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미국의 미주리주에 있는 콜럼비아란 작은 시에 있는 UMC(University of Missouri, Columbia)에서 1년예정으로 연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긴 일과 겪은 일을 몇차례에 나누어 전해드리겠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거나 궁금한 일이 있으신 분들은 메일을 보내주십시오. 최대한 도와 드리겠습니다.
한겨레 신문 곽윤섭 KwakY@missouri.edu
제가 미국에서 할 일중의 하나가 많은 것을 보고 듣기입니다. 그래서 여건이 허락되는 한 여행을 많이 갈 생각입니다. 막상 학기가 시작되면 여행갈 틈이 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9월에 가을학기가 시작된 이후론 어딜 다녀오고 싶어도 갈 수가 없네요. 좀 갈 만한 곳은 대개 가는데만 하루이상 걸린다니… 그래서 8월엔 좀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 연유로 또 놀러갔던 이야기입니다.^^
평균 속도 시속 70마일(104km)을 유지하며 달리면 7시간 가량 걸리는 시카고에 다녀 왔습니다. 아침에 출발한 저희 팀은 중간에 자주 쉬고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어서 9시간이 더 걸려 해가 진 뒤에야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라는 것은 텐트를 치는 캠핑장입니다.
미국에 첨 올때부터 여행다닐 땐 가능한 텐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이민가방속에 텐트도 들어 있었죠. 경비가 절감되는 최대의 장점이 있는데다가 자연과 어울려 쉬면서 여행의 참 맛을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본 미국의 허름한 모텔도 하루밤에 70달러는 줘야 합니다. 텐트의 경우 비싼 곳도 하루에 20달러를 넘지 않습니다.
출발하기전에 안내책자를 참고해 미리 봐두었던 Tinley Park란 캠핑장에서 이틀을 잤습니다. 시카고에서 30분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아침에 이동하기가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까운 곳을 선택했죠.
시카고는 미국에서도 세번 째 안에 드는 대도시입니다. 그런 탓이었는지 캠핑장의 시설이 좋지 않았습니다. 좋고 나쁜 기준이 정확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나름대로의 기준을 생각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1. 공간이 넓을 것-텐트를 칠 수 있는 사이트(site)가 넓으면 좋죠. 옆 텐트와 어느정도 독립성을 유지할려면 공간이 확보되어야죠.
2. 수도나 전기등을 쓸 수 있을 것-캠핑장에 따라 텐트장 바로 옆에 수도꼭지와 전기를 꽂는 소켓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수도와 전기가 있으면 편한 일이 많겠죠? 캠핑장에 온 미국인들은 온갖 것들을 다 가지고 다니더군요. 조명기구, 대형 오디오, 텔레비전, 전자렌지, 선풍기까지 가지고 온 팀도 있더군요. 한국 사람들의 경우 전기밥솥을 쓸 수 있으니 아주 편하죠. 스탠드정도를 가지고 다니면 굳이 랜턴이 없어도 되고요. 나중에 제가 방문했던 다른 곳은 가까운 곳에 전기와 수도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 경우에도 화장실에 가면 시설이 되어 있죠. 화장실이라고 해도 샤워시설과 세면대, 경우에 따라 싱크대까지 있으므로 큰 불편은 없습니다.
3. 나무가 우거진 곳-야영을 하는 것이니 만큼 큰 숲 속은 아니더라도 나무가 가까이 있는 것이 좋더군요. 아침에 햇살이 바로 텐트로 쳐들어오면 상당히 고통스럽더군요.
4. 조용할 것- 주변에 찻길이나 철길이 없는 곳이어야 좋겠죠? 대도시가 가까운 곳은 당연히 시끄럽기 마련입니다.
제가 다녀 본 곳중에서 위에 든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곳은 몇 군데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두가지 조건이 나쁘더라도 견딜 만 하더군요. 시카고의 Tinley Park야영장의 경우는 좀 상황이 나쁘긴 했죠. 나중에 알았지만 도시주변일수록 시설이 좋지 않더군요. 시카고에서 불과 30분 떨어진 곳이라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와 가깝더군요. 게다가 RV용 사이트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캠핑장이라서 텐트치는 곳엔 나무가 없었습니다. 물론 잔디는 있었죠.
