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자동차 담당 기자’를 2년가량 했는데 그때 이후로 운전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해외 출장을 가서 운전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덕에 외국에서 운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이후엔 1년 반 동안 세종 주재 기자로 있으면서 매주 서울~세종을 차로 왕복하느라 운전 경험이 한층 탄탄하게 다져졌습니다. 연수 직전에는 3년간 매일 집에서 여의도까지 왕복 60km를 차 몰고 출퇴근하면서 운전에 이골이 났습니다.
그렇기에 미국 워싱턴D.C. 1년살이가 정해지자마자, 미국과 캐나다 동부를 종단하는 ‘로드 트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로 미국 플로리다부터 캐나다 퀘백시티까지 운전자 교대 없이 혼자 핸들을 잡고 ‘로드 트립’을 했습니다. 주행 거리는 도합 1만km였습니다. 앞으로 제 평생 단기간에 이렇게 장시간, 먼 거리를 운전할 일이 다시는 없을 것 같기에, 두 번의 로드 트립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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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로드 트립 : 워싱턴D.C.에서 플로리다로
미국에 도착한지 한 달이 채 안 된 작년 9월 첫 로드 트립을 떠났습니다. 대학생 시절 미국에 살던 친척들과 한달 간 뉴욕에서 마이애미까지 차를 몰고 미 동부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했었기에 코스 짜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무작정 미 동부의 최남단 키웨스트까지 차를 몰고 내려가겠다고 정해놓고 이름 있는 도시를 다 거쳐 가도록 일정을 짰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루트가 ‘집 출발 → 노스캐롤라이나 아우터뱅크스 →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 조지아 서배너 → 플로리다 세인트 어거스틴 → 플로리다 올랜도 → 플로리다 마이애미 → 플로리다 키웨스트’였습니다.
운전을 교대해 줄 사람 없이 혼자 차를 몰아야 하기 때문에 여행 전날 밤에는 장거리 운전을 잘 할 수 있을까 부담도 됐습니다. 여행 전 차량 점검을 받긴 했지만, 출고된 지 10년이 넘은 중고차가 잘 버텨줄지도 걱정스러웠습니다.
이런 걱정은 첫 번째 목적지인 아우터뱅크스에 도착하자마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집에서 아우터뱅크스까지는 5시간30분 정도가 걸렸는데, 미국은 도로가 쭉 뻗어있고 막히는 구간도 거의 없기에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스트레스와 운전 피로감이 훨씬 덜 했습니다.
이후 아우터뱅크스에서 찰스턴까지는 7시간, 찰스턴에서 서배너까지는 2시간, 서배너에서 세인트 어거스틴까지는 2시간30분, 세인트 어거스틴에서 올란도까지는 2시간, 올란도에서 마이애미까지는 4시간,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까지는 다시 3시간이 각각 걸렸습니다.
로드 트립을 할 때 ‘출발 전 차량 점검을 꼼꼼히 받는다’, ‘아침 일찍 출발해 다음 여행지에 날이 밝을 때 가급적 도착한다’, ‘장거리 운전 전날 밤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는 대원칙만 철저히 지킨다면 운전하면서 위험할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을 때 자동차 바퀴 공기압 체크를 주기적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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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트립의 최대 장점은 각 여행지에서 이동이 편리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집에서 챙겨가는 짐의 양에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운전하는 자체도 재미였고, 나무의 생김새나 날씨가 조금씩 변해가는 걸 관찰하며 여행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저는 돌아오는 길에는 같은 루트를 다시 운전해서 올라오는 게 체력적으로 무리가 될 것 같다고 판단해 암트랙 ‘오토 트레인’을 이용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오토 트레인에 대한 호기심도 한 몫 했습니다. 오토 트레인은 말 그대로 승객뿐 아니라 자동차를 싣고 달리는 열차입니다. 미국 동부에서 딱 한 구간만 직행으로 운행하는데 그게 플로리다 올란도에서 미국 워싱턴D.C.까지입니다.
