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생활도 어느덧 10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복귀일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면서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악몽’으로 가위에 눌리는 날도 잦아지고 있다. 극심한 스모그, 전무한 시민의식, 살인적 물가 탓에 도저히 정 붙이기 어려울 것 같던 베이징 생활이지만, 그것이 일터로 돌아가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낫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 아리도록 되새기는 5월이다.
돌이켜보면 정착 초기에 시간 허비가 많았다. 베이징 생활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서나 지침 같은 게 없어 헤맨 탓이다. 차기 연수자들은 이런 시행착오를 최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난 10개월간 이곳에 살면서 느끼고 체득한 몇 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소개한다.
▶어디에 살 것인가
베이징에서 주거지역을 고르는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대개의 경우, 이 문제는 결국 왕징(望京)에 살 것이냐, 말 것이냐로 귀결된다.
사진 1. 베이징 왕징의 대표적 한인 아파트촌인 대서양 단지 전경.
왕징이 아니라면 가장 유력한 대안은 대학가인 우다오커우 일대다. 역시 최대 강점은 학교와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다. 또 왕징보다 불편하긴 하지만 웬만한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고, 세계 각국의 유학생들이 살고 있어 좀 더 글로벌한 학원가 분위기다. 물론 단점도 있는데 가장 유의할 점은 주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왕징에 비해 아파트는 훨씬 낡았는데, 월세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10~20% 비싼 경우도 있다. 또 동네가 작아 왕징처럼 다채로운 맛도 덜하다. 왕징보다 공항에서 먼 것도 다소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왕징이냐 우다오커우냐를 결정하는 최대 요인은 자녀의 교육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한국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경우 답은 무조건 왕징이다. 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면 역시 왕징에 사는 편이 낫다. 우다오커우에는 한국식 유치원이 없기 때문이다. 왕징에는 한국 유치원이 여러 곳(10곳 내외) 있으며, 한국 교육부의 감독을 받는 한국국제학교 병설유치원도 있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외국계 국제학교의 경우는 통학버스 노선을 살펴 주거지역을 선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한겨레 박영률 차장의 글(‘베이징에 자리잡기 – 국제학교와 집구하기’편)을 참고하면 된다.
동반 가족이 없을 경우엔 학교 기숙사에 사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의 대학교들은 거의 모든 재학생(런민대의 경우 90% 이상)에게 기숙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숙사 얻기가 수월하다. 기숙사 생활의 최대 장점은 베이징 생활의 가장 큰 부담인 주거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 필자가 재학 중인 런민대의 경우 2인실은 매달 1000위안(약 16만4000원), 1인실은 2400위안(약 39만4000원) 수준이다. 왕징의 방 두 개짜리 집 월세의 10~20% 수준이다. 또한 식비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중국 대학들은 수만 명의 재학생들이 먹고사는 하나의 큰 마을과도 같아서 매우 많은 식당을 운영한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아침은 5위안(약 800원) 안팎, 점심·저녁은 10위안(약 1600원) 안팎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식당마다 푸드코트 식으로 중국 전역의 대표적인 요리를 거의 다 취급하고 있어 매끼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휴대전화 문제
중국에 살면서 우리나라 이동통신사들이 얼마나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해 폭리를 취하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중국에선 다양한 종류의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이 가능한데, 잘만 고르면 한국에서 한 달치 통신비로 1년을 사용할 수 있다.
중국에 1년 체류하는 연수자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선불 유심칩이다. 필자가 쓰고 있는 것은 중국 이통사 롄퉁(联通) 상품인데 350위안(우리 돈 약 5만7500원)에 1년을 쓸 수 있다. 매달 통화는 240분, 데이터 사용은 300MB까지 할 수 있는 상품이다. 사용량을 초과하면 정해진 요율에 따라 요금을 후불하면 된다. 하지만 보통 반도 못 쓴다. 데이터 용량이 작아 보이지만, 집에서는 070 인터넷전화 공유기를 통해 와이파이를 쓸 수 있고, 학교에서도 초저가(5위안에 10GB)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끔 여행지 등에서 지도 보고 여행 정보 찾을 때 아니면 데이터 쓸 일이 별로 없다.
개통 절차도 무척 간단하다. 동네 아무 이동통신 대리점이나 신문 가판대 등에 가서 맘에 드는 요금제의 유심칩을 사 한국에서 쓰던 스마트폰에 꽂으면 그걸로 끝이다. 신분증이고 뭐고 필요없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반드시 누군가의 명의가 있어야 휴대폰 개통이 가능한 한국에 비하면 매우 간단하고 유연하다. 물론 중국에서도 본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낀 적이 없다.
▶공기오염 대처법
베이징의 공기오염은 상상 이상이다. 필자의 경우 10개월간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동안 살인적 스모그로 인해 중도 귀국을 고민한 게 몇 차례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오염이 어느 정도로 악성인지는 아래 한겨레 박영률 차장의 글(‘명불허전 북경의 스모그’편)에 대략 언급돼 있으므로 부연하지 않겠다.
따라서 호흡기가 약하거나 공기의 질에 예민한 사람은 베이징에 오는 걸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특히 사랑스러운 자녀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베이징 생활은 도저히 추천하기 어렵다. 건강한 사람도 베이징에 1년 살면 수명이 몇 년씩 단축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에 와야 한다면 반드시 취해야 할 조치들이 있다. 우선 베이징의 시간별 공기오염도(AQI·대기오염질량지수)를 알려주는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놓은 뒤 수시로 확인한다.
미국대사관에서 제공하는 것(http://www.stateair.net/web/post/1/1.html)과 중국 사이트
(http://www.cnpm25.cn/city/beijing.html)를 모두 참고하는 게 좋다. 미국 것은 미국 대사관 근처의 공기 질만 측정하는 반면, 중국 사이트는 베이징 내 10여개 지점의 공기 오염도를 측정해 종합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미국 사이트의 오염 수치가 중국 사이트보다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미국 대사관 부근이 상습 공기오염 지대인 탓이다. 두 사이트를 참고하면 공기오염 수준을 보다 객관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성능 좋은 공기청정기를 최대한 빨리 구입한다. 오염이 심한 날은 야외 활동이 불가능하므로 실내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날은 자녀의 등교도 자제하고 가정교육으로 대체하는 게 좋다. 다행히 왕징의 경우 모든 생필품은 전화 한 통으로 주문이 가능해 며칠간 실내에만 머무는 게 그리 어렵진 않다.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 공기청정기다. 베이징에선 중고 공기청정기 거래가 활발한 편이다. 베이징 주재 한국인들이 상당수 가입해 활동하는 양대 인터넷 커뮤니티 ‘북유모’(http://cafe.daum.net/studentinbejing) 또는 ‘북키맘’(http://cafe.naver.com/bjkidsandmami)을 검색하면 된다. 혹은 부동산에서도 각종 중고제품을 거래하니 집을 계약할 때 부동산 측에 문의할 수 있다. 공기청정기의 생명은 필터이므로, 되도록 필터 교체 시기가 최근인 제품을 구입한다. 필터가 오래됐다면 구입과 동시에 필터 교체 서비스를 알아본다. 이처럼 중고 제품을 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아예 한국에서 공수해오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요즘은 전통적인 공기청정기보다 가습효과를 가미한 ‘에어워셔’ 제품이 각광받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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