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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역 언론의 위기와 새로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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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지역 언론이 발달한 곳이다. 주 단위뿐 아니라 카운티, 시티 단위에서도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들이 있다. 민주주의의 본고장답게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곳에는 언론이 생겼다. 최근 인쇄 매체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지역 도서관에 가 보면 지역 신문들이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서관에 비치된 지역 신문.

하지만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오랜 역사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지닌 지역 언론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도서관이 아닌 식료품 가게나 서점 등에서는 지역 신문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는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이미 약 3000개의 신문이 폐간됐다고 한다.

계속되고 있는 언론의 위기 속에서 현재 연수기관으로 몸담고 있는 미국 조지아대 저널리즘 스쿨 그래디 컬리지에서는 하나의 실험을 하고 있다. 폐간 위기에 놓인 지역 언론과 파트너십을 맺고, 학생들을 신문 제작에 참여하도록 해 신문 발행이 계속될 수 있게 한 것이다. 조지아대 인근에 있는 오글소프(Oglethorpe) 카운티를 기반으로 하는 매체 오글소프 에코(Echo)는 1874년부터 발행돼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지난 2021년 수익성 문제와 발행인의 건강 문제로 폐간 위기에 놓였다. 신문을 살리기 위해 지역 주민과 조지아대가 나섰다. 다른 지역 언론사 사장으로 일하다 은퇴한 오글소프 카운티 주민 윌리엄 네스미스(William H. NeSmith) 씨가 1만 달러를 기부해 비영리 재단이 설립됐고, 이 재단이 신문을 인수했다. 재단은 조지아대와 파트너십을 맺고, 조지아대 학생들이 기자가 된다. 주 2회 조지아대서는 학생 기자들을 상대로 수업이 열리고, 이 수업은 곧 신문의 편집회의다. 기자 출신인 2명의 편집장이 수업에 참여해 학생들과 기사에 대해 토론하고, 방향을 잡는다. 이를 통해 언론사는 기자를 고용하는 데 써야 하는 인건비를 아낄 수 있고, 학생들은 언론 실무를 직접 배울 수 있다. 수업을 가르치는 부편집장 아만다 브라이트(Amanda Bright)는 “Z세대는 예전 방식으로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매우 미션 중심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수업의 효용을 설명했다. 주 1회 신문 발행되는 신문은 인쇄를 거친 뒤 지역 주민이 직접 배달한다. 이렇게 1만5000명이 살고 있는 카운티의 신문이 유지되고 있다.

편집회의 기능을 하는 조지아대 수업 모습.

신문이 비영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래도 수익은 있어야 한다. 급여를 받는 취재 기자는 없지만, 편집장 등 소수의 상근 직원은 있고 인쇄 등 각종 제작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곳곳에서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지역 신문들은 기부금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오글소프 에코의 실험은 현재 3년쯤 진행되고 있다. 아직 큰 문제는 생기지 않고 있지만, 이 같은 실험이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관계자들이 아직 조심스러운 태도로 지켜보고 있다.

2024년 11월 대선 직후 발행된 오글소프 에코.

미국 언론계에서는 조지아대의 이 같은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전 편집장인 레너드 다우니 주니어(Leonard Downie Jr)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지난 2023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오글소프 에코의 사례를 소개했다. 광고와 신문 구독으로 수익을 내왔던 지역 언론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는 새로운 진화의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다우니 교수는 비영리 신문 및 뉴스 사이트, 전문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매체, 자산가들의 지역 매체 인수, 공영 라디오 방송 등과 함께 학생 제작 지역 매체 등을 진화 모델로서 언급했다.

한국의 지역 매체, 인쇄 매체도 미국만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미국은 먼저 큰 변화를 겪었고, 생존을 위한 새로운 모색도 먼저 시작됐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전통 매체들은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험을 한국 언론도 참조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