오토 트레인은 올란도 샌포드역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해 다음날 오전 10시에 워싱턴D.C.근교 기차역인 버지니아 로튼역에 도착합니다. 비용은 여행 시기와 예약 시점에 따라 천차만별인 듯한데 일반적으로 국내선 항공편보다는 비싼 편입니다. 저는 SUV 차 한 대를 싣고, 2명이 탑승하는 침대가 있는 방 한 칸을 예약했는데 기차에서 침대칸 예약 손님에게는 저녁 식사와 아침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혹시 워싱턴D.C에서 플로리다 로드 트립을 계획 중인데 장거리 왕복 운전이 부담스럽고 색다른 경험을 좋아한다면 ‘오토 트레인’을 활용해 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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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로드 트립 : 워싱턴D.C.에서 캐나다 퀘백시티로
첫 로드 트립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캐나다 동부로 로드 트립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번에도 이름 있는 도시들을 모두 잇는 방식으로 루트를 짰습니다. 단풍철인 10월 캐나다 동부로 떠나는 로드 트립이기에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메이플 로드’를 포함했습니다. 하루 최대 운전 시간은 가급적 7시간을 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루트가 ‘집 출발 → 나이아가라폴스 → 토론토 → 킹스턴 → 알곤퀸 주립공원 → 오타와 → 몽트랑블랑 → 몬트리올 → 퀘백시티’였습니다.
집에서 나이아가라폴스까지는 3번의 짧은 휴식시간을 포함해 총 8시간30분이 걸려서 이번 여행 최장시간 운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캐나다에 도착한 이후에는 도시 간 이동 거리가 짧아 운전하기 수월했습니다. 나이아가라폴스에서 토론토까지 1시간30분, 토론토에서 킹스턴까지 3시간, 킹스턴에서 알곤퀸 주립공원까지 4시간, 알곤퀸 주립공원에서 오타와까지 4시간, 오타와에서 몽트랑블랑까지 1시간30분, 몽트랑블랑에서 몬트리올까지 1시간30분, 몬트리올에서 퀘백시티까지 3시간 정도가 각각 걸렸습니다.
10월 초중순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아직 단풍이 들기 전이었는데, 퀘백주로 넘어가니 단풍이 거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서 운전하는 내내 눈이 즐거웠습니다. 알곤퀸 주립공원, 몽트랑블랑, 퀘백시티를 잇는 ‘메이플 로드’를 달리면서는 목적지까지 도착 시간 1분1초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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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돌아오는 루트는 같은 도시를 두 번 거치지 않기 위해 ‘퀘백시티 → 뉴햄프셔 노스콘웨이 → 보스턴 → 필라델피아 → 워싱턴D.C.’로 짰습니다.
퀘백시티에서 뉴햄프셔 노스콘웨이까지는 5시간30분, 노스콘웨이에서 보스턴까지는 1시간30분, 보스턴에서 필라델피아까지는 5시간30분,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D.C.까지는 2시간40분 정도가 각각 걸렸습니다.
뉴햄프셔 노스콘웨이는 화이트마운틴 단풍 구경을 위해 들렀는데, 잊지 못할 최고의 여행지였습니다. 캐나다 동부의 모든 단풍명소들을 합친 것 이상이었습니다.
웅장한 스케일의 단풍 드라이브 길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연신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다른 계절에도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후에 집에 돌아오기 위해 경유지로 들른 보스턴, 필라델피아는 대도시 명성에 걸맞게 도로가 매우 혼잡해서 운전과 주차가 매우 까다로웠고, 주차비도 한 시간에 20달러 수준이어서 ‘악’ 소리가 났습니다.
캐나다 동부를 차를 몰고 여행하면서 올라갈 때, 내려올 때 각각 국경을 통과했는데, 여권과 비자 서류를 제시하고 몇 가지 질문에 간단히 답하면 돼 복잡할 게 전혀 없었습니다. 미리 따로 준비해야 할 것도 없었습니다.
캐나다 로드 트립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점은 출발 전 차량 점검을 꼼꼼히 받는 것입니다. 미국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차량 관련 돌발 상황이 생기면 미국에서 가입한 차량 보험으로 커버가 될 수 있는 건지 막상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잘 돌아왔지만요.
작년 9월과 10월 두 번의 로드 트립을 다녀온 뒤 차량 계기판을 확인하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주행거리가 무려 1만km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운전하면서 브레이크와 엑셀을 번갈아 밟느라 분주했던 오른발 운동화는 바닥이 닳아서 구멍이 났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연말까지 한동안은 가급적 차 운전을 하는 대신 메트로를 타고 다니거나 웬만한 거리는 자주 걸어 다니곤 했는데, 솔직히 운전에 조금 질리긴 했나 봅니다.
그래도 미국 연수 생활을 되돌아볼 때 정말 잊지 못할 추억 하나는 제대로 만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