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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통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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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는 주말마다 장이 서는 유명한 벼룩시장이 있습니다. 베이징시 제3 순환도로의 동남쪽(東三環路)에 위치한 판쟈위앤(潘家園)이 바로 그곳입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른 새벽이면 여기저기서 모여든 상인들이 커다란 가방 속에서 마치 보물을 꺼내듯, 신문지로 꽁꽁 싼 크고 작은 물건들을 조심스레 펼쳐 좌판에 벌여놓습니다.



좌판에 진열된 물건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고 때로는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기도 합니다. 단순히 이전에 쓰던 물건을 싼 가격에 사고 파는 보통의 벼룩시장 쯤으로 생각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에 나와있는 많은 물건들은 박물관의 진열장에나 있음직한 불상이나 도자기 또는 청동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흙이 그대로 묻어 있어 어느 유적지에서 막 출토된 듯한 것도 있고,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된 자기나 기와의 파편들이 좌판을 가득 메우고 있기도 합니다. 또 손잡이나 뚜껑만 나와있는 물건도 있고, 반대로 손잡이나 뚜껑만 떨어져 나간 물건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곳을 골동품 시장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물건 어딘가에 버젓이 명대나 청대의 연호가 새겨져 있고, 파는 사람이 아무리 진지하게 그 증거를 대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실제로 이런 시장에서 종종 진귀한 골동품들을 싼값에 살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가짜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럼에도 이곳은 매주 장이 서는 날이면 새벽부터 오후 두세 시 무렵 장이 파할 때까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그 가운데는 물론 구경 삼아 기념품이 될 만한 물건을 사러 나온 외국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른 새벽 장이 서자마자 좌판을 살피고 다니는 더벅머리의 중국인 아저씨들은 결코 구경 삼아 나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많은 모조품 속에 숨겨져 있는 진짜 ‘보물’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일을 나온 사람들입니다.



필자가 아는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얼마 전에도 이곳에서 송대의 자기 진품을 불과 인민폐 200위엔(한화 3만원)에 산 사람이 있다고 전해줬습니다.



골동품에 별로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판쟈위앤은 한번쯤 찾아가 볼 만한 매력적인 곳입니다. 진짜든 가짜든 청대 이전의 것임을 표방하는 여러 물건 외에도, 이곳에는 아주 재미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옛날 시골의 이발소 그림을 연상시키는 야한 여자 그림이며, 문화대혁명 때나 나왔음직한 마오쩌뚱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탁상시계들, 50년대 인민해방군이 쓰던 나침반과 무지막지하게 생긴 보안경들, 반질반질 닳아서 광택이 나는 동제 구두 주걱들, 이밖에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중 하나는 사람들의 편지였는데, 도대체 그것을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엔 겉봉에 붙어 있는 우표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적잖은 사람들이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을 보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 모두 이곳에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이곳의 상품들은 모종의 문화적 기준에 의해 채택된 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유물 가운데 분수동분(噴水銅盆)이란 것이 있습니다. 청동으로 만든 대야로, 윗 부분에 양쪽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는데, 적당한 양의 물을 넣은 후 그 손잡이를 두손으로 문지르면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물방울이 튀어 오르게 됩니다.

