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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통신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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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음력 설(春節) 연휴를 맞아 오랫동안 계획해온 가족여행에 나섰습니다.

중국인들이 1-2주 이상을 쉬면서 노는 중국 최대의 명절을 맞아 북경에서 책도 제대로 못보고 따분하게 보내는 것보다 이들 틈에 섞여 명절 분위기도 내고 중국문화도 체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고민 끝에 정한 목적지는 華南 지방의 절경으로 알려진 桂林(꿰이린 또는 꾸이린).

눈과 빙등(氷燈) 축제로 유명한 하얼빈도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지만 5-6일간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 지내는 것이 달갑지 않아서 남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광시(廣西)좡주(壯族) 자치구에 위치한 계림은 북경에서 비행기로는 두시간 반 쯤, 기차로는 꼬박 하루 이상이 걸립니다. 집사람과 7살 짜리 아들 등 우리 세 가족은 기차 침대 칸을 타고 허베이(河北), 허난(河南), 후베이(湖北), 후난(湖南)등 4개 성을 통과해 계림이 있는 광시(廣西)로 들어갔습니다.

기차에서만 가는 길은 24시간, 오는 길은 30시간이 걸린 긴 여정이었습니다.

(참고: 중국의 기차여행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음 편에 따로 적습니다.)



중국에 와서 처음 해보는 여행사 패키지 투어는 무엇보다 차편과 숙박, 식사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습니다. 중국에서도 음력 설 기간은 관광 성수기이기 때문에 여행사의 옵션 관광 요구를 비롯한 상당 폭의 추가 지출과 바가지 요금도 예상했지만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편이었습니다.

함께 여행에 참여했던 중국인들의 배려도 큰 도움이 돼서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볼거리, 얘깃거리 많은 알찬 여행이 됐습니다.



가장 큰 애로가 있었다면 돌아오는 열차 편의 표가 모자라 아이의 침대 칸을 구할 수 없었던 점입니다. 돌아오는 편은 가는 편에 비해 속도도 느려 6시간이 더 걸리고, 자정에 타서 이틀 밤을 기차에서 보낸 뒤 새벽에 북경에 도착하는 고약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요청 대로 표를 구하지 못한 여행사의 무능은 일순간 우리 가족의 장탄식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단에 낀 사람들을 비롯해 다른 중국인들도 대부분 어른 표 값과 거의 차이가 없는 어린이 표를 아예 끊지 않고 여행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도 중국인의 `고난에 찬’ 관행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불가피하게 30시간을 아이와 좁은 침대 칸에서 부대낀 대가로 수중에 5백 위엔(元)이 남게 됐습니다. 북경에서는 한두 차례 가족외식을 할 수 있는 적잖은 액수입니다.



사실 아이의 침대 칸 없이도 돌아오는 길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가는 길에는 옆 자리의 중국인들과 다소 서먹서먹했었지만 이번에는 여행기간 동안 이미 친숙해진 다른 중국인 가족들과 이웃처럼 편하게 지내면서, 서로 어울려 식사도 같이 하고 게임도 함께 하며 지루하지 않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계림시는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관광 명소답게 기차에서 내리자 곧 주변의 수려한 풍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구 60만의 아담한(?) 도시 안팎에 카르스트 지형으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작은 산들이 모양 좋게 배치돼 있고 계림을 동서로 나누는 아름다운 리강(삼수변에離+江)이 도시 중간을 관통해 흐르고 있습니다.

계림시에서 리강을 타고 남쪽으로 뱃길로 3-4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는 양수오(陽朔)는 호젓하고 아름다운 강마을입니다.



계림시가 수없이 밀려드는 관광객을 다소 장삿속으로 대하는 반면 양수오는 시골 인심이 많이 남아있고 물가도 매우 싸서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슬슬 걸어다녀도 몇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양수오는 배가 드나드는 작은 선착장 뒤편으로 각종 관광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음식점, 재래시장, 노점들이 형성돼 있습니다.

특히 시지에(西街)라는 작은 거리는 기념품 가게와 함께 서양식 카페와 식당, 주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중국과 유럽이 혼합돼 있는 느낌을 주는 곳으로 밤 늦게까지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이곳의 카페와 식당은 서비스와 인테리어도 좋은 편이고 인터넷 카페도 몇곳 있어 많은 손님을 끕니다.

혹 양수오에 갈 기회가 있다면 `언더 더 문(Under the Moon)’이라는 곳에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모로 느낌이 좋은 카페였습니다.



계림역에 내린 뒤 가이드 깃발 아래 처음으로 함께 모인 우리 일행은 양수오에 와서야 서로 수인사를 하고 저녁 시간에는 반주를 곁들이며 서먹함을 덜어냈습니다.

여행단의 수는 대략 20명 정도였는데, 이중 한 테이블에서 계속 식사를 하게된 사람들과 친해지게 됐습니다. 40세 쯤의 중국인 의사 李先生(先生=시엔셩은 중국어로 Mr.입니다.) 부부와 초등학교 5학년 딸 리란(李然), 실내 장식업을 하는 30대의 신혼인 段先生 부부, 개인 사업을 하는 30대 기혼여성인 周小姐(小姐=샤오지에는 본래 미혼여성에 대한 호칭이지만 젊은 축에 드는 기혼녀도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식으로는 女士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등 모두 9명이 자연스럽게 한조가 돼서 여행기간 동안 함께 움직이게 됐습니다.



이들은 모두 보통의 중국인 이상으로 교양있고 예의바른데다 공부하기 위해 중국에 온 한국인 기자 가족에 대해 호감과 호기심을 갖고 잘 대해줬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이들과 거의 매일 가진 저녁시간의 술자리는 항상 풍부하고 넉넉한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기억이 남는 술은 53도 짜리 꿰이린 싼화지우(桂林三花酒)라는 이 지역의 대중적인 빼갈(중국어로는 白酒라고 합니다.)로 주로 모두 4병을 마셨는데, 李先生을 제외하곤 술실력이 그만그만하고 여성들은 한사람 외에는 모두 술을 하지 않는 일행의 주량을 감안한다면 분위기에 편승한 과음이 계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술로 다져진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계림의 명승지와 민속,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손님을 대하는 중국인의 태도는 참으로 극진합니다. 자리나 음식을 먼저 권하고 마음에 들어하는지 충분히 먹고 마셨는지 살피는등 상대방을 고려합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잘 대해주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을 손님으로서 응대한다는 마음을 먹을 경우 손님에게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은 여행을 함께 한 중국인들으로부터 훌륭한 손님 대접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살다 보니 어떤 경우 자신이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소비자, 고객으로서 비용을 지출하는것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도 걸맞지 않는 소홀한 대접을 받기 일쑤입니다.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중국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나머지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모두 기대에 부응하는 적절한 대접을 해줄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쇼핑센터에 가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긴 줄에 서서 더러 새치기를 당하고, 기차를 탈 때는 비좁고 지저분한 대합실에서 장시간 기다려야 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꼬박꼬박 입장료를 내야 하는 불유쾌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는 보편적으로 다수에게 잘해주는 문명적인 태도보다 자신과 관계가 깊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잘해주는 특수한 문화가 생긴 것은 자연스런 결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필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예의바른 중국인이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똑같은 태도로 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필자 자신을 돌아봐도 생활공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교양있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에 대한 이같은 태도는 사실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적어도 이같은 인간의 이중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계림을 여행하는 동안 소수의 우리 여행단 일행과 절대 다수의 다른 중국인들과의 대비가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