안에 빨간 역삼각형이 있다면 이는 `앞에 yield 사인이 나올터이니 미리 조심하라`는 주의이다. 파란색 바탕에 큰 흰색 H는 `Hospital` 사인이다. 어디서든 이 표시를 따라가면 각 지역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에 닿게 되어 있다.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면 매우 유용하다 하겠다.
공사중 사인은 모두 오렌지색이다. 공사중 구간에서 과속하다 걸리면 벌금이 훨씬 비싸다는 점에 유의하자.
다음, 가장 중요한 STOP 사인.
Stop사인과 정지선이 있는 곳은 사거리, 큰 길로 합칠(merge) 때, 보행자가 있는 곳 등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바로 사고날 만 하니까 stop사인이 있는 것이다.
미 국에서 몇달동안 운전을 하고 다녀본 바, 한국과 가장 큰 문화의 차이를 꼽으라면 바로 이 Stop사인과 관련된 것이다. `Stop`이 보이면 무조건 일단 선다. 속도를 줄였다가 지나가는 것으로는 안된다. 그건 `Yield`에 해당한다. 아무리 살살 지나갔다 하더라도 완전히 섰다가(complete stop) 가지 않았다면 딱지를 뗄 수 있다. 주택가 도로들은 신호등 없이 이 Stop사인만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다. Stop 규정을 명확히 지키지 않으면 사고 나기 십상이다. 스톱 사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경찰이건 민간인이건 미국사람들은 굉장히 싫어한다.
특히, 앞차가 stop 했다가 간 것은 앞차의 문제고, 내가 Stop사인과 정지선 앞에 섰다면 나는 나대로 새로 Stop 싸인의 적용을 받는다. 다시 완전히 서서, 좌우를 잘 살펴 보행자나 차량이 없는지 확인하고, 아무 것도 없으면 그때 간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이게 습성이 안돼서, 앞차가 가면 그냥 나도 따라 간다.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뀐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사고난다. 걸리면 딱지 뗀다.
내 진행방향(이를테면 남북방향)에는 스톱 사인이 있고, 내 앞을 가로지르는 진행방향(이 경우 동서방향)에는 스톱사인이 없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동서방향으로 가는 차들에게 계속 우선권이 있다. 스톱사인에 걸려있는 나는, 동서방향으로 오가는 차들이 없을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Stop사인이 없는 진행방향의 차들은, stop사인에 걸려있는 차가 제자리에 서 있을 것으로 간주하고 주행하므로, Stop사인에 걸려있는 내가 고개를 잘못 들이밀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 사거리의 동서남북 전 방향으로 stop사인이 걸려있는 이른바 4-way stop인 경우, 오른쪽에 있는 차량에게 통행우선권이 있다. 내가 남에서 북 방향으로 주행하려고 서 있다면, 내 오른손쪽-그러니까 동에서 서로 가려는 차가 우선권이 있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려는 차가 있다면 그 차가 더 우선한다. 4 way stop의 네 방향에 모두 차량이 서 있다면, 가장 먼저 네거리에 도착한 차량부터 이 순서에 따라 한대씩 통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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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 외에도, 운전매뉴얼에 보면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가 매우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DMV사무소에 직접 가면 종이 책으로 된 버전을 구할 수 있다. 이 글은 그야말로 맛보기이자 힌트만 제시하자는 목적에서 비체계적으로 일부 포인트를 소개한 것이다. 당연히 시험에서는 더 많은 내용들이 다루어진다. 꼭 시험을 대비해서라기보다, 다른 운전문화를 지닌 나라에서 안전하게 1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1주일쯤 진지하게 시험공부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험은 한국어로 치를 수도 있고, 영어로 치를 수도 있다. 한국인이 많은 뉴저지 포트리, 뉴욕 퀸즈 같은 지역에는 한인상대 driving school들이 있어서, 몇백불 내면 서류수속도 도와주고 면허시험 족보도 내 준다고 한다. 뉴저지에는 뉴욕의 병원들에 연구차 연수와 있는 의사들도 꽤 있는데, 이들의 경우 집단 내부에 면허시험 족보를 대물림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