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하순께 미국에 들어온 직후는 집도 절도 없는 신세였다. 이사 일정이 맞지 않아 뒤늦게 차만 달랑 구해 열흘간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했다. 운전면허도 국제면허였고 사회보장번호(SSN)도 아직 못 받은 상황이어서 차량 등록도 하지 못해 ‘대포차’와 다름 없었다. 연수를 받을 조지아대학교(UGA)가 있는 애선스(Athens)에서 출발해, 근교로 여행을 떠나고 애틀랜타(Atlanta) 코리아타운을 다녀오는 길은 조마조마했다. 연수 직전 자동차 담당을 맡아 승용차부터 트럭까지 다양한 차를 운전해봤지만 문제는 ‘운전’이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 정착하기 전 불안정한 상황, 무엇보다 임시에 불과한 국제운전면허를 들고 아내와 아이를 ‘대포차’에 태워 대도시로 나가는 상황은 초긴장 그 자체였다.
적응되지 않은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더듬더듬 애틀랜타의 한인마트를 찾아가다 차선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다. 직진해야 하는데 좌회전 차선에 들어갔다. 당황한 참에 한국식으로 대응했다. 직진 신호에서 차들이 일부 빠져나간 뒤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직진차선으로 진입했다. 뒤에는 멋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가 부릉거리고 있었다. 룸미러로 오토바이 운전자의 눈치를 살핀 뒤 비상등을 켰다. ‘미안하다’는 한국식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것일까. 부웅~하며 차를 앞지른 오토바이 운전자는 나를 돌아보며 손가락 욕을 날리고 떠나버렸다.
부끄러움도 창피함도 모욕감도 아닌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기사 마감을 앞두지도 않았을 뿐더러 약속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닌데, 좌회전한 뒤 조금 돌아가면 됐을 일인데 왜 그랬을까. 내 몸에 밴 운전습관은 내가 살아온 사회가 어떤 곳인지를 일깨웠다. 서울의 도로는 치열함과 비장함으로 가득한 경쟁의 장이다.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자들과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미친 듯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아대는 자들의 무한경쟁이 무시로 벌어지는 곳.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바로 차를 들이미는 고도의 심리전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전쟁터. 나 역시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미국 생활 한달여 만에 10여년간 굳어진 운전습관은 사라졌다. 마구잡이로 끼어드는 차도 없고 서로 양보하기 바빴다. 과속과 정속 차량이 두루 조화로운 고속도로는 꽤나 평화롭다. 경적을 울려댈 일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육두문자를 곱씹을 일도 거의 없다. 미국 남부의 수도로 불리는 애틀랜타 도심에서는 때때로 난폭해 보이는 차량을 만날 수 있지만, 서울에서의 남다른 운전 정서가 되살아날 정도는 아니다. 한국에 돌아가 운전할 일을 떠올리면 마음이 갑갑해지면서 또한 서글퍼진다.
특히 나는 빨간 팔각형 표지판에 반해버렸다. 거기에는 단 네 글자 ‘STOP’이 써있을 뿐이다. 단순하다.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서기만 하면 된다. 집이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 안에도 곳곳의 갈림길에 스톱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그 앞에서 ‘완전히’ 3초가량 정차했다가 좌우를 살핀 뒤 출발하면 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역시 처음에는 간단치 않았다. 그간 몸에 밴 운전습관은 브레이크를 완전히 밟아 정차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정차하려고 했지만 브레이크를 밟은 발은 슬금슬금 서행을 하는 것이었다. 스톱 표지판에서 정차하지 않을 경우 적발되면 주에 따라 다르지만 벌금이 $300가량 된다. 벌금보다 무서운 건 안전이다. 제대로 정차하지 않았다가 큰 사고를 겪었다는 한국인의 소식을 적잖이 들었다.
