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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터스쿨데이까지 한달, 알차게 보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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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괜한 욕심이었나. 아빠 손에 이끌려 느닷없이 낯선 미국 땅에 온 아이에게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영어 유치원은커녕 알파벳만 겨우 익히고 온 아이는 밖에만 나가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자신감 넘치던 한국에서의 모습은 미국 생활 며칠만에 사라졌다. 한국에선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노스캐롤라이나(NC)주 채플힐(Chapel Hill) Seawell Elementary School에선 2학년에 배정된 것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읽기 쓰기 숙제는 평생 영어를 공부한 엄마, 아빠에게도 쉽지않은 과제였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었을까. 엄마, 아빠가 제대로 못 알아 들은 현지인 말을 한 두 마디씩 알아채고 알려주더니, 이제는아빠는 왜 F P로 발음해라며 가르치려 드는 복수(?)를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연수를 시작하기 전 아이를 위한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 비단 영어만이 아니다. 가을학기부터 시작하는 연수자 대부분은 7월말 8월초쯤 연수지에 온다. 반면 아이들 학교는 8월말쯤 개학한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길게는 한달 정도 아이들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야하는 셈이다. 미국에 오기 전까진 그 시간에 여행을 가면되지라고 쉽게 생각했다. 현지 정착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발 빠른 연수자들이 아이들이 다닐 여름 캠프를 한국에서 미리 등록해 놓고 온 것을 보니 후회가 컸다. 현지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아이에게도 학교에 등교하기 전 미국 문화에 적응할 기회를 줄 수 있었는데 놓친 것이 안타깝다.

도착 한달, 출국 한달썸머 캠프를 놓치지 말자

아이들의 성공적 현지 적응을 도우려면 미리미리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사전 등록이 필수인 이곳의 스케줄을 맞추려면 늦어도 연수지에 도착하기 5, 6달 전에는 아이들의 일상을 채워줄 프로그램들을 미리 등록해야 한다. 7, 8월 두 달간 하는 여름 프로그램은 대부분 3월에 마감되고 9월에 시작하는 가을 프로그램도 6월이면 접수가 끝난다.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기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채플힐의 경우 카운티별로 운영하는 커뮤니티센터나 YMCA와 같은 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등록할 수 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클라이밍 등 거의 모든 스포츠 프로그램이 운영되니 선택지가 넓다. 악기를 배우는 오케스트라 프로그램, 그림 그리기나 공예품 만들기 등 미술 수업, 여자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아크로바틱, 낚시, 카약등아이의성향이나취향에따라골라보낼수있다

다만 대부분 한 프로그램에 10인 미만이 정원이라 2, 3일이면 마감된다. 비용도 한국에 비해 적게 든다. 특히 아이스하키, 피켜스케이팅 등 빙상 프로그램은 인기가 많아 등록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자리가 다 차는 경우가 많다. 마감이 됐다면 대기자 명단에라도 이름을 올리는 게 좋다. 대기자가 많은 경우 정원을 늘리거나 수업을 추가로 개설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7, 8월 운영되는 썸머캠프는 아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게 경험자들의 한결 같은 평가다. 학교 시스템과 똑같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5, 오후 2시까지 수업이 진행되고, 스쿨버스와 같은 액티비티 버스로 등하교 한다. 방과후 과정까지 추가로 등록하면 레이트 버스를 타고 5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주단위로 등록할 수 있어, 연수지 도착 스케줄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커뮤니티센터뿐 아니라 각종 박물관 및 사설 교육기관 등에서도 썸머캠프를 운영해 선택의 폭이 더 넓다. 채플힐 지역에선 ‘Museum of Life and Science’에서 운영하는 썸머캠프가 가장 인기있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LEGO 프로그램을 선호하는데, 단순한 레고 조립이 아니라 한국식으로 치면 로봇, 코딩 교육과 같은 수업이다. 자연탐험, 발명가 프로그램 등도 인기가 높다..

영어 공부에 좀더 시간을 쏟고 싶다면 아이가 다닐 학교가 속한 교육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여름 독서 프로그램을 고려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만 ESL 과정으로 교육위원회에서 대상자를 직접 선정한다. 전할 갈 학교에 사전 입학 신청을 마친 뒤, 교육위원회에 이메일 등으로 등록을 요청하면 교육위원회에서 가부를 결정해 알려준다. 7월 한 달간 운영되며 별도의 수업료는 없다. 다만 주당 90달러를 내면 오후 2시부터 545분까지 진행되는 오후 캠프 과정까지 참여할 수 있다.

배움보다 칭찬의 영어 공포증을 극복한 아이

돌이켜보면 영어가 부족한 아이가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던 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간신히 등록했던 가을학기 축구 수업이었다. 아이가 축구를 잘해서가 아니다. 연습이나 시합이 있을 때마다 운동장은 찾는 미국 부모들의 칭찬과 격려 덕이었다.

이곳에선 아이가 어쩌다 한번 공에 발을 대기만 해도 모든 부모들이 큰 소리로 아이 이름을 불러주며잘했다’, ‘멋지다라고 소리친다. 실수를 해도 잘한 부분을 찾아내 큰 소리로 격려한다. 낯선 반응에 처음엔 멋쩍어만 하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자나 정말 축구 잘해라고 되묻는 등 싫지 않은 눈치였다. 영어 공포증 탓에 축구 수업을 거부했던 아이는 이내 자신의 팀인 ‘Wolfs’를 입에 달고 살더니, 현지인만 만나면 굳게 다물던 입을 축구장에선 열기 시작했다.

수영 수업에서도, 공공도서관에서 운영하는 ‘STEAM’ 과정에서도 늘 칭찬과 격려, 응원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는 이제는 한국보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좋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내놓고 말을 안하지만 저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연수 준비가 쉽지 않지만, 연수 생활을 함께 할 아이를 위한 준비는 좀더 일찍 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