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냉탕” 이야기에 이어지는 “온탕” 편입니다.
1. 食者의 天國 — 하늘에서는 비행기, 땅에서는 걸상 빼고 다 먹어치운다는 중국인들의 유별난 미식 덕택에 북경에서는 중국 각 지방의 다양한 요리 뿐만 아니라 각국의 맛있는 음식을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북경 시내 요소요소에 특색 있는 요리를 맛있고 값사게 하는 음식점들이 자리잡고 있으니 좀 까다로운 요리주문을 요령 있게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정보를 잘 수집해두면 됩니다. 단 중국식 입맛 갖추기와 위생관념의 포기는 필수 전제입니다. 좀 딱한 경우입니다만 중식이 입맛에 안맞는 사람은 우리 음식만 고집해도 됩니다. 최근 몇년 사이 한국인들의 북경 유입이 급증하면서 한국 음식점도 매우 많아져 국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아침으로 즐겨먹는 콩국과 기름과자 —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무엇으로 식사를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집에서 간단히 밥을 먹기도 하고 우유와 시리얼을 먹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이 즐기는 콩국과 기름과자를 가장 자주 먹습니다. 떠우쟝(豆奬)은 콩을 갈아 만든 멀건 국물로 여름에 먹는 콩국수에 넣는 콩국과 비슷하고 여우탸오(油條)는 길게 늘인 밀가루를 기름에 튀긴 과자입니다. 아침 시간 북적거리는 중국인들 틈에 섞여 떠우쟝과 여우탸오를 우걱우걱 먹다보면 중국인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기분좋은 착각이 들어 중국어 수업으로 시작되는 하루가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중국인들은 막 잠에서 깬 부시시한 모습으로 집 부근 식당에 들러 떠우쟝, 여우탸오를 비롯한 몇가지 간단한 음식을 사먹거나 집으로 가져가 아침을 해결합니다. 아침 식사 비용은 1-3 위앤 (인민폐:원화 공식환율은 약 1:140) 정도로 대개 우리 돈 500원 미만으로 아침을 먹는 셈입니다. 제가 콩국과 기름과자로 아침을 먹는다고 하면 깜짝 놀라며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위생을 별로 따지지 않는 중국인들이 석회질이 들어있는 수돗물에다 아주 여러번 튀겨낸 기름을 재료로 쓰지 않을까 하는 우려인데 저도 다소 걱정이 돼서 좀 위생적인 식당을 골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보통 식당보다 가격이 2-4배 비싼 곳인데 아침을 먹는데 4-8 위앤이 듭니다. 많으면 1,500원 정도를 쓰는 셈인데 아침마다 계속 먹어도 별로 물리지 않아서 계속 애용하고 있습니다.
3. 다양한 교통수단 — 북경의 거리는 긴 대열을 이루는 자전거와 버스, 전차, 택시, 오토바이 등이 뒤엉켜 항상 복잡합니다. 차선이 명확하지 않고 중앙선이 없는 길도 많은데 요리조리 충돌을 피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저러다 사고나면 어떨까 아슬아슬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더러 사고현장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저는 북경에 도착해 일단 자전거 천국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자전거부터 한 대 사기로 했습니다. 길을 잘 모르던 초기에는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으나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300 위앤을 주고 실용적이고 튼튼한 새 자전거를 한 대 샀습니다. 중고로 살까 했는데 택시 기본요금의 30배 가격이니 보름 정도만 자전거로 등하교하면 된다는 계산으로 새 것을 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침 출근 시간 직장과 학교로 달려가는 중국 인민들 틈에 섞여 페달을 밟다보면 중국 대륙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앞으로 마구 달려오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지금은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편이지만 자전거로는 이미 투자한 본전은 뽑은 셈입니다.
교통수단은 이밖에도 다양합니다. 기본은 역시 택시와 버스. 택시는 고급, 중급, 보통 3종류가 있는데 기본요금은 10위앤이고 1 킬로미터당 1.2 위앤, 1.6 위앤, 2 위앤 하는 식으로 요금이 차이가 나고 차종도 다릅니다. 일반 버스는 기본요금이 1 위앤이고 구간 별로 조금씩 더 내는데 최근에는 대규모 정리해고로 인한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냉난방이 잘되고 시설이 좋은 2 위앤 짜리 고급형 버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일반버스는 요금이 가장 저렴하지만 항상 붐비는 편이어서 솜씨 좋은 소매치기를 만날 경우 가장 비싼 교통수단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저는 등교 길에 자전거와 버스를 주로 타고 다니는데 시간이 빠듯하면 택시를 탑니다. 10 위앤의 택시요금이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들거나 아침에 기분전환을 하고 싶으면 3-5 위앤 짜리(흥정하기에 따라 값이 조금 다릅니다) 삼륜 오토바이 차나 평판차(平板車)라고 하는 자전거 인력거를 탑니다. 삼륜차는 오토바이 뒤에 최대 4명쯤 탈수 있는 좌석을 따로 달아 만든 것으로 짧은 거리의 목적지를 정확히 찾아가고자 할 때 제격입니다. 다만 코를 찌르는 매연이 바람을 타고 좌석으로 날아드는게 단점입니다.
평판차는 거리에 따라 2-4 위앤 정도의 요금으로 자전거 뒷자리에 말 그대로 평평한 나무판자를 깔아 몇 명이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인력으로 움직이니 매연이 없고 여름에 타면 시원한 바람을 느낄수 있습니다. 단점은 커브길을 돌 때 한쪽으로 기울며 자리에서 미끄러질 수 있다는 점이지요.
