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LG상남언론재단 지원을 받아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타운대학교의 방문연구원 신분으로 1년간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연합뉴스 김연정입니다.
2024년을 마무리하고 2025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첫 연수기를 씁니다. 2024년 8월14일에 워싱턴 D.C.에 도착했으니 벌써 넉 달 반이나 흘렀네요. 저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불과 며칠 전까지 국회에서 근무하다가 이틀 만에 짐을 싸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출국 전까지 일에 치여서 미국 생활 준비를 거의 못한 바람에 ‘정착’이란 걸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습니다. 예상대로 첫 2주는 ‘연수보다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초반에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집 세팅, 차 구입, 은행 계좌 오픈, 운전면허증 수령 등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너무 많아서 막막했습니다.
때 제가 이곳에서 읽었던 ‘선배 연수생’들의 연수기가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기에 저도 미국 연수를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정착’ 과정을 가급적 시간 순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휴대전화 가입 (출국 전)
출국 며칠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전화 개통이었습니다. 한국의 ‘알뜰폰’ 개념인 민트(Mint) 모바일이 ‘석 달간 통화, 인터넷, 테더링 무제한 사용’ 조건에 월 15달러씩만 내면 되는 프로모션을 거의 상시로 하기 때문에 저는 민트 모바일 선불 요금제에 가입해 휴대전화를 개통했고 미국 번호가 생겼습니다. (미국은 집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3가지가 있어야 각종 업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출국 며칠 전 미리 휴대전화를 개통해 미국 번호를 만들어둘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민트 모바일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통신사가 가입 시 추천인 코드를 입력하면 추천인과 신규 등록인 양쪽에 15달러 안팎의 혜택을 주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미국에 거주 중인 주변 사람에게 ‘리퍼럴 코드’를 물어본 뒤 입력해서 가입하면 좋습니다.
제가 가입한 것은 선불요금제이므로 석 달이 지난 뒤 기존 번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통신사로 갈아탈 수도 있었지만, 미국에 와서 민트 모바일을 사용해보니 통화 품질이 크게 나쁘지 않아서 저는 쭉 민트 모바일을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 주변에는 ‘텔로(tello) 모바일’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었는데, 텔로는 자신이 사용할 월간 통화량, 인터넷 사용량을 지정해 요금을 내기 때문에 비용 절약이 가능한 장점이 있습니다.
집 세팅 – 전기, 가스, 인터넷 및 집 보험 가입 (출국 전)
저는 미국에 오기 전 한국인 리얼터를 소개받아 7월 중하순경 제가 살 아파트 계약을 마치고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경계에 있어서 D.C. 중심부까지 차 또는 메트로로 10분 정도 걸리는 버지니아 펜타곤시티에 적당히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있어서 7월31일부터 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8월14일 입국이지만 매물을 잡으려면 7월31일부터 계약할 것을 아파트에서 요구) 2주치 렌트비를 미리 지불하면서까지 아파트를 계약했습니다. 2주치 렌트비가 너무 아까웠지만, 돌아보면 출국 2주 전에 미국 집 주소가 생겨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전기, 가스 연결 등은 미국 집 주소가 있어야만 가능했습니다.
저는 가구 수가 1천 세대에 달하는 대형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어서 가스, 인터넷은 별도로 신청할 필요가 없어 조금 수월했습니다. (렌트비와 함께 의무로 내야하는 가스, 인터넷 요금이 조금 비싼 편이지만요) 인덕션이 아니어서 가스 연결을 스스로 해야 할 경우 ‘Washington Gas’에 연락해야 한다고 합니다. 인터넷 신청은 개별적으로 할 경우 TV와 결합된 요금제를 선택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집에 TV는 두지 않았고, 인터넷 요금으로 월 65달러를 납부하고 있습니다.
제 경우 한국에서 미리 ‘도미니언 에너지(Dominion Energy)’에 연락해 전기 연결을 하는 작업이 가장 난관이었습니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SSN이 아직 없으니, 직접 도미니언 에너지에 연락해 여권 사본을 보내고 서비스 신청을 해야 합니다. 저는 집 계약을 도와준 한국인 리얼터 도움을 받았는데도 절차가 복잡해 애를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집 보험도 반드시 가입해야 합니다. 보통 아파트에서 계약을 할 때 집 보험 가입을 의무로 요구합니다. 저는 한 달에 20달러를 지불하는 집 보험 상품에 가입했습니다.
