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 東方明珠 견문기 >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9일간 호남성 창사(長沙)와 강소성 쑤저우(蘇州), 상하이(上海)를 거친 화동(華東)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동방명주(東方明珠 뚱팡밍주) 타워에 올랐습니다.
동방명주는 `동방의 빛나는 진주’ 라는 뜻으로 본래 홍콩을 지칭하는 말인데, 아시아의 국제금융 센터로서 홍콩이 누리는 명성과 지위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은 중국정부와 상하이의 염원이 반영된 이름입니다. 그래서인지 쟝저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썼다는 東方明珠 입구의 휘호에서도 이같은 중국의 야심이 느껴집니다.
중국의 주요 도시에는 대개 방송용 전파 송수신 탑과 전망대를 겸한 높은 타워들이 있어서 여행객의 발길을 끕니다.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도시 주변의 지형과 생김새를 굽어보고 과거 이곳이 겪은 역사를 되새겨볼 수도 있습니다.
상하이에 머문 닷새 동안 여러 차례 황포강(黃浦江)을 건너 포동(浦東)과 포서(浦西)를 오가면서 수많은 빌딩 숲 속에서 군계일학처럼 우뚝 솟은 동방명주의 맵시 있는 자태를 눈여겨 보곤 했지만, 막상 입장권을 사들고 1층 입구에서 올려다본 동방명주는 화사한 차림의 요조숙녀 이미지를 벗고 어느새 당당한 위풍을 갖춘 선 굵은 무사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동방명주 타워는 468m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는 세 번째입니다.
관람객은 지상 350m에 자리잡은 타이콩창(太空艙: 우주의 선실 또는 객실이라는 뜻)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주’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상하이는 아름다우면서 매우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륙을 굽이쳐 흐르는 양자강이 바다와 만나는 끝자락에 위치한 황포강이 상하이를 비스듬히 동서로 나누고 있어, 전망대 안의 어느 위치에서나 강을 끼고 있는 상하이의 수려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황포강에서 갈라져 쑤저우 쪽으로 흐르는 운하(蘇州河)도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양자강의 거친 물결도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도나우강 못지 않게 아름답고 푸르기만 합니다.
< 19세기와 21세기의 공존 -- 浦東 >
상하이가 주는 특이한 느낌의 정체는 바로 포서와 포동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19세기와 21세기의 공존입니다. 혹자는 20세기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제 태동한 포동은 장래에 전성기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에 21세기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전망대에서 보면 상하이에 외국인 조계가 설치된 1860대 이래 형성된 와이탄(外灘)이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뒤편으로는 인민로, 연안로, 남경로, 북경로 등 포서의 주요 도로들이 19세기 전통 도시의 발전상을 보여주듯이 무질서하게 뻗어있습니다.
시선을 서서히 옆으로 돌리면 중국의 21세기를 짊어지고 나갈 포동신구(浦東新區)가 펼쳐집니다. 포서의 연안 고가도로에서 이어지는 세기대도(世紀大道)가 동쪽으로 시원스레 연결돼 있고 좌우 양편으로는 20-40층 짜리 현대식 마천루들이 빼곡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350m 전망대에서 시선을 내려깔지 않고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웃은 진마오(金茂) 빌딩입니다. 진마오는 하얏트 그룹이 운영하는 호텔 겸 오피스 건물로 88층, 421m 높이에, 미래형 인텔리전트 빌딩의 수려한 외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동방명주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관람객이 많아 전망대에 오르려면 긴 줄을 서야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붐비지도 않고 입장료도 비교적 싼 진마오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 서비스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
그러나 황포강을 낀 상하이를 굽어보는 전망대로는 동방명주 타워에 비견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방명주는 타워를 세울 때부터 최고의 전망대를 지향해 설계됐고 중국의 여느 관광명소와는 다른 서비스 지상주의를 내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 서비스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지상에서 263m까지 초당 7m로 고속상승하는 약 40초 동안 깔끔한 용모의 엘리베이터 걸이 중문과 영문을 차례로 사용해 동방명주를 명료하고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유창한 안내 멘트가 끝난 직후 승강기 문이 쓰윽 열리면 관람객들은 탁 트인 전망대에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263m에서 350m까지 초당 3m 속도로 올라가는 30초 동안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관람객이 많아 승강기는 항상 붐비는 편이지만 서비스의 질이 높아서 느낌이 좋습니다.
천혜의 입지 조건과 서비스 제고에 힘입어 동방명주 타워는 지난 94년 11월 문을 연 이래 관람객이 급증했습니다. 지난해 한해 동안만 약 250만 명이 다녀가 입장수입 만도 2천만 달러, 250억 원에 이릅니다.
< 전망대의 높이마다 즐거움이 다르다 >
세계 유수의 다른 타워들과 구별되는 동방명주의 가장 큰 특징은 아마 3단계식 구성일 것입니다.
이른바 제1구(球)(지상 90m 높이), 제2구(259, 263, 267m), 제3구(350m)로 불리는 세 단계의 특색 있는 전망시설을 갖추고 있어 관람객은 각각 다른 높이에서 상하이의 풍취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제3구는 앞서 소개한 타이콩창(太空艙) 전망대로 고공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일품입니다.
제2구는 3개 층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층으로 된 관광 전망대에는 남산의 서울타워와 마찬가지로 곳곳에 기념품을 파는 진열대와 유료 망원경(요금은 1위엔=150원으로 저렴한 편)등 관람용 편의시설이 있고 깔끔한 복장과 매너를 갖춘 용모단정한 남녀 직원들이 안내를 돕고 있습니다.
