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리포트 (4)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지난 5월 28일은 미국의 현충일(Memorial Day, 전몰장병 기념일) 이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에서 그 이후 베트남전쟁 그리고 몇 년 전의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던 참전 노병들과 상대적으로 젊은 예비역들이 당시 그들이 참전했던 빛 바랜 군복을 입고 가슴엔 자랑스런 훈장을 단 채 시내를 자랑스럽게 화보하고 있었다. 시민들 또한 이들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목에 꽃다발을 건네주면서 사진도 찍고 함께 행진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국가와 국민들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새삼 느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며, 이 평화가 그저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것은 모두 이들로부터 나온 것이다”라고 이들의 업적을 기렸다.
미국은 우리가 알다시피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이끌어 나가고 공동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 구심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국기와 대통령으로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특히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진정한 미국의 영웅으로 대접한다. 대통령이 직접 이들의 행동을 찬양하고 추모의 날로 선포하며, 조기를 달 뿐 아니라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장학재단이나 공원을 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국민들 또한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맞아 준다.
3년 전. 매사추세츠 주의 한 마을에서 화재사건으로 4명의 소방관이 순직하였다. 대형사고이지만 특히 이들의 사연이 미국인들을 감동시킨 것은 당시현장에서 충분히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누군가가 건물 안에 장애인이 있다고 하자 뒤늦게 이를 구하려 들어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영화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지고 있다.
연일 언론은 이들을 미국의 영웅으로 다루었고 전국적으로 기금을 모금하는 등 정말로 떠들썩하였다. 어느 나라의 국왕의 죽음도 이처럼 크게 치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례식엔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하여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도 참석했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미국의 메스컴 에선 난리가 났다.
밥 케리 전 상원의원이 스스로 언론에 나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선거 때마다 대통령 감으로 발표되는 미국정계에선 알아주는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베트남 전쟁에 소대장으로 참가하여 자신도 큰 부상을 하였다. 문제는 그가 베트콩 20여명을 사살하여 그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았는데 당시 이들은 베트콩이 아니라 실은 어린아이를 포함 부녀자와 노인들인 양민이라는 것이다.
30 여 년이나 그냥 그렇게 넘어왔던 이 사건이 이렇게 불거진 것은 당시 밥 케리 소대의 부하 하나가 인터뷰 며칠 전 ‘양심고백’을 하였기 때문이다. 케리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를 “고의로 은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양민이라는 것도 당시엔 확신 할 수 없었다.”라고 주장하였다. 여론도 밥 케리의 용기를 높이 사는 사람과 부하가 폭로하자 어쩔 수없이 나섰다며 그 순수성을 비난하는 측으로 나누어졌다.
국방부도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영웅에 대한 찬양 못지 않게 이들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면 지체없이 그 진실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50년도 지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그리고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찾기 위한 미국정부의 집요한 노력을 익히 알고 있다.
마스크를 하고 정복차림의 미군들이 판문점을 통해 한국전쟁의 와중에 실종된 미군의 운 구를 하고 있다. 성조기가 담요처럼 관을 싸고 있고…
관이 남측 경계선을 통과하자 예포가 터지고 미군 고위장교가 최대한 예의를 차려 거수경례로 이들을 영접한다.
우리가 TV로 자주 접할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가 관심이 있는 건 시신 한 구에 수십만 달러를 지불하는 그 경제적 숫자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오랜 세월, 가족들조차 희미해하는 것에 어쩌면 모른다하고 손을 놓아도 크게(?) 탓하는 곳도 없을 것 같은데도 이에 사활을 걸며 집착하는 미국, 도대체 이 나라의 무엇이 이렇게 만들어 왔는지 그 시스템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난 5월 23일 미국의 대표적 전국 지인 ‘USA TODAY’는 톱기사로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 파퓨아 뉴기니에서 실종되었던 폭격기 B-17기의 7명 승무원 잔해발견을 보도했다. 특히 이들의 신원을 확인 해주는 인식 표(DOG TAG, 군인이 전쟁 중에 전사 및 실종되었을 경우 나중에 신분을 확인 할 수 있도록 이름, 계급, 군번이 적혀있는 목걸이로 군인은 항상 이것을 걸고 다녀야 한다)가 진흙을 묻힌 채 선명하게 주인공을 나타내 보여 주었다. 그는 당시 22세의 미 공군 로버트 번즈(Robert Burns)하사였다. 이들은 1942년 10월31일 이른 새벽에 일본군 폭격에 나섰다가 악천후로 추락한 것으로 당시 전쟁일지에 기록되어있다.
미국은 1976년에 하와이에 ‘U. S. Army’s Central Identification Laboratory’를 설립하여 전쟁실종자를 찾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발굴 팀은 모두 3팀으로 한 팀 당 12명으로, 이중 11명은 군인이며 이들은 폭파, 유해처리, 감식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이루어져있고 민간인으론 1명의 인류학자가 유일하게 포함되어있다. 이들은 보통 30-45일 간에 걸쳐 임무를 수행하며 이들이 현장에서 수거한 잔해와 유품, 유골은 이후 검사 실로 옮겨져 치아를 비롯하여 친척 등 다른 연계기록을 참고하여 검사하고 특히 법의학의 입장에서 모발과 치아는 DNA검사를 통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유골의 신원을 밝혀낸다.
이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며 땅을 파고 나무를 베기도 하며 계곡에서 유해를 찾는다. 다행히 이번은 이곳주민들이 2년 전 산에서 이상한 것이 있다고 제보를 해오고, 마을의 정서가 스스로 수호신이 되어 비극의 현장을 보존해준다는 주민들의 의식이 있었기에 다이 추락 한 지점에서 발견된 비행기의 동체와 꼬리부분, 캐리버 50기관총, 편지, 목걸이, 동전 등이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당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어려움은 말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번에도 밧줄로 연결하며 오르다가 하마터면 협곡으로 떨어져 죽을 뻔한 대원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4월엔 베트남에서 활동중인 7명의 팀원이 악천후로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생명을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상대적으로 베트남은 정기적인 도로 청소 때문에 실종자의 유골의 보존과 발굴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이 그만둘 수 없는 이유를 유골처리 전문가인 Leon Hudson하사는 ” 이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우리가 활동 중에 그들의 유해를 발견 고국으로 가져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 될 것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아직까지 2차 대전이후 조그만 전쟁에 이르기까지7만 8천 여명의 실종자가 이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엔 8천 여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한국전쟁과 2천 여명으로 알려진 베트남 참전 미군실종자가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서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그리고 6일은 현충일이다.
우리도 얼마 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국군의 생사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모두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그래서 현충원 기념탑에 이름까지 새겨있던 사람이 어느 날 살아 돌아와서 자신의 손으로 그 이름을 지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북한의 탄광에서 갇혀 고생하는 참전 국군이 많다는데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했나?
6.15 정상회담으로 결국 이 문제도 흐지부지 된 느낌인데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싸운 이들에게 도대체 국가는 무얼 하는 곳일까, 그 존재자체에 회의가 든다.
만일 미국처럼 했다면 병역비리나, ‘박노항 사건’이 있었을까?
몇 년 전 ‘고엽제’를 취재할 때 당시 인터뷰 중 울부짖던 환자의 아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아들보고 군에 가라면 나는 차라리 아이를 죽여버리는 편이 낫지 군엔 안 보내겠다.”고….
해외연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