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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위드 코로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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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위드 코로나’의 그림자

미국의 코로나19 발생은 분명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에 8만~10만 명에 이르는 확진자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머크(Merck)의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가 식품의약국(FDA) 긴급사용승인 신청 단계에 들어갔다는 희소식도 있지만, 코로나19 완전 종식이 이뤄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들은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기 위한 방책으로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드 코로나’의 일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생겨난 새로운 질서나 흐름이 앞으로는 정상 상황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코로나 뉴 노멀인 셈입니다. 문제는 위드 코로나 시대의 뉴 노멀이 서비스 영역 곳곳에서 심각한 질적 후퇴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과 2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에도 이런 문제점을 직접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1. 희망퇴직 받는 대학교
미국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곳곳에서 다운사이징 태풍이 몰아친 것입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자가 연수 중인 조지아대(UGA)에서는 지난해와 올해 자발적 은퇴자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조지아대 Grady BPC(Business & Public Communication) Fellows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김주영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비대면 업무 전환 경험을 거치면서 대학 운영자들은 이전에 ‘사람이 사무실에 앉아서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업무 상당수가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결과 기존 규모의 인력과 비용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고,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희망퇴직’을 받는 수순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학교 측이 퇴직 희망자에게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많은 사람이 자발적 은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학사 행정 곳곳에서 과도기적 문제점도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 실무 인력이 줄어든 데다 철저한 인수인계 없이 퇴직 과정이 이뤄지면서 업무 공백이 발생하고, 부서 간 공조나 자료 공유 체계에도 허점이 생겨 이전에는 쉽게 승인됐던 사안이 불허되거나 한참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연수 시작 직후 대학교 시스템 온라인 등록과정에 오류가 계속 발생하기도 했고, 학생증 신청 후 한참 기다려도 회신 이메일이 오지 않아 조교를 통해 문의해보니 이미 학생카드가 발급돼서 찾아가면 되는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다른 연수자들 사례를 들어보면 UGA의 업무 처리가 엄청 빠른 편이라고 합니다.

2. 미국 서비스업, 담당자 연결조차 힘들다
대학에서도 다운사이징을 하고 있을 정도이니, 코로나19 사태 속에 민간 서비스산업 영역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동차 사고와 관련해 보험사와 연락을 취하면서 ‘사람과 통화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현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사고 처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연수기를 올릴 예정입니다)

사고 접수 후 자동차 보험사에서 차량 수리 담당자와 치료 담당자가 각각 지정됐는데, 자기들 편한 시간에 전화를 걸고 그 전화를 놓치면 통화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신과 통화하려면 특정 시간대에 전화하라며 문자메시지로 사무실 번호를 안내해주지만, 정작 그 시간에 걸어도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차량 수리 담당자는 중간에 갑자기 변경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사고처리를 위임한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처럼 통화조차 힘든 이유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보험사들이 인력을 많이 줄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가 가입한 업체는 미국에 신용점수가 없는 연수자가 바로 가입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보험사로, 미국 자동차보험 점유율 3위(‘밸류 펭귄’ 집계 기준)에 올라있는 대형 업체인데도 이런 실정입니다.

또 공공기관들도 코로나19로 출근 인력을 최소화한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조지아주 애신스(Athens) 사회복지과(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사회보장번호(SSN)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곳)의 경우 아예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데, 계속 통화중이라 10차례 이상 시도해야 겨우 연결되는 수준입니다.

3. 인간 대체할 인공지능 비서 수준은 아직 멀어
사람이 줄어든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기계입니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의 경우 인공지능(AI) 챗봇 기능도 활성화돼 있고, 위에 언급한 보험사나 일부 병원 등은 디지털 비서가 사람 대신 전화를 받는 시스템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AI 챗봇이든 디지털 비서든 그다지 ‘스마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사고접수를 위해 자동차 보험사의 24시간 비상센터로 전화를 걸자, 기계가 이름과 생년월일, 보험증권 번호를 물었습니다. 열심히 보험증에 적힌 번호를 불렀지만, 보험사 자동응답시스템은 전혀 엉뚱한 증권번호를 대면서 “방금 말한 게 이 번호가 맞느냐”고 확인 질문을 했습니다. 아니라고 답하고 다시 번호를 부르는데, 스마트와는 거리가 먼 디지털 비서는 번호 확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예스”와 “노”만 이해하도록 프로그램된 듯했습니다. 증권번호를 확인할 수 없다며 직원에게 연결해주겠다고 하더니, 전화가 끊겨서 이 과정을 고스란히 되풀이해야 했습니다. 이어 몇 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연결된 인간 직원은 처음에 자동응답 기계가 물었던 이름과 생년월일, 증권 번호를 고스란히 다시 요구했습니다.

또 한 은행의 자동응답 전화 시스템의 경우, 원하는 서비스를 말하라고 하지만 사람과 통화할 수 있느냐고 하면 해당사항이 없다며 기계 주제에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 발전에 따라 이런 문제들이 해소되겠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 미국의 위드 코로나는 대인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게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