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운전은 곧 생활입니다. 뉴욕 같은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중교통 이용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제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채플힐은 UNC 캠퍼스와 타운 곳곳을 연결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다녀서 학교만 오갈 때는 운전이 필요 없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한국 운전면허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운전면허를 따야 합니다. 미리 거주지 가까운 곳의 DMV(Division of Motor Vehicles, 차량 등록과 운전면허 등을 담당하는 행정부서)에 시험 예약을 온라인으로 해놓으면 좋습니다. 3개월 전부터 예약이 가능합니다.

DMV의 업무처리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습니다. 느리고 불친절하고 때론 무례하기까지 합니다. 운전면허 시험은 물론 간단한 서류 업무를 보려고 해도 예약 없이 워크 인으로 가면 3~4시간씩 서서 기다리는 건 다반사입니다. 그마저도 당일 업무를 볼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다림에 익숙한 미국인들조차 힘겨워합니다.
운전면허 시험은 감독관에 따라 말 그대로 ‘복불복’입니다. 필기는 대체로 기출문제를 풀어보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습니다만(공부 안 하면 충분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로드 테스트가 관건입니다. 괴팍한 감독관을 만나면 말을 잘못 알아듣거나 작은 실수로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해 함께 연수 나왔던 동료 중에서도 감독관의 폭언 탓에 심리적 충격을 호소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불합격한 사례는 흔합니다. 반면 어떤 이는 그날따라 바빴던 감독관 덕에 주차장 한 바퀴 달랑 돌고 합격하기도 합니다.
로드 테스트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순간은 스톱(STOP) 사인 앞에서와 골목길 유턴(3포인트 턴), 주차 등으로 꼽힙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스톱 사인 앞에서는 꼭 속으로 천천히 ‘하나, 둘, 셋’을 세라고들 합니다. 명확히 멈춰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주차 등에서는 과도할 정도로 몸을 돌려 직접 뒤를 확인해야 합니다. 확실히 오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정교한 듯하면서도 너무 어설프고 또 그러면서도 거대한 나라를 움직이는 게 알다가도 모를 미국 시스템인데 운전면허 발급 역시 그렇습니다. 임시 면허증인 종이 한 장을 먼저 주고 정식 면허증은 우편으로 보내는데 그 기간은 같은 동네라도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한두 달로 천차만별입니다.
무사히 면허를 땄다면 운전 자체는 한국에 비해 크게 힘든 점은 없습니다.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이 꽤 있지만 쭉쭉 뻗은 고속도로는 대체로 편안한 드라이빙을 가능케 합니다. 미국은 일부 유료도로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고속도로는 무료입니다. 휴게소는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 중간에 있지 않고 중간중간 출구로 나가면 주유소와 식당 등이 있는 방식입니다.

시내 운전에서는 교차로 운전 방식이 서울과 많이 다릅니다. 좌회전은 화살표에 빨간색 불이 들어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가능합니다. 대다수 교차로가 비보호 좌회전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우회전은 ‘ONLY’로 표시돼 있지 않으면 빨간불에도 가능합니다. 이마저도 그냥 우회전하는 운전자도 많습니다. 위험은 본인이 감수하는 대신 도로 상황이 허락하면 자율적으로 운전하는 분위기입니다.
신호등이 없고 스톱 사인만 있는 교차로도 많습니다. 이 경우 스톱사인 앞에서 일단 멈추고 선입선출 원칙에 따라 먼저 와서 정지했던 차량부터 이동합니다. 이를 어기면 욕설을 들을 수도 있고 순식간에 사고와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회전교차로도 많은 편입니다. 이 역시 먼저 진입해서 돌고 있던 차량이 있으면 멈춰야 합니다. 같은 규정이 적용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슬금슬금 끼어드는 차량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 한국에서 좋은 운전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면피로 빨리 가는 데 우선순위를 뒀습니다.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친절한 미국 남부 특유의 문화 때문일까요. 지금까지 경험한 미국 운전자들은 한국에서의 저보다 대체로 더 배려하고 더 인내를 발휘했습니다.
미국에서 운전한 지 8개월째지만 아직도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면 어느새 차 앞머리가 빈 공간을 향해 불쑥불쑥 돌진합니다. 한 번 더 기다리지 않고 일단 디밀고 보는 못된 버릇이 튀어나옵니다. 미국 연수 생활이 끝날 때쯤이면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을까요. 운전 연수의 결실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