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로나 극복의 ‘허상’과 여전한 음모론
제가 미국으로 건너오기 직전 즈음 한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됐고,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2000명 안팎을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외신 사진과 뉴스 영상에서는 수개월 전부터 미국 시민들이 마스크를 벗고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이 숱하게 등장했습니다. 연수 시작을 앞두고 들었던 이야기도 “여기(미국)는 다들 백신 맞아서 실외에서는 마스크 벗고 다닌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에 저도 ‘미국인들은 이미 백신을 많이 맞아서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바 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아직도 충분한 백신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비판적 입장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연령대 탓에 끝내 한국에서 백신을 접종하지 못했는데, 미국에 와서는 너무나 쉽게 1, 2차 접종을 할 수 있었으니 아마 그런 생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벗은 이유가 일찌감치 백신 접종을 마쳤기 때문만은 아니란 것 또한 현지에 들어온 뒤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국내 언론에 투영된 미국의 코로나19 극복 이미지는 일부만 맞고, 일부는 허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선 뉴욕타임스 집계에 따르면, 10월 13일 하루 동안 미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0만6422명에 달합니다. 미시건주에서만 1만849명이 발생했고 텍사스주 9697명, 오하이오 5648명, 펜실베이니아 5012명, 캘리포니아 4714명 등입니다. 최근 7일 동안의 미국 신규 확진자 평균도 8만8612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백신 접종률이 엄청나게 높은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 한 번이라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전체의 65.6%입니다. 접종 완료자 비율은 56.6%로 떨어집니다. 이제는 오히려 한국이 1차 접종률(78.3%)과 2차 접종률(61.6%) 모두 미국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특히 제가 연수 중인 조지아주는 전통의 공화당 강세 지역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재검표까지 끝난 뒤에도 불복했던 곳입니다. 그런 탓인지, 이곳에는 여전히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불필요하며 선거 국면에서 불안을 부추기려는 민주당 전략이었을 뿐’이라는 음모론을 믿고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을 지경입니다. 저와 같은 조지아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한 타사 기자에 따르면, 직업이 간호사인 미국인 이웃 남성조차 ‘당신처럼 젊고 건강한 사람은 절대 감염 안 되니까 백신 접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백신을 적기에 충분히 확보했느냐’를 놓고 다투는 한국의 정쟁은 이곳과 비교하면 상당히 수준 높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곳 조지아주에서 저의 경험으로는 이미 백신을 접종한 사람, 트럼프식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는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 마스크도 열심히 쓰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애틀랜타 한인마트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벗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유명 관광지인 조지아 아쿠아리움의 경우 마스크 미착용 시 입장이 거부되며, 관광객 대상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했던 CNN은 아예 외부인 출입을 전면 불허하고 있습니다.
반면 제가 살고 있는 외곽 시골 마을의 경우, 월마트에 갔을 때 2명의 고도비만 미국인이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 활보하고, 심지어 그 중 한 명이 쇼핑 중에 음식을 먹으며 떠들다가 바닥에 흘리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 바 있습니다. 이와 달리 미국 식료품점이나 마트 중에도 유기농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에 가면, 미국인 쇼핑객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게 미국의 현 상황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백신을 맞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의 축포는 이곳에서도 아직 터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