중고차 구입 + 차량 보험 가입 (미국 도착 다음날)
미국은 차가 없으면 생활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저는 입국 다음날인 8월15일 곧바로 중고차 매장으로 달려갔고, 하루 만에 차를 마련했습니다. 카맥스(Carmax)에서 인증 중고차를 구입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체류 기간이 1년뿐인 연수생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기 때문에 여러 편의를 봐주는 버지니아 페어팩스 소재 ‘한국자동차’(Hankook Motors)에서 중고차를 구입했습니다. 워싱턴 D.C.에 체류하는 언론사 특파원들, 정부 부처에서 국제기구로 파견 나온 공무원 대부분이 이 곳에서 중고차를 구입하는 편입니다.
계약을 하면 차량 대금 완납 전에 곧바로 차를 가져가서 탈 수 있게 해주고, 장거리 여행 전 차량 점검을 해 주거나 타이어 등에 문제가 있을 때 각종 정비를 무료로 해주고, 1년 뒤 계약 종료일에 미리 약속한 금액으로 다시 차량을 매입해 가는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비용을 받긴 하지만 임시 번호판 발급, 차량 번호판 신청 등 각종 행정 업무도 대리해 주고, 한국의 ‘하이패스’와 마찬가지인 톨(toll)비 자동 납부 시스템 ‘이지 패스(EZ pass)’ 가입과 설치도 도와줍니다.
다만 인증 중고차 구입에 비해 가격 부담은 분명 큽니다. 8월 중순에야 미국에 도착했던 제 경우는 고를 수 있는 중고차 매물도 별로 없었고, 중고차 시세가 많이 올랐는지 1년 전 같은 곳에서 중고차를 계약한 지인에 비해 수백만 원이 더 들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제 경우는 앞선 주인이 10년간 15만 마일이나 탄 중고차를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구입해야 했습니다.
차를 구입했으면 차량 보험도 반드시 가입해야 합니다. 저는 ‘Progressive’라는 회사의 보험 상품에 가입했습니다. 이 상품은 6개월 단위로 보험료를 냅니다. 중고차이더라도 차량을 보유하면 재산세도 내야 합니다. 버지니아주에 차량 등록을 하면 알아서 거주지로 재산세 납부 고지서가 옵니다.
은행계좌 오픈 (미국 도착 다음날)
저는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Bank of America’를 이용하기로 하고 미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계좌부터 오픈했습니다. SSN은 아직 없지만 거주지, 휴대전화 번호, 그리고 신원 입증이 가능한 J1 비자 서류만으로 바로 은행 계좌를 20분 만에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일 곧바로 우리은행 외환계좌에 넣어뒀던 학비 납부용, 중고차 구입용 달러를 BoA로 송금해, 학비와 중고차 대금을 며칠 뒤 차질 없이 지불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중고차 매장에 갔다가 페어팩스 소재 BoA 지점에서 계좌를 열었는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에서 계좌를 열 것을 추천합니다. 은행 업무를 보러 몇 번 더 들러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은행 계좌를 열면 곧바로 체크카드를 사용할 수 있고, 3주 정도 지나서 다시 은행을 찾아가면 신용카드 발급도 해 줍니다. 저는 BoA의 ‘언리미티드 캐시백’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 중인데 모든 결제 건에 대해 1.5% 현금 캐시백을 해주기 때문에 이 카드만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BoA 신용카드를 석 달 정도 사용하니 미국에서 금융거래 이력과 신용 점수가 생겨서 다른 신용카드 발급도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신용카드 가입 후 2천 달러를 사용하면 델타항공 5만 마일리지를 주는 ‘델타 아멕스 카드’를 12월에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대학(연수기관) 등록 (미국 도착 1주 후)
연수기관 등록이 여러 정착 업무 중 가장 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조지타운대에서 안내한 날짜에 방문연구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습니다. 이 때 대학에서 J1 비자에 담당자가 서명을 해 주는데, 연수자가 미국을 벗어나 캐나다, 유럽 등 다른 국가를 여행할 때 반드시 이 서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수기관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J1 비자에 서명을 받아야 그로부터 3일 후 SSN 신청이 가능해 집니다.