이밖에도 시내 중심가에서 좌석이 1-2개 있는 인력거를 타고 시내를 관광하거나 가까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왕년에 북경을 누비던 명물인 빵차(일명 面包車)는 몇년 사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 좀 아쉽습니다.
4. 대륙을 누비는 해적판 — 중국에서는 CD와 비디오 CD, DVD를 매우 싼값에 살수 있어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애호가들의 관심을 끕니다. 백화점이나 전문매장에는 정품들이 출시돼 있지만 따오반(盜版)이라고 불리는 해적판이 지천으로 깔려있어 음악과 영화, 영상자료들을 싼값에 구할수 있습니다. 따오반은 화질과 음질에서 별로 손색이 없고 가격은 대략 정품의 1/2에서 1/4 수준으로 음악용 CD나 비디오 CD는 1장당 10-15 위앤(한화 1,400-2,000원선) 정도이고 시리즈 물인 경우 더 저렴합니다. 해적판은 대개 베스트셀러 위주로 만들기 때문에 유명작이 많고 운이 좋으면 국내에서 웬만한 값에 살수 없는 명반을 고를 수도 있습니다. VCR 보급률이 낮은 중국은 비디오 시장이 취약한 반면 비디오 CD 시장이 발달돼 있어 다양한 제품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화의 경우 세계시장 개봉과 거의 동시에 따오반이 지하시장에 나오는 민첩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미국이 오래 전부터 경악해온 중국의 해적판 시장이 중국의 WTO 가입을 계기로 사양길을 걷게될지 큰 관심거리입니다.
5. 아침운동으로 하는 태극권과 사교춤 —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아파트 광장을 내려다보면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10-20명씩 무리를 지어 태극권과 검술체조 등에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옆으로는 두명씩 짝을 지어 쟈오이우(交宜舞)라고 하는 사교춤을 연습하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모두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입니다. 저렴한 교습비로 기초부터 완성 단계까지 가르쳐준다는 내용의 수강생 모집 전단이 아파트 출입구에 자주 나붙습니다. 아파트 단지 뿐만 아니고 다른 주거지역에서도 아침운동이 보편화돼있어 등교 길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 공터 한켠에서 사교춤을 배우고 연습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꽤 특이한 풍경입니다. 저도 날씨가 풀리면 언젠가 시간을 내서 태극권이나 사교춤을 배워볼 생각입니다.
6. 각지의 名酒가 한자리에 — 중국은 술의 역사가 깊고 종류도 많기로 유명해 애주가들의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저는 술이 약한 편이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술 저 술 한잔씩 맛보는 재미에 수시로 취기를 느낍니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마시는 술은 바이지우(白酒:일명 빼갈)로 곡식을 재료로 만든 40도 안팎의 증류주입니다. 마오타이(茅胎), 우량예(五梁液), 펀지우(汾酒), 콩푸쟈(孔府家), 시펑(西鳳), 지우궤이(酒鬼) 등등 많은 명주들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있는데 최근에는 서민 애주가를 겨냥한 20-30 위앤대 저가 대중주인 징지우(京酒)가 홀연 나타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한차례 술자리를 더할 때마다 역시 기름진 중국음식에는 위장이 찌르르할 정도로 도수가 높고 뒤끝이 개운한 白酒가 가장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국술 가운데 또 하나의 명물은 포도주입니다. 제조 기술이 본고장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광활한 서부 신쟝(新疆)성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포도로 만든 와인은 중국생활의 뜻밖의 수확입니다. 중국산 와인은 브랜드도 다양하고 대부분 유럽의 제조사와 제휴를 맺고 제조기술 향상에 주력하고 있어서 국내에서 마셔본 수입 와인과 비교해 맛과 향이 별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25-50 위앤이면 보통의 레드와인을 살수 있어 종류 별로 몇 병씩 집에 두고 한가한 저녁 시간에 집사람과 가볍게 마시는 흥취를 즐기고 있습니다.
7. 가사와 음식 걱정으로부터의 해방 — 언론인 연수지역 가운데 중국 만이 가지는 장점은 아이(阿姨) 또는 바오무(保姆)라고 불리는 가정부를 둘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상사 주재원, 대사관 직원, 사업가들은 물론 일부 유학생도 가정부를 두고 매끼 음식 걱정과 가사로부터 해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월급은 일주일에 하루 쉬고 아침부터 저녁식사 때까지 일할 경우 1,000 위앤 안팎, 오전이나 오후에 반나절만 일할 경우는 500-600 위앤 가량입니다. 한국인들은 대개 말이 통하는 조선족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중국인 아주머니들도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습니다. 阿姨 아주머니들이 일체의 가사노동을 맡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얻느냐에 따라 집안의 분위기가 크게 좌우된다고 합니다. 아주머니가 요리를 잘하면 식사시간이 두배로 즐겁고 빨래와 살림정리를 잘하면 집안이 말끔하고 혹 목소리가 크면 집안이 시끄럽습니다. 우리 집에 오는 길림성 출신의 조선족 아주머니는 성격이 소탈해서 가족들과 잘 어울리고 아이와도 잘 놀아줍니다. 처음에는 가족 아닌 다른 사람이 가사를 돌본다는게 매우 어색했지만 곧 친숙해져서 지금은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항상 학업과 가사라는 두 짐을 안고있는 집사람에게 잠시나마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줬다는 사실에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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