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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 로드 트립의 hidden gem, 아리조나 뉴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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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 로드 트립의 hidden gem, 아리조나 뉴멕시코

김호선 SBS 차장

여행 관련 연수기를 쓸까 말까 여러 번 망설였습니다. 여행지를 소개하는 각종 SNS 글이나 블로그가 넘쳐 나는데 굳이 나까지 쓸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솔직히 여행에서 느끼는 감동이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미사여구가 쏟아지는 여행기에 매료돼 잔뜩 기대를 걸고 떠났던 여행에서 ‘달랑 이거였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누군가의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허비하게 할 수도 있는 만큼 여행지를 추천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미 서부 여행은 그랜드 캐년을 중심으로 한 주변 캐년 혹은 요세미티, 그 위로는 옐로스톤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정된 여행 기간 동안 모두 다 둘러볼 수는 없고 주요 포인트만 이동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율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남서부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의 여행지를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연수기를 작성하게 된 것은 생각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시 시간과 여건이 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검토해 볼 만한 여행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거리와 시간을 고려해 가성비가 높으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황량한 사막 속에서 보석 같은 곳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저에게는 무척이나 쏠쏠했습니다. 끝이 안 보이는 새하얀 사막과 거대 선인장들이 즐비한 산과 들, 누군가 쌓은 듯이 서 있는 바위 숲과 박쥐가 사는 지하세계, 보석이 된 밀림까지.. 한 곳 한 곳이 모두 특별하고 저에게는 색다른 감동을 줬던 곳들이었습니다.

이 글에 쓸 여행지는 아리조나 주와 뉴멕시코 주로 국한했습니다. 그랜드캐년 주변 여행지는 워낙 잘 알려진데다 같이 소개하면 너무 길어져서 제외합니다. 그랜드서클이라고 불리는 여행 루트는 블로그 등을 검색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아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도에 표시된 번호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사와로 국립공원

사와로 국립공원은 선인장의 한 종류인 사와로 선인장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곳입니다. 사와로 선인장은 SAGUARO 라고 표기하는데 발음은 거의 사와로에 가깝더군요. 선인장하면 떠오르는 팔을 쭉 뻗은 모양의 선인장들이 소노란 사막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습니다. 선인장은 크기가 5미터도 넘는 것들도 있고 수명도 200년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곳에는 여우와 토끼 같은 동물들도 많이 사는데 밤이 되면 약육강식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집니다.

국립공원 바로 옆에 있는 소노란 데저트뮤지엄은 입장료가 다소 비싸긴 하지만 (어른 22달러, 어린이 10달러 정도) 부엉이나 독수리들이 날아다니는 광경도 볼 수 있고 (아침 10시에 무료 행사가 있음) 사막에 사는 동식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와로 국립공원의 거대한 선인장들 사이로 붉게 타오르던 노을은 미 서부를 그린 엽서에서나 나올 법한 잊을 수 없는 장관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2. 치리카후아 내셔널 모뉴먼트

미 대륙 인디언들 가운데서도 용맹하기로 유명한 아파치 인디언의 한 부족이었던 치리카후아. 제로니모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탄생시킨 치리카후아족은 외세의 침입에 맞서 맹렬히 싸웠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치리카후아족의 영혼이 서린 듯한 이 곳에는 만약 신이 돌로 탑을 쌓았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거대한 바위 기둥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 규모와 독특함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브라이스 캐년이 여왕의 느낌이라면 치리카후아는 아파치 용사의 모습이 연상되는 강렬함을 느끼게 해 준다고 할까요? 치리카후아는 10번 국도를 빠져 나와 한참을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외진 곳에 있습니다. 주변에 다른 관광지도 없어 가는 내내 맞게 가고 있나 의심이 들만한 곳입니다.

이런 기암괴석들은 화산 폭발로 생긴 퇴적암들이 오랜 시간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오늘 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합니다. 국립공원 내에는 차로 갈 수 있는 포인트가 두어 군데 있는데 이곳만 둘러보고 가면 2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돌 기둥 사이로 난 트레일을 걸어 봐야 이 곳의 진면목을 알 수 있습니다. 아찔하게 서 있는 돌 기둥이 늘어선 계곡은 거대한 예술 전시장과 같습니다.

3. 화이트샌드 국립공원

아리조나 뉴멕시코 여행지 가운데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새하얀 모래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눈이 시려 오래 쳐다 보기도 힘들 만큼 순백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얼핏 보면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이는 이 새하얀 모래의 정체는 석고입니다. 원래 바다였던 이 곳은 분지로 변하면서 주변에 있던 석고가 흘러 들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됐다고 합니다. 석고로 이뤄진 모래는 한낮의 태양에도 전혀 뜨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가운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이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래 썰매를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공원 곳곳에서 애고 어른이고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썰매를 타며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맘에 드는 언덕을 골라 그냥 타고 내려오면 되는데 썰매는 비지터센터에서 대략 20달러 정도에 살 수 있고 돌아갈 때 반납하면 일부를 돌려받습니다.