학비는 BoA 은행에서 Check를 발급받은 후 연수기관을 직접 찾아가 납부했습니다. 학교 등록을 마치면 학교 도서관, 체육관 등 각종 시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출입증’이 나오고, 학교 이메일 계정, 명함도 줍니다. (학교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점 외에도 학생증으로 H마트 페어팩스점 5% 할인을 받고, 학교 이메일 계정으로 아마존 프라임 6개월 무료 이용을 할 수 있는 생각지 못했던 이점도 있네요.)
SSN 신청 (미국 도착 열흘 후)
SSN은 쉽게 말해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이고, 9자리 숫자입니다. SSN은 한 번 발급받으면 추후 미국에 다시 거주할 일이 생겼을 때 재신청할 필요 없이 평생 사용할 수 있습니다. SSN은 신용카드 발급을 비롯한 은행 거래, 운전면허증 발급 등 다양한 곳에 쓰입니다.
저는 학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뒤 사흘이 지나 SSN 신청이 가능해지자마자, 곧바로 집에서 가까운 SSA(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를 검색해 찾아갔습니다. 예약 없이 방문했는데도 번호표를 뽑고 1시간가량 기다린 끝에 곧바로 SSN 신청을 수월하게 마쳤습니다. 대학 방문연구원 신분을 확실히 입증해주는 J1 서류가 있기 때문에 창구 직원이 간단한 몇 가지만 묻고 곧바로 SSN 발급 승인을 해 줍니다. SSN이 적힌 우편물은 며칠 뒤 집 주소로 배달됩니다. (참고로 이런 중요한 우편물이 언제 도착하는지 우편함을 열어보지 않고 편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USPS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오늘 나에게 도착할 우편물을 아침마다 이메일로 알려주는 훌륭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운전면허증 신청 (미국 도착 열흘 후)
미국에 살았던 사람들이 ‘공포의 DMV’라는 말을 자주 하던데, 저도 정착 업무 중 가장 힘든 게 운전면허증 받기였습니다. 저는 미국 도착 열흘쯤 지난 시점에 예약 없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DMV에 문 여는 시간에 찾아갔습니다. 1시간 정도 대기하긴 했지만 그날 ‘DL7’ 서류 접수를 잘 마쳤습니다. 그런데 1달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답답해 하다가, 버지니아 거주자 인터넷 카페에 공유된 한국 경찰청 민원실 번호를 알게 됐습니다. 이 곳에 전화를 걸어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 중인데 면허증 교환 신청한 게 감감무소식’이라고 설명하고 정상 접수가 됐는지 문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미국 DMV에서 제 한국 면허에 대한 확인 요청이 들어온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신청 서류가 누락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정말 허다하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다시 집에서 가까운 다른 지역 DMV를 찾아가 재신청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2주 뒤 한국 경찰청에 확인 조회가 정상적으로 들어갔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로부터 2주 뒤 DMV를 방문하라는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곧장 DMV를 방문해 거주지 입증 서류 2~3가지(집 보험 우편물, 은행 카드 발급 우편물, 전기요금 고지서 우편물이 가장 확실)를 제시해 무사 통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창구에서 간단한 시력 검사를 하고, 운전면허증에 들어갈 사진 촬영도 했습니다. 그리고 1주 뒤 무사히 운전면허증을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8월 중순 입국했는데 운전면허증 발급 허가가 난 건 11월 초였습니다.
참고로 워싱턴 D.C.와 달리 버지니아는 한국 등 6개국에 한해 해당 나라 면허증이 있으면 운전면허 시험(필기, 주행)을 다시 볼 필요 없이 미국 면허증을 내어줍니다. 면허증 발급 기한은 J1 비자 기간과 동일합니다. 운전면허 발급 시 10달러를 더 내면, 면허증을 여권 대신 ‘ID’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 국내선을 탈 때 여권 대신 면허증만 제시해도 비행기 탑승이 가능합니다.)
미국에 막 도착해서 했던 ‘정착’ 업무들을 되돌아보니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동시에 처리했나 싶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이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처음 해보는 일들을 직접 부딪혀가며 하나씩 해결해 갈 때마다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연수 합격 후 출국 직전까지 출입처에서의 정상 근무, 연일 계속되는 송별 저녁에 힘들고 지치더라도, 반드시 짬을 내서 미국 도착 후 ‘정착’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부지런히 준비해 두길 권합니다. 미국 생활을 위한 세팅을 하루라도 더 빨리 마치고, 1년이라는 짧은 연수 기간을 더더욱 알차게 보내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