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리포트(1) 초기 미국의 초등학교
엊그제 아들녀석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Field Trip'(우리의 야외학습)으로 ‘Meridian Historical Village’에 같이 다녀왔다. 이곳은 미국 중 북부 미시간주의 주도인 ‘ 랜싱’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850년대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아이들은 한 학기에 두 세 번씩은 이런 기회를 갖는데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음악회, 뮤지컬 등 수준이 올라간다.
학교에선 이날 참가할 때 당시 복장대로 남자아이일 경우, 양말이 말려 올라간 긴 바지와 버튼이 있는 셔츠를, 여자아이는 앞치마가 있는 드레스를 입고 올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 아빠들도 당시 복장으로 와 마치 옛날 우리 나라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초원의 집'(The Little House on The Prairie) 시대에 살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이 ‘Meridian Historical Village’는 몇 개의 건물로 이루어 졌는데 먼저 1850년에 시작하여 20년 만 에 완공된 ‘널 판지로 된 포장도로’. 이곳에서 통행료를 받았던 ‘톨게이트 하우스’와 1862-65년 사이 John Grettenberger가 세운 당시 미시간의 전형적인 농가인 ‘Grettenberger Farmhouse’, 그리고 한 칸 벽돌교실인 ‘Randall School House’가 대표적이다.
*** 랜달 초등학교(Randall School House) ***
이 학교는 1833년에 $853.45로 만들어졌다. 당시 이곳 저곳으로 떨어져있던 벽지 주민을 위한 배려였다. 초기에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도 교육엔 아주 열성 적이었다. 그들은 학교가 없을 때엔 집에서 자녀들을 가르쳤다. 그 다음엔 조그만 통나무로 얼기설기 구조를 이룬 시골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나마 이런 학교라도 다니려고 아이들은 수 마일을 걷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학교는 1학년부터 8학년까지 가르쳤는데 당시 교사의 월급은 아주 짰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은 절약의 한 방법으로 자신이 맡은 아이의 집에서 하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학교의 하루는 추운 교실을 따뜻하게 하려는 교사의 난로를 피우는 연기와 함께 시작했다. 때로는 아이들은 감자를 갖고 난로 위에다 놓고 구워 먹기도 하였다. 교사들은 벨을 울리며 수업시간을 알렸다. 아이들이 배운 과목은 수학과 지리, 역사, 그리고 펜글씨 교본이었다. 특히 수학 시간엔 종이가 비싸 돌에다가 숯으로 숫자를 쓰고 지우길 반복했다. 칠판에 분필로 쓴 것은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 돌은 계속 후배들에게로 물려 내려졌다. 체육 시간엔 공깃돌 놀이와 술래잡기, 눈오는 날이면 눈싸움이 지금처럼 인기였다. 어쩌면 낭만 적이었다.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중앙에 큰 난로가 놓여있고 왼쪽 앞엔 오르간이 자리잡았다. 정면 벽 위로 미국국기가 양쪽 벽에는 초대 대통령인 죠지 워싱턴과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화가 학생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조그마한 책걸상은 20 여 개 남짓,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달려올 듯 하다.
*** 교사를 위한 규칙***
교실 뒤에 붙은 종이 하나가 나의 시선을 끌었는데 다름 아닌 교사들의 원칙(Rules for Teachers)이었다.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1) 교사는 계약기간엔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
2) 교사는 남자를 사귀어서는 안 된다.
3)교사는 학교 일을 제외하곤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 까진 집에 있어야한다.
4)교사는 아이스크림가게가 있는 시내를 배회해서는 안 된다.( 당시 이곳은 요즘 만남의 광장 격 이었다함)
5)교사는 장학사의 허락 없이는 사는 곳 밖을 여행해선 안 된다.
6)교사는 아버지나 남자형제를 제외하곤 어떤 남성과도 마차를 타서는 안 된다.
7)교사는 담배를 피워선 안 된다.
8)교사는 밝은 색의 옷을 입어선 안 된다.
9)교사는 어떤 경우에도 머리염색을 해선 안 된다.
10)교사는 적어도 두 겹의 속치마를 입어야 한다.
11) 교사의 드레스는 발목 위 2인치보다 짧아선 안 된다.
12) 교실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교사는 적어도 매일 한 번은 바닥을 쓸어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마루바닥을 빡빡 문질러야한다. 난로는 7시에 피워 8시 까진 교실이 따뜻하게 해야한다.
표현 상 교사는… 운운 하지만 대부분의 규제가 여교사에게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당시 교사들의 위치는 어땠을까?
안내를 해주던 버지니아 에데러(Virgia Edrrer)는 ” 가난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신의 직업에 만족했고 학부모는 교사를 존경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또한 당시에도 부모들은 의무적으로 난로를 제공했으며 나무나 석탄까지 학교에 갖다 주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학교를 교사한테 맡기기만 한 게 아니라 학교의 모든 일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 스승의 날 없는 미국학교***
요즈음의 미국의 학교도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빈발하고있는 총기사고에, 약물중독 등…..
아이의 학교 앞에도 ‘우리 학교는 약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자랑으로 여깁니다.’라고 현수막이 붙여있다.
특히 미시간의 초등학교 교사들의 업무는 과중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근래 이들의 이직율도 다른 직종에 비하면 높다고 한다. 한 반 15여명의 아이들이 대부분 담임과 보조교사의
지도를 받는다. 일년에 두 세 번 학교에 가는 우리와 달리 여기 부모는 거의 매일(?) 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기자재를 준비하고 아이들의 준비물을 도와준다. 아이들이 모아온 빈 캔을 수퍼에 배달하기도하고, 학교재정에 보탬이 되는 일을 적극 적으로 찾아 나선다.
그래 선지 내가 본 교사들의 표정은 밝고 여전히 건강하다. 1학년부터 5학년 모두가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3시 35분까지 열심히 놀고 배운다. 그런데 그 많은 공휴일 중에 스승의 날이라고 특별히 정해 진 것은 없단다.
미국엔 왜 스승의 날이 없냐고 버지니아에게 물었더니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던지 오히려 날 한참동안 보았다. 그리고 나선 그녀는 대답했다. “우린 1년 365일이 스승의 날이다.. 항상 그날처럼 그들을 대하려고 한다. 왜 그런 날이 필요한 건가?”
지난 5월 15일은 한국에선 스승의 날이었다.
특히 금년엔 ‘버림받은 한국교육’이란 신문특집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들었다. 그만큼 교육문제만큼 우리에게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일회성의 냄비언론이 아니라 모두가 처음부터 다시 진지하게 집어봤으면 한다.
한국에서 올해 스승의 날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공식적인 행사도 없이 휴무로 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저런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한국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안타 까왔다.
늦었지만 지금도 일선현장에서 고생하시는 모든 교사 분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축하를 드린다.
해외연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