이 신기한 현상은 손잡이를 문지르면서 생기는 진동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판쟈위앤에서 한 상인이 분수동분을 시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신기해하며 저마다 한 번씩 해보겠다고 나섰으나, 보는 것처럼 쉽게 물방울이 튀어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판쟈위앤에는 이같은 옛날 물건들이 있고, 이를 즐길 만한 여유와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곳은 물건 자체보다도 그 물건이 상품화하고 있는 중국의 전통 문화를 파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물건을 살 때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판쟈위앤의 상인들은 맨 처음 물건값을 부를 때, 물건의 실제 가치와는 별도로 철저하게 그 몇 배에 해당하는 ‘문화적’ 프리미엄을 붙입니다. 쉽게 말해 바가지를 씌운다는 것인데 이는 상대가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일반 제품이야 짐작할 수 있는 가격 선이 있고 비교도 가능하지만, 문화라는 상품에 붙는 가격이야 어디 적정 선이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모호한 채 그야말로 ‘중국식’의 가격 흥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한 번이라도 중국 상인과 가격 흥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독특한 중국식 흥정 방법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손님이 가격을 물으면 오히려 손님에게 가격을 되묻습니다. 얼마면 사겠느냐고 묻는 것이지요. 순간 물건의 적정 가격을 모르면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물건을 살 때는 미리 가격 조사를 하고 가든지, 아니면 가서 여러 군데 흥정을 해보고 적정한 가격 선을 알아본 후 사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나 판쟈위앤의 물건들은 미리 가격 조사를 하기 어려우므로 가서 부닥쳐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름의 노하우를 소개하자면, 가격흥정은 대체로 부른 가격의 10분의 1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이 쉽지, 500위엔 부른 것을 50위엔에 사자고 하기란 한국인의 정서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10분의 1의 가격에 살 수 있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파는 사람이 아주 절박하지 않은 한, 예를 들면 팔 사람은 많은데 손님이 나 혼자였다든지, 주인이 어떻게든 몇 푼이라도 만져봐야겠다는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는 한, 10분의 1선에서 거래가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꼭 사고 싶은 물건이라면 마음 속에 상한선을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상한선을 제시했는데도, 주인이 안된다고 하면, 이 때는 미련 없이 돌아서는 과단성이 필요합니다. 돌아섰을 때 주인이 쫓아오면 ‘적정한’ 가격을 제시한 것이지만, 쫓아오지 않으면 제시한 상한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다음 기회를 보는 수밖에 없겠지요.



판쟈위앤에는 좌판을 벌여놓고 물건을 파는 보따리장수 외에, 커다란 간이식 건물 안에 고정적인 점포를 가지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점포 안의 물건들은 대부분 옛날 것을 모방해서 대량생산되고 있는 현대의 문화 상품들로, 좌판에 나와 있는 유물들이나 중고품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이러한 물건들은 티앤탄(天壇) 근처에 있는 홍챠오(紅橋) 시장이나 허핑먼(和平門) 부근의 리우리창(琉璃廠)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로, 애초에 붙일 수 있는 ‘문화 프리미엄’ 자체가 크지 않아 이런 식의 가격 흥정이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처음 부르는 가격이 어느 정도 물건의 실제 가치를 반영하고 있어, 대체로 부르는 것의 반값 정도에 물건을 사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보따리 장수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같은 벼룩시장은 북경의 판쟈위앤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몇 년전 산동성의 성도인 지난(濟南)에서도 판쟈위앤과 유사한 벼룩시장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각지의 유명 관광지를 가보면, 어김없이 이런 보따리장수들이 여기저기서 좌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들이 내놓는 물건이 품목이나 종류, 규모나 양에 있어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들의 물건은 어디서 이렇게 샘솟듯 솟아나는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중국은 이른바 문화대국인 만큼 전통 문화를 상품화해서 파는 시장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판쟈위앤이 검증되지 않은 각종 유물이나 중고품들을 파는 보따리상과, 현대적인 문화상품들을 파는 점포상으로 이뤄졌다면, 본래 골동품 거리로 유명한 리우리창은 비교적 고급스런 분위기와 격조를 갖춘 점포 안에 어느 정도 검증된 골동품들과 현대적인 문화상품들이 함께 진열돼 있습니다.





한편 왕푸징(王府井)에 있는 신뚱안(新東安) 백화점 지하 1층에는 라오베이징(老北京)이라는 일종의 테마 공간이 있는데, 약 1세기 전인 청조 말엽 북경의 거리를 재현해놓은 곳으로 유명한 북경의 옛 상점들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비단 집과, 헝겊신(뿌시에 布鞋) 가게, 모자, 흙 인형(니런 泥人), 떠우미엔탕(豆面糖)이나 쑤탕 등을 파는 사탕 가게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근 100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가게들로 가격은 좀 비싼 편이지만, 상품의 질은 어느 곳보다 믿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