그래서였는지 우리 주변에 텐트를 친 팀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모닥불을 피웠으나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아주 힘들었습니다. 간신히 식사를 하고 일찍 텐트에 들어갔는데 천둥,번개까지 곁들인 폭풍우가 내리쳐서 조마조마했습니다. 집사람과 딸 아이는 차에서 자겠다고 가버리고 혼자 텐트안에 몸을 뉘었는데 이리저리 흔들리는 바람에 애를 먹었습니다. 긴 밤을 보내고 아침이 왔습니다.
시카고 관광에 나섰습니다.
시카고는 미주리 오른쪽에 있는 일리노이주에 있습니다. 오대호라고 기억이 나죠?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있는 다섯 개의 큰 호수. 그중의 하나인 미시간호가 있고 시카고는 그 미시간호의 남서쪽에 면해 있는 도시입니다. 늘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해서 Windy City란 별명이 붙었다고 하던데 이건 과장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미시간호는 남북쪽으로 500㎞, 동서쪽으로 150㎞에 달하는 크기의 거대한 호수입니다. 그야말로 바다같았습니다. 실제로 보기엔 바다가 아니라고 우길 이유가 없어 보이더군요. 끝없이 펼쳐진 파란 수평선은 바다를 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여길 처음 본 인디언들도 호수라고 짐작하지 못했을 거야”
City Pass란 것을 샀습니다. 이건 시카고안에서 가장 볼 만 하다는 여섯군데의 입장권을 한꺼번에 묶어서 파는 티켓입니다. 여섯곳을 각각 구입하면 돈이 더 들겠죠. 물론 단점은 일단 City Pass를 산 이상 적어도 5군데는 봐야지 본전이 빠진다는 점입니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녀야 하죠. 시카고 필드뮤지엄, 과학·산업박물관, 애들러 천문대 겸 천체 박물관, 쉐드 수족관, 예술 박물관(회관?), 행콕 전망대까지 모두 여섯 곳이죠.
이런 건물이름같은 고유명사의 경우엔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벌써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어 우리말의 표기법이 정해져 있다면 쉬울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자신이 없네요. 이와 관련해 예전에 제가 황당한 경우를 당했던 경험이 있어서 참고삼아 들려드립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 소설을 들어보셨지요? 루이스 캐롤이 지었죠. 동화라고 기억들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고 저도 그런 사람가운데 한명입니다. 물론 워낙 자주 만화와 영화로 제작이 되었던 이야기였고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동화라고 해도 안될 것은 없겠죠. 저도 어릴 때 (고 1때^^;;)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히 한글로 번역된 것을 보았고 원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누가 그런 것을 기억합니까?<
20년 전 쯤 어쩌다가 제가 미국사람과 소설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죠. 문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말을 못알아 듣는 척 하더군요. 눈을 크게 뜨고.
그래서 발음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죠. 아주 천천히.
Alice in Strangeland….
제가 발음이 좀 안좋긴 해도 그정돈 아닌데 못알아듣더군요. 그렇다면 그 유명한 소설을 모른단 말인가? 이럴수가. 그 사람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학교교사를 하다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할 수 없이 내용을 이야기했죠. 앨리스, 토끼….
그러자 씩 웃으면서
“Alice in Wonderland”라고 하더군요.
머리가 ‘띵’하더군요. ‘이상한’에 해당하는 영어는 strange가 더 적합하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번역할 때 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했을까요? Wonderland라면 ‘놀라운 곳’, ‘동화의 나라’ 등의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는데….
제가 상식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죠.
하기야 어떤 우리말 번역본은 ‘수상한 나라의 앨리스’ 라는 제목을 달고 있더군요. 수상한 나라…..
미국인과 영화이야기를 할때도 조금 긴장을 해야 하더군요. 로마의 휴일은 쉬웠습니다. Roman Holiday. 지옥의 묵시록도 아는 사람이 많죠. Apocalypse now. 얼른 우리말로 떠오르지만 한번 더 검정과정을 거치면서 상식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이야기가 잠깐 옆길로 샜습니다. The Field Museum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여기 한국분들은 흔히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잘 정리가 안되길래 백과사전을 보니 그 정의 또한 복잡하기 이를 때가 없군요. 그래서 저의 생각은 ‘건물 이름은 그냥 그나라 말대로 불러주자’ 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The Field Museum부터 들렀습니다. 해외여행가는 한국 사람들의 특기아시죠?
주마간산이라고… 예를 들자면 영국의 대영박물관을 보려면 한 달이 걸리고 스미소니언박물관을 볼려면 2주일도 더 걸리고 멕시코의 인류학박물관도 최소한 1주일은 봐야한다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물론 한국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도 제대로 볼려면 하루가지곤 어림도 없죠.
