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미국 연수는 출발부터 삐그덕 거렸다. 준비가 부실한 탓이었다.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출국 이틀 전까지 회사 일에 매여 출국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1년간 이민해 살아야 하는 ‘대사’를 앞두고도 그리 준비에 소홀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어이가 없다. 준비 과정의 부실은 연수 생활의 부실로 이어졌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겠지만 그런 기회가 또 오겠는가. 이렇게 ‘나의 실수’를 알려 연수를 준비하는 동료 선 후배들이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그나마 위안이겠다.
실수 1- 짐싸기
출국부터 짐 때문에 공항에서 한바탕 쇼를 했다. 전체 짐의 무게와 개수가 제한됨을 잘 알면서도 결국 공항에서 가방을 열어 다시 짐을 싸고 배웅 나온 부모님에게 가방 서너 개를 넘겨주고서야 출국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에 맞게 짐을 싸지 못한 탓이었다.
내 경우 비행기 삯을 아끼려고 일단 대한항공으로 일본 나리타공항까지 간 뒤 거기서 아메리칸항공(AA)으로 갈아탔다. 화물칸에 실을 수 있는 짐이 1인당 가방 2개씩 허용되는 건 같았지만 가방 당 무게 제한은 대한항공이 32킬로그램, AA는 23킬로그램으로 달랐다. 우린 당연히 AA에 맞췄는데 뒤에 확인해보니 일단 출국할 때 대한항공 기준에 맞춰 짐을 싣고 나면 문제가 없었다.
그걸 모르고 가방 무게를 각각 23킬로그램에 맞추다보니 나머지 짐들은 기내에 들고 갈 수 있도록 이 가방 저 가방에 구겨 넣었지 뭔가. 그러다보니 손에 들어야 할 가방이 늘고 전체 무게도 늘고. 기내에 들고 갈 수 있는 가방은 개수 제한은 없었던 것(?) 같으나 한 사람당 짐의 무게가 10킬로그램으로 제한됐던 것 같다.
해서 출국장에서 손에 든 짐 때문에 제지됐고 결국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 화물칸 가방 하나에 몰아넣었다. 중량 초과 요금을 물 각오로… 그러나 중량 초과에 따른 별도 요금은 물지 않았고, 짐을 줄였음에도 양 손에 짐을 들고 탑승과 환승을 반복하다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반추하면 짐은 가능한 화물칸에 모두 보내고 기내에 들고 탈 것은 아주 작고 가볍게 꾸렸어야 했다. 그러려면 우선 굳이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짐들을 애써 가방에 꾸리는 어리석은 짓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옷이나 공산품은 미국이 훨씬 싸고 종류도 많으니 힘들게 비좁은 가방에 구겨 넣지 않아도 된다. 내 경우 두툼한 겨울옷까지 챙겨왔는데 이곳에서 값싼 옷들을 보며 후회를 한두번 한 게 아니다. 와중에 아내는 쓸데없이 샴프 같은 걸 왕창 사서 가져왔으니 고생을 사서 한 셈이다. 다만, 고추장과 된장 같은 것은 무게가 많이 나가기는 하지만 가져온 보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약간 비싸기는 해도 한국 식료품점에서 모두 구할 수 있는 만큼 꼭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실수 2-돈 준비와 은행계좌 개설
연수지에 도착한 뒤 가장 곤란한 것은 돈 문제였다. 이 역시 준비 부실 탓이었다. 출국 직전까지 회사 일에 매여 서둘러 짐을 싸고 몸만 비행기에 실은 꼴이 됐다. 정작 미국에 가서 써야할 돈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출국 전날 달랑 200만원 정도만 달러로 환전했다. 카드도 쓰고 다달이 한국의 계좌에서 송금해서 쓰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미국 도착 이틀 뒤 미조리 대학 스태프의 안내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서 계좌 두개를 개설했다. 하나는 체크 어카운트, 다른 하나는 세이빙 어카운트였다.
미국에선 보통 물건을 사거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거나 음식을 사먹을 때 데빗카드(직불카드)를, 집세처럼 큰 돈을 내거나 애들 학교에 책값 등을 보낼 때는 체크(수표)를 끊어주는데 모두 체크어카운트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세이빙어카운트는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이자소득을 챙길 수 있다.
스태프의 권유대로 달랑 2000불을 갈라 200불은 체크어카운트에, 1800불은 세이빙어카운트에 넣어뒀다. 그것부터가 실수였다. 그 돈에 이자소득이 얼마나 된다고. 며칠 안돼 체크어카운트의 잔고는 바닥나고 이후 데빗카드를 계속 쓰니 세이빙어카운트에서 체크어카운트로 돈이 이체되면서 건당 10불씩 오버드래프트피(overdraft fee)가 부과됐다.
인터넷뱅킹으로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은행에 가서 “그런 팔러시를 몰랐다”고 하니 네차례 모두 40불 떼갔던 피를 모두 환불해줬다. 그날로 세이빙어카운트는 없애고 체크어카운트로 일원화했다.
다시 문제는 석달여 뒤 플로리다 여행을 다녀온 뒤 발생했다. 플로리다 여행을 마치기 이틀전 그만 잔고가 바닥난 것이었다. 여행 중 대충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돌아가서 한국 계좌에서 송금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며칠 뒤 송금을 마치고 보니 계좌에서 다시 오버드래프트 피로 한차례에 33불씩 모두 다섯차례 165불이 빠져나갔다. 확인해보니 잔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모두 100불 정도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100불 쓰고 165불 피를 물은 셈이었다.
이게 무슨 억울한 경우인가. 다시 은행에 가서 따지니 잔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데빗카드를 사용하면 금액에 관계없이 건당 33불씩 피가 붙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미 전력(확인해보니 19불 떼 간 적이 있었다.)이 있어 이번에 33불 부과된 것이고 다음에 또 잔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돈을 쓰면 금액에 관계없이 건당 39불씩 피가 붙는다는 것이었다.
또 “잘 몰랐다”고 사정했지만 이번엔 한 건에 대해서만 환불해줬다. 이상은 오버드래프트피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이고 또 하나. 한국에서 송금하면 건당 10불씩 와이어 트랜스퍼 피를 떼간다. 내 잘못이지 은행 탓할 일은 아니나 이래저래 은행에 뜯기며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 모든 게 처음 연수를 떠나면서 돈을 두둑이 준비해 은행에 넣어두지 않은 결과다. 처음에 1000만원이든 2000만원이든 목돈을 여행자 수표로 바꿔 그걸 그대로 계좌에 넣어뒀으면 이런 손실과 맘고생은 없었을 터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