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살다 가자.”
가구 하나 없는 휑뎅그렁한 집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 때 마음은 그랬다. 싸온 짐은 이민가방 2개와
찬거리 등을 담은 작은 가방이 전부였다. “미국 가긴 가는거냐”는 가족의 원성을 들을 정도로 준비
없이 떠나온 탓이었다. 설상가상 아내의 휴직계획이 좌절되면서 코흘리개 둘을 이끌고 좌충우돌 미국
생활을 이어왔다. 돌이켜보면 꿈같은 시기는 아내가 연차휴가를 몰아 다녀갔던 지난해 9월과 올해 5월
이었던 것 같다.
출국 전까지 마감에 쫓기다 무방비로 미국 땅에 던져질 또 다른 비운의 연수생을 위해 그동안 체득한,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미국정착 노하우를 정리해본다.
1.집 구하기: 스트리트뷰로 현지답사
낯선 환경에 일찍 자리잡는 최선의 방법은 처지가 비슷한 기존 연수자로부터 집과 살림살이를 몽땅
물려받는 것이다. 필자가 연수중인 UC Berkeley엔 대학원생과 연구원, 방문학자들이 공유하는 커뮤
니티 장터(www.kgsa.net)가 있다. 시애틀, 뉴욕 등 주요 도시마다 유사한 사이트가 있으니 출국 전
구글 스트리트뷰 등으로 미리 보고 일찌감치 확정하는 게 가장 속편한 방법이다.
사전에 기존 방문학자가 살던 집을 인수하지 못했다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필자의 경우 인천공항
에서 Zillow라는 앱을 통해 둘러볼 집을 고른 후 현지 도착해 사흘간 직접 둘러보고 곧바로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내 금융기록이 전혀 없는 탓에 소득 등 증빙서류를 잔뜩 요구하긴 했지만 운좋게 부동
산회사의 깐깐한 신용도 심사를 통과했다. 무려 40페이지가 넘는 계약서에 서명해야 했지만 그들의
임대차 시스템을 경험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2.‘가격이 협조적(COST COoperative?)’ 코스트코
물가 비싼 지역에서 연수생활을 하다보니 다니고, 먹고, 입는 모든 재화의 8할은 코스트코를 이용했다.
처음엔 한국 코스트코 카드를 가져와 그대로 사용했지만 지난 겨울 한 사건으로 인해 코스트코 Execu-
tive Member 카드를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샌디에고 여행을 갔을 때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샌디에고
동물원과 씨월드 등을 일정기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3 in 1 패스’를 구하러 현지 코스트코 매장을
간 게 발단이었다. 직원을 붙들고 한국 멤버십 번호로는 코스트코 사이트에서 패스 구매를 할 수 없다
하니 즉석에서 판매창구로 안내해 패스 3장을 내줬다.
쾌재를 부르며 아이들과 함께 샌디에고 곳곳을 누비던 중 뒤늦게 내야 할 비용 이상을 지불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성인 1장, 소인 2장을 요구했는데 성인용 패스 3장 값을 치른 것이다. 여행을 마친 후 코스
트코 홈페이지에 고객불만을 접수했다. 얼마 후 샌디에고 지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구매과정
내내 아이들이 곁에 서 있기까지 해 착오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항변하니 미안하다며 차액
인 50달러를 캐시카드로 보내왔다.
그들의 보상금에 같은 금액을 더 내 가입한 게 Executuve 카드였는데 코스트코 여행패키지 상품과
렌터카, 그리고 쓰는 만큼 적립해 1년 뒤 현금으로 되돌려주는 혜택까지 있어 가입비가 아깝지 않은
선택이었다.
3.방문학자의 보너스, ‘학생 할인’
방문학자(Visiting Scholar) 신분은 굳이 따져보자면 강사와 학생의 경계인쯤 된다.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없는 대신 가끔 강연을 요구받기도 하니 교내에선 교수단(faculty)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학부, 대학원생과 함께 수업을 들으며 교정을 누빌 수 있으니 학생 신분의 자유로움도 누린다.
미국 도착 직후 방문학자 업무를 관할하는 교직원을 만나러 국제학사를 찾았다가 조교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Campus SIMs’라는 통신사 유심카드였다. 월 25달러에 통화 1000분, 문자 무제한,
4G LTE Data 500Mb를 쓸 수 있는, 학부 신입생을 겨냥한 신생 벤처 통신업체 상품으로 잠시 써보고
일반 통신사로 갈아타야지 했던 게 결국 1년을 채웠다.
Universal Studio Hollywood 연간회원권 등도 재학생 별도 접속 사이트를 통해 캘리포니아 거주민
할인보다 10달러 추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학교 이메일 계정을 통해 6개월 무료체험이 가능한 아마존 프라임도 빼놓을 수 없는 ‘학생’ 혜택이다.
가급적 블랙 프라이데이(11월24일)나 아마존 프라임데이(7월11 혹은 12일)에 걸쳐서 쓸 수 있게 가입
시기를 조절하면 괜찮을 듯하다.
4.‘티끌모아 태산’ 멤버십 포인트
버는 돈 없이 1년을 지내니 자연 씀씀이에 예민해 지기 마련이다. 이웃 이공계 교수들과의 모임에서도
“이번 달은 숨만 쉰 것 같은데 3000불이 나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니 처지는 어느 집이나
대동소이한 모양이다.
틀어쥐려 해도 빠져나가는 돈이니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연수 초기부터 호텔, 항공사, 카드 지출
등을 한 곳으로 집중하면 1년을 마무리할 즈음 제법 푸짐한 ‘포인트’ 보너스를 누릴 수 있다. 필자의
경우 학교가 있는 다운타운 버클리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이 체이스은행이었다. 그래서 입국
첫날 체이스 은행 계좌를 열고 직불카드를 사용했는데 연수 5개월차부터 체이스 프리덤 언리미티드 카드
를 쓰기 시작하니 6개월 만에 500불이 넘는 포인트가 쌓였다. 진작 씀씀이를 포인트 카드로 연결했으면
하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신용점수가 모든 걸 좌우하는 미국에서 사실상 제로에서 출발하는 연수생이 신용카드를 발급받기란 불
가능하다. 하지만 학교지점을 통하면 의외의 융통성을 경험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계좌를 틀 때 만난
체이스의 중국계 은행원이 도움을 줬다. 카드 신청 후 처분을 기다리지 말고 심사부서로 곧바로 전화해
상황 설명을 해보라는 조언 덕분에 연수 하반기 씀씀이 가운데 일부를 포인트를 건질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