전망대의 윗층은 회전식 식당으로 인테리어와 서비스, 가격 모두 고급 수준입니다. 하루에 두끼 서양식과 중국식 뷔페를 함께 제공하는데 점심은 11시부터 2시까지, 저녁은 5시부터 9시까지로 영업시간이 제한돼 있습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커피와 맥주, 음료수를 팝니다.
이번 상하이 여행의 가장 큰 아쉬움은 이 회전식당에서 느긋하게 앉아 한잔의 커피를 즐기는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3시쯤 입장해 타워 안을 이곳저곳 둘러보다 그만 4시를 넘겨버린 것이지요. 식사시간이든 아니든 언제나 식당이 열려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토록 엄격하게 시간제 운영을 하고 있을 줄이야! 이미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회전식당에서의 여유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했습니다.
< 원통형 유리 승강기를 타고 고속하강 >
제1구 전망대는 높이가 90m에 불과해 주변의 다른 빌딩들과 키가 엇비슷하지만 노천(露天) 전망대라는 특색이 있습니다. 추락 방지용인 듯한 큼직한 철제물이 전망대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어 다소 시야를 막기는 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유리창의 투과 없이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황포강 건너로 포서 쪽을 보면 근거리에서 삼성전자, NEC, 코카콜라, 캐논, 니콘, 맥스웰 등 세계 유명 기업의 대형 간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1구 전망대의 또다른 매력은 지상으로 쾌속하강하는 원통형 유리 엘리베이터의 스릴입니다. 고소의 공포를 즐기는 편인 필자는 짧은 시간 동안 각양각색의 마천루와 황포강, 화물선과 유람선, 타워의 육중한 하부 건축물들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교차되는 것을 똑똑히 보며 타워 1층의 중간지점으로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지금은 흔적기관으로만 남아있다는 꼬리뼈의 실재를 새삼 느끼면서…
단점이 있다면 중간중간 승강기의 시멘트 벽면이 마치 `플래시 컷’처럼 눈앞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 4종류의 요금체계 -- 중국인은 기막힌 장사꾼 >
동방명주가 주는 또 하나의 놀라움은 중국인의 철저한 장사꾼 기질인데, 이곳의 요금체계를 살펴보면 기막힌 상술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동방명주 입장권의 가격은 크게 4종류입니다.
제3구(球) 전망대까지 가려면 가장 비싼 100위엔(한화 만5천원) 짜리 표를 사야 합니다.
이 티켓으로는 당연히 제1, 2, 3구의 모든 전망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동순서는 마음 대로지만 통상 지상에서 곧바로 2구까지 가고 최정상인 3구에 오른 뒤 다시 2구(2구와 3구 사이를 운행하는 승강기는 한대)에서 내려 1구로 이동해 유리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갑니다.
259-267m 높이의 제2구까지만 갈 수 있는 입장권은 그 절반인 50위엔입니다. 이미 350m 전망대를 한번 가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입장권을 살 가능성이 높지만 대부분 초행길인 관람객들은 대부분 “동방명주 꼭대기에 언제 다시 오랴”는 생각으로 가장 비싼 100위엔 짜리 티켓을 끊게 됩니다. 필자도 물론 100 위엔을 주고 표를 샀습니다.
< 15위엔(元)이 부르는 기분의 차이 >
제1구 전망대까지 가는 요금은 30위엔. 90m 노천 전망대에서 경치를 구경하다 유리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나 노천 전망대는 주변의 40층 짜리 빌딩과 높이가 엇비슷해서 내려다보는 즐거움이 매우 약합니다. 동방명주 타워까지 가면서 이렇게 허망한 티켓을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중국인의 상술이 잘 발휘된 얄궂은 표가 있습니다.
바로 제1, 2구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65위엔 짜리 티켓입니다.
50위엔 짜리 표를 산 관람객은 제2구만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제1구로 내려가는 승강기를 타지 못하고 곧바로 지상까지 가는 폐쇄식 승강기를 타야만 합니다. 65위엔 표를 산 관람객은 100위엔 표를 산 관람객과 함께 노천 전망대를 거쳐 유리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15위엔(2,250원)의 요금차는 의외로 상당한 기분의 차이를 부를 수 있습니다. 고객이 한푼이라고 돈을 더 쓰게 하고 그만한 돈의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장사꾼 정신이 철저히 깃든 중국적 요금체계의 요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타워 출구는 선착장으로 이어진다 >
중국인의 상술이 돋보이는 또 다른 에피소드. 타워 입장권을 사면 황포강 유람선 할인권을 함께 건네줍니다. 10위엔을 깎아준다고 적혀있는데 유람선 요금을 알아보니 30위엔이었습니다. 따라서 20위엔만 내면 1시간에 걸쳐 황포강 유람선을 탈 수 있습니다.
타워를 구경하는 1시간 반 동안 이 할인권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구경을 마친 뒤 입구와는 다른 방향에 있는 출구를 통해 나가려는데 동선이 바로 황포강 유람선 선착장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선착장 안내 표지판도 선명해 유람선을 한번 타보고 싶은 충동이 절로 생겨났습니다. 가는 길도 편하고 할인권도 있는데 누가 굳이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겠습니까! 많은 관람객들이 초봄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회전식당의 표를 파는 직원과 얘기를 나누다 요긴한 정보를 하나 얻었습니다. 회전식당의 뷔페 티켓을 사면 제3구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 혜택을 주니 다음에 올 때는 50위엔 표를 사서 2구까지 온 뒤 여기서 뷔페 티켓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점심은 100 위엔, 저녁은 130 위엔이니 표 값에서 절약된 50 위엔을 감안하면 저렴하고 훌륭한 식사가 보장된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상하이 동방명주 타워에 들르시게 된다면 이 매표원 아주머니의 충고에 따라 회전식당에서의 한끼 식사와 덤으로 얹어주는 우주 전망대 관람을 향유해 보시길 권합니다.
해외연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