스톱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운전은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방에 스톱 표지판이 세워진 사거리에서 차량들은 질서정연하다. 먼저 정차한 순서로 차들이 차례로 출발한다. 한 번에 차량 한 대씩만 움직이고 두 대가 연속으로 진행할 순 없다. 여지껏 스톱 표지판을 지키지 않는 차량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차례인데도 까딱까딱 손짓하거나 상향등을 깜빡이며(이곳에선 상향등이 위협이나 항의 표시가 아니다)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이들도 많았다. 처음엔 그런 ‘양보’가 불편하면서도 놀라웠다. 경적을 울려대며 위협하던 서울의 차들과 그 안에 앉아있는 ‘우리’가, 최첨단 기기를 통한 교통제어 없이 빨간 작은 표지판 하나로도 질서 정연한 거리의 풍경과 자주 겹쳐 보였다.
다소 과장스럽게 여겨질 수 있지만, ‘하지 말라는 것 빼고는 다 해도 된다’는 미국식 자유의 한 부분을 스톱 표지판에서 읽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해진 원칙은 엄격히 지키되 그밖엔 스스로 자유를 누리고 책임을 지면 그뿐이라는 것 말이다.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한가한 시골 고속도로에서 빨간불 정지신호를 엄격히 지키는 이곳의 오토바이 폭주족에게, 손가락 욕을 얻어먹은 것도 이런 원칙과 무관치 않다고 여기게 됐다.
스톱 표지판과 관련해 인상 깊은 또 하나는 스쿨버스다. 스쿨버스가 정차할 땐 다른 차량들도 정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이미 들어왔다. 재미나게도 스쿨버스들이 스톱 표지판을 달고 다니고 있었다.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태우려고 정차하면 문이 열리면서 스톱 표지판이 자동으로 튀어 나온다. 스톱 표지판이 거리에 표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운행하던 차량들은 당연히 멈춰 서지 않을 수 없다. 스톱 표지판뿐 아니라 버스에서 길다란 막대가 옆으로 튀어나와 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운전사가 잘 보이지 않는 버스 앞으로 건너가지 않도록 막는다. 막대를 피해 건너가는 아이는 운전사의 시야가 닿는 위치에 있게 된다.
보행자로서는 더욱 미국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한국에선 좁은 이면도로를 지날 때도 좌우를 살피고 건너도록 교육받아왔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여기서도 차량이 멀리서 보이면 우선 멈춰서는 게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다. 그런 모습이 미국 운전자들은 이상한가 보다. 멀리 한켠에 서있는 사람을 보고도 차를 세운다. 먼저 가라고 해도 한사코 지나가라고 손짓한다. 메인 캠퍼스만 759에이커(약 3㎢)에 이르는 조지아대학교 안에 깔린 도로 곳곳에 ‘보행자가 차도에 내려서면 정차하는 게 주법(State Law)’이라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도 습관은 무섭다. 차도를 건너기 전이면 지나는 차가 없어도 멈칫 거리기 일쑤다.
미국에선 ‘비보호 좌회전’이 일반적이다. 이 또한 자유다. 좌회전 금지 표시가 없다면 어디서든 좌회전이 가능하다. 중앙차선을 넘는 좌회전도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무척 위험해보이지만 매우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두개 차로 이상 있는 길에선 왼쪽 좌회전 가능한 곳에서 기다리다 직진신호에서 반대편 차선에 차가 오지 않을 때 넘어가면 된다. 건너편 차선 차량이 겁나서 더 안전하게 조금 더 기다린다고. 경적을 울리는 좌회전 대기차량은 거의 없다. 1차로 길에서도 좌회전 방향지시등을 켠 채 대기해도 뒤에 줄지은 차들은 얌전히 좌회전이 이뤄지길 기다린다.
긴장감 넘치는 한국의 도로와 한참 다르지만, 한편으론 자유와 여유, 친절 뒤에는 모종의 불안감이 감춰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비뚫어진(?) 생각도 든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이방인에게까지 손을 흔들며 눈을 맞추는 이들에게선 호의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힌다. 거꾸로 보면 ‘난 당신에게 적대감이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인사를 나누는 손엔 총을 들 수 없다. 운전을 하는 와중에도 경적을 울리거나 위협적으로 끼어들지 않는 까닭이 아닐까. 운전 중 다툼이 일어난다면 한국에선 흔히 주먹질이 오가겠지만 이곳에선 총격전이 벌어지지 말란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