그런데 해외여행 상품의 경우 박물관에서 1주일을 보내는 패키지 상품이 있다면 그게 팔릴까요? 시간은 짧고 봐야 할 것은 많고 “우리가 언제 여기 또 올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 란 명분땜에 대충대충 지나갑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큰 마음 먹고 외국의 어느나라에 갔다고 칩시다. 여러 사정상 시간은 1주일로 제한되어 있다고 합시다. 그럼 그 나라의 박물관 하나만 보고 오면 굉장히 손해 보는 느낌이 들지 않을 까요? 그 판단은 간단히 내릴 일은 아닙니다.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논쟁엔 다른 측면도 하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The Field Museum은 사흘정도면 대략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당연히 박물관측에선 상세한 관람을 권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의 경우엔 시카고 전체를 둘러보는데만 이틀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갔다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별도로 잡아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답은 간단히 나옵니다. The Field Museum에서는 두세시간안에 끝내자.
그래서 입구에서 받은 박물관개괄을 급히 공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약 사전지식이 있었다면 시간을 아끼는데 큰 도움이 되겠죠. 저는 큰 준비를 하진 못했고 “Sue를 만나 봐라”란 조언만 기억해냈습니다. 그래서 Sue를 맨 먼저 보고 고대이집트전시실, 공룡의 역사, 땅속의 세계등을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취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정입니다.
박물관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역시 Sue였습니다. 여기도 소위 잘나가는 인기품목이란 것이 있는거죠. 그래서 쉽게 동선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박물관이든지 한번 가보신 분들은 동의하시겠지만 손바닥보듯이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워낙 넓은 곳이다 보니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안내문을 보는 것이 서툴러서 다른 전시실에서 시간을 끌기도 하면서 세시간의 일전을 치뤘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볼 수가 없더군요. 항상 그럴 때면 눈앞에 식당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Sue란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완전한 형태를 유지한 채 발견된 T-rex화석의 애칭입니다.
6천7백만년동안 바위속에 파묻혀 있다가 빛을 보게되었다는 군요. 굳이 크기를 따지자면 T-rex중에서 더 큰 놈도 있긴 하지만 Sue의 경우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된 채 발견되어 학술적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Sue는 이 화석을 발견한 여성학자의 이름이라는데 그대로 이 공룡의 애칭이 되었군요. T-rex란 것은 티라노사우루스-렉스의 약어입니다. 백악기때 이땅에서 제일 강력한 육식공룡이었다고 하죠. 살아 있었을 때를 짐작할 수 있는 엄청난 아가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또한번 미국식 과대 포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Sue를 둘러싼 12가지 불가사의’ 뭐 이런 제목을 붙여놓고 특별코너를 만들었더군요. 그러나 이런 선전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구경하러온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학습법의 한가지임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그런 관심들이 모여 이 나라의 기초과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오고 있음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기초과학을 배우려는 대학원생들이 부족해 큰일이라는 원로과학자들의 한탄을 자주 들었습니다. 물리학, 수학, 지구과학, 화학, 생물학 등 한마디로 말해서 별로 돈이 안되고 전망이 없어 보이는 학문에 뛰어 드는 인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군요.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라는 학생들의 변명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앞서야 겠지요. 그러나 학력고사에서 수석한 학생들이 모조리 법대나 의대로 가버리는 이상한 풍토는 ‘정부의 지원…’ 어쩌고 하는 변명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예전과 달리 부유한 층의 학생들이 명문대를 독점해버리는 요즘엔 그런 변명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좀 폭을 좁힌다면 그저 부모의 욕심과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현실안주, 부의 대물림에만 편중되어 있는 탓입니다. 이또한 더 줄여서 이야기한다면 젊은 학생들에게 패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무슨 대의 수석합격자들이 과감하게 인기없는 과(세속적 의미의 인기)에 진학해 연구하며 평생을 한번 바쳐 보는 패기를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두가지 고시에 다 붙었다는 뉴스말고요.(도대체 이런게 뉴스가 되긴 되나요?)
공룡뼈 화석을 본 소감치곤 너무 비약적인지도….
그러나 이나라 사람들이 박물관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그 박물관이 평일에도 늘 사람들로 가득 넘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부러운 생각이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 글은 인터넷 한겨레의 뉴스메일 http://newsmail.hani.co.kr에서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해외연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