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의 군인에 대한 격 높은 예우는 유명하다. 미국은 매년 11월 11일을 Vetetans Day로 정해 기념하는데, 이즈음에는 전역 군인들을 위한 각종 행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진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지역의 전역 군인들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고 주민들과 함께 행진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모금 활동도 병행됐다.
이런 활동이 Vetetans Day 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핼러윈 데이를 기념해 버지니아주 비엔나 지역에서는 지역 봉사 단체들이 기획한 퍼레이드가 진행됐는데, 거기에도 어김없이 전역 군인들이 등장했다. 귀신과 좀비, 만화 캐릭터의 행렬에 앞서 전역 군인들을 태운 무개차가 지나가자 주민들이 모두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핼러윈에 넘쳐나는 초콜릿과 사탕은 치과에 기부하면 협회에서 이를 모아 전세계에서 복무 중인 미군에게 전달한다고 한다.
미국은 군사대국답게 군 관련 박물관이 적지 않고, 꼭 군을 주제로 하지 않았더라도 역사를 다루며 군과 전쟁에 대한 자료를 전시해 둔 곳도 많다. 특히 우리 입장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쟁을 다룰 때는 한국전쟁(6·25전쟁)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 수도 워싱턴D.C.에 베트남전과 함께 한국전 기념 공간이 조성돼 있는 것은 유명하다. 2020년에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문을 연 미 국립 육군박물관에는 아예 한국전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곳보다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6·25 관련 자료들이 더욱 반가웠다. 미국 원주민, 즉 인디언의 역사를 다룬 네이티브 아메리칸 박물관이 한국과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여기에서도 관련 전시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 원주민도 미국인으로서 전쟁을 수행했고 따라서 한국전에도 참전했기 때문이다. 전시에 따르면 한국전에 참전한 원주민은 1만 명가량인데 대부분이 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한 숙련병들이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흑인의 역사를 다룬 아프리칸 아메리칸 박물관에도 한국전에서 활약한 흑인 장병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한국전을 다룬 여러 박물관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버지니아주 노퍽(Norfolk)에 위치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기념관이었다. 워싱턴 D.C.에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은 맥아더 장군 부부의 묘소이자 그의 생애와 업적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그러니 한국전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일본의 항복과 조선의 독립, 미군정, 한국전쟁 등에 대한 자료가 폭넓게 전시돼 있었다. 역사 공부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것.
맥아더와 직접적 관련은 없으나 전쟁 이후 남북 대치 상황에 관한 자료도 일부 전시돼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 베어낸 미루나무 조각이었다. 북한군이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 군사적 충돌 위기까지 갔으나 다른 박물관에서는 관련 자료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만큼 이곳이 한국에 관련 방대한 자료를 충실히 전시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이들은 특히 전쟁 전후 남북이 서로 날려 보냈던 삐라와 당시의 전투 장비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쏟아지는 질문에 아는 지식을 총동원했지만 수시로 대답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터넷 검색까지 동원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더하다보니 관람 시간은 2시간이 넘어갔다. 이곳을 방문할 의사가 있다면 6·25와 전후 국제정세에 대한 예습을 충분히 하시길 권한다.
*맥아더 기념관 홈페이지
https://www.macarthurmemoria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