하얀 모래와 은빛 지붕이 어우러진 피크닉 구역에서 식사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이 방문해 본 것으로 추정되는 여행객들은 모래 밭 위에 비치 파라솔까지 펴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썰매 타고 쉬다 먹다 하는 것도 무척이나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에는 공원 레인저가 화이트샌드 국립공원의 역사와 생태 등에 대해 무료로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이 투어는 일몰에 맞춰 끝납니다. 혹시라도 가신다면 새하얀 모래 위로 붉게 물드는 노을까지 꼭 보고 오시길 바랍니다.

4. 칼스배드 동굴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석회석 동굴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0여개의 동굴이 모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도 많다고 합니다. 비지터 센터에서 입장료를 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꼬박 70층 깊이의 지하로 내려 갑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둘러 보는 곳은 빅룸이라는 동굴입니다. 미식축구 경기장 14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빅룸 루트를 돌아 보는 데만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데 이것은 동굴의 일부에 불과할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골룸이 살았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은 특이한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들은 지상과는 다른 지하세계의 매력을 뽐냅니다.

이 동굴에는 박쥐들이 서식하는데 박쥐들이 드나드는 동굴 입구에 사진과 같은 원형 극장이 마련돼 있습니다. 여름철 저녁에는 박쥐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 먹이를 찾으러 나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지하 세계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박쥐들 덕이었습니다. 1800년대 말 한 소년이 산 위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고 뭔가 싶어 가봤더니 수백만 마리의 박쥐들이 동굴에서 날아 오르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동굴을 따라 내려가 봤고 이것이 칼즈배드 동굴의 발견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박쥐들이 공기를 가르며 오가는 것을 보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한 곳입니다.

5. 로스웰

외계인, UFO의 성지라고 불리는 로스웰은 사실 그렇게 볼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 로스웰 박물관에 들러 과연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둘러보는 것 정도지요. 세상에 널리 알려질 이유가 전혀 없는 작디 작은 시골 마을은 1947년 로스웰 사건 이후 관광객들이 꾸준히 모여드는 세계적 관광지가 됐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외계 생명체에 대해 얘기하고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은 나름 유쾌했습니다. 로스웰 방문자 센터에 가면 친절한 가이드가 외계인 인형들과 무료로 스티커 사진도 찍어줍니다. 외계인을 매개로 흥미와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정겨운 시골 마을입니다.

6. 산타페

어도비 양식의 건축물들과 오래된 교회, 수많은 예술품이 어우러진 산타페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작품과 같습니다. 현대차 산타페가 이곳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가운데 한 명인 조지아 오키프가 정착해 작품 활동을 한 곳으로 유명한 산타페는 미국 내 3대 미술품 거래 시장 가운데 한 곳이라고 할 만큼 많은 예술 작품이 모인 곳입니다. 각각의 상점이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곳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이틀로는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붉은 색의 어도비 양식 건물들 위로 내리는 일출 혹은 일몰의 모습 또한 아름답습니다. 맛있는 커피 전문점과 멕시코 음식점도 많은 곳입니다.

7.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

petrified wood는 우리 말로는 규화목이라고 합니다. 죽은 나무가 썩지 않고 오랜 시간을 거쳐 돌로 변한 상태를 말합니다.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은 말 그대로 나무 숲이 돌 숲으로 변한 곳입니다. 과거 울창한 숲이었던 이 곳은 쓰러진 나무들 위로 흙이 쌓이면서 나무들이 썩지 않고 그대로 굳었는데 그 사이로 광물질이 스며들어 형형색색의 나무돌로 변했다고 합니다.

반들반들한 규화목들은 보석처럼 아름다운데 나무 한 그루 전체가 돌처럼 굳은 것들도 볼 수 있습니다. 장식품으로 팔기도 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바닥에 있는 규화목들을 보다 보면 하나 슬쩍 갖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실 수도 있는데 명백한 범죄행위인데다 특히 이 곳은 이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곳이니 아예 그런 생각은 접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이유로 공원 개방 시간도 일몰 이전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혹시 들를 분들은 서두르시는 것이 좋습니다.

8. 세도나

도시 이름부터 뭔가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곳입니다. 붉은 빛이 감도는 사암에서 강력한 기운이 나온다고 하여 도 닦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몸에 좋은 기를 받기 위해 은퇴한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도시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에어포트 메사에 오르시면 붉은 노을과 함께 도시 전체가 불타는 듯한 장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세도나에도 예술가들이 많은데 산타페와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참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이 지역은 대부분 사막이다보니 지나치게 더운 시기는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 아리조나 뉴멕시코는 시간대가 무척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리조나는 여름철에는 우리가 SUMMER TIME이라 부르는 DAYLIGHT SAVING을 하지 않아 캘리포니아와 시간대가 같습니다. 겨울에는 아리조나와 뉴멕시코가 시간대가 같고 여름에는 캘리포니아와 아리조나가 시간대가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주 경계를 오갈 때마다 착오가 빚어질 수 있고 이 때문에 여행지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 있었거나 행사를 놓쳤다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닙니다. 확실히 두세 번 체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보다 더 안전한 길은 여유 있게 미리미리 도착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하나, 만약 화이트샌드 국립공원을 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반드시 여권을 소지하셔야 합니다. 가족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군사 시설과 가까운 지역인데다 국경하고도 접해 있어 곳곳에서 검문이 이뤄집니다. 이곳에서는 시민권자가 아닌 다음에는 운전면허증 같은 다른 신분증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꼭 미국 비자를 증명할 수 있는 여권을 소지하고 가시길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