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연수기관인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비즈니스 스쿨(Columbia Business School)은 글로벌
MBA(경영대학원) 중에서 최상위권 랭킹 학교 중 하나입니다.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이 집결해
있는 뉴욕 맨하탄에 있는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은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가 선정한
‘2014년 글로벌 MBA 랭킹’에서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런던 비즈니스 스쿨, 펜실베니아대
(와튼 스쿨)에 이어 5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졸업생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투자 대가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 졸업한 MBA가
바로 이곳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입니다. 버핏은 주식 투자 방법의 하나인 이른바 ‘가치 투자
(Value Investment)’를 처음으로 개척한 벤자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 당시 컬럼비아에서
가르친다는 얘기를 듣고 MBA로 컬럼비아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레이엄에게 가치투자
방법을 배운 버핏은 MBA 취득 후 195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주식 투자에 나서며 오늘날의 거부를
쌓게 됩니다.
필자는 컬럼비아대학교에 가서 여유 시간이 생기면 비즈니스 스쿨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편입
니다. 증권 및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고 수업 청강도 경영·경제 과목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스쿨 도서관을 상대적으로 자주 방문하게 됩니다. 가끔은 컬럼비아 MBA 학생
들과 도서관을 오가며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지난 연말에는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로
있는 한국인 제리 김(Jerry W. Kim) 교수를 맞나 티타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컬럼비아 MBA에서 최근에 벌어지는 트렌드 변화를 알게 됐습니다.
최근 MBA 학생들의 큰 변화는 취업 트렌드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
린치 같은 IB에 대한 졸업생들의 취업 선호도가 지난 몇 년 새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수십년간 컬럼비아 MBA 졸업생(아마 대부분의 상위권 MBA 졸업생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이
가장 들어가기를 선호했고 실제 가장 많은 졸업생이 취업을 했던 분야는 단연 IB였다고 합니다.
IB에서 기업 간 인수·합병(MA) 자문이나 주식·채권·파생금융상품의 매매 및 판매 업무에 종사
하면서 대규모 연봉과 성과급을 받고 일찌감치 거부를 거머쥔 뒤 이르면 40대에 은퇴를 하는 ‘꿈’
을 이룰 수 있는 직장이 바로 맨하탄 월스트리트의 IB들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재작년부터 큰 변화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 MBA 졸업생 중 IB 취업자
규모가 처음으로 2위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대신 컨설팅 회사에 취업한 졸업생이 30%를 넘어서면서
1위로 올라선 것으로 집계가 됐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도 컬럼비아 MBA 졸업생 중 컨설팅 취업자는
IB를 밀어내고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글로벌 IB들이 집결해 있는 맨하탄에 있는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에서 이런 현상이 2년 연속 나타난
것은 IB 인기 감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입니다. IB 인기 감소는 컬럼비아
MBA에 국한된 현상은 물론 아닌 것 같습니다. 맨하탄에 있는 또 다른 명문 대학으로 평가 받는
뉴욕대학교(NYU) MBA에 다니고 있는 제 지인에게 물어보니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현재 재학생
중에서 IB보다는 스타트업(신생 벤처회사) 기업에 들어가겠다는 학생들이 매우 많아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을 봤더니, 지난해 하버드대학교 MBA 졸업생들 중 월스트리트에
진출한 비율은 27%로 전년도의 35%에서 크게 감소한 반면, IT 기업으로 진로를 잡은 비율은 같은
기간 12%에서 18%로 늘었다는 외신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큰 구조조정을 겪었던 IB 임직원들의 급여 및 보너스, 근무여건이
과거 전성기 때에 비해 좋지 않고 ‘볼커 룰’ 등 각종 규제들이 강화되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빠르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MBA 졸업생들의 ‘직업 시장 전망’이 IB
인기 감소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오직 돈을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IB보다는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적고 다양한 산업에 대해 공부할 수 있으며 나중에
새로운 취업 및 창업 기회도 잡을 수 있는 컨설팅이나, 회사 성장에 보다 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창업 기업이 더 보람이 있는 직장이다고 생각하는 미국 젊은이들의, 일종의 ‘직업 가치관’의
변화도 MBA 졸업생 취업 트렌드 변화 이유가 아니겠냐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컬럼비아 MBA 학생들 사이에선 취업 트렌드가 큰 변화라면, 교수들은 시대 변화상을 보다 잘 반영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개발하는데 가장 많은 고민과 시간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제리 김 교수에 따르면, 단순한 이론 및 공식을 전달하는 강의는 동영상 등으로 대체하고
남는 시간에 산업에 대한 인사이트나 비즈니스 리더십, 직업 윤리의식, 창업의욕 등을 고양하고 키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개발하는데 동료 교수들의 컨센서스가 모여져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커리큘럼 목록을 보면 주식분석, MA, 회사채투자 등 몇몇 과목들은
월가에서 근무 중인 현직 펀드매니저 등이 직접 강사로 초빙돼 강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
다. 다른 미국 대학이나 한국의 MBA들도 이렇게 외부 전문가를 직접 초빙해 강의를 맡기는 경우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은 학생들에게 현장감이 높은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제리 김 교수를 비롯한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 교수
들이 하고 있는 새 커리큘럼 개발 고민이 덧붙여진다면, 과연 몇 년 후 이 학교의 MBA 강의 내용과
질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관심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