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여행은 뭐니뭐니해도 기차여행이 백미입니다.
거대한 대륙 곳곳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중국의 기차 여행에서 10시간 정도의 여정은 기본에 속하며 2-3일 이상을 꼬박 기차에서 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차 안에서 중국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소 비문명적인 모습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장시간의 여행을 통해 옆 자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으며, 광활한 대륙의 면모를 한눈에 보는 풍요로운 눈요기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최근 北京에서 桂林으로 가는 여행에서 하루밤 사이 완전히 달라진 바깥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눈덮인 황량한 겨울 들판이 하루 밤 사이 푸른 빛을 띤 초목과 실개천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남방의 풍경으로 바뀌어져 있는 모습은 지리에 대한 상식을 넘어서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중국의 기차는 등급, 운행 속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가장 빠른 기차는 터콰이(特快)인데 열차 번호 앞에 T라는 이니셜이 붙습니다. 베이징에서 출발하는 열차의 예를 들면, T1은 창사(長沙)로, T55는 시안(西安)으로, 그리고 T537은 티앤진(天津)으로 가는 터콰이 열차입니다. 그 다음은 콰이쑤(快速)로 K 이니셜이 붙어 있습니다. K9는 베이징에서 충칭(重慶)으로, K27은 딴뚱(丹東)으로, K721은 스쟈좡(石家莊)으로 가는 콰이쑤 열차입니다. 마지막으로 푸콰이(普快)는 영문 이니셜 없이 숫자로만 표시돼 있으며 보통 만처(慢車)라고 부르는데 `느린 기차’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1487은 베이징에서 쩡저우(鄭州)로, 4437은 따퉁(大同)으로 가는 푸콰이 열차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T는 새마을호, K는 무궁화호나 통일호, 숫자로만 표시된 기차는 비둘기호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T나 K 등의 영문 이니셜 없이 숫자로만 열차를 구분했고 종류도 더욱 세분화돼 있었는데, 지금은 위의 세 종류로 통합됐습니다. 가끔 Y나 L이란 이니셜이 붙어있는 열차를 볼 수 있는데, Y는 여행이란 뜻의 뤼여우(旅游)이며 L은 임시라는 뜻의 린스(臨時)입니다. 즉 Y는 관광 전용 열차이며, L은 임시로 증편된 열차입니다.
중국의 기차는 유난히 긴 것이 특징입니다. 워낙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제한된 운행 편수에 많은 사람을 실어 날라야 하고, 장거리 운행이 많아서 기차의 상당 부분이 침대 칸으로 구성돼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기차표는 크게 침대 칸(워푸:臥鋪)과 좌석 칸으로 나눠집니다.
침대 칸은 루안워(軟臥)와 잉워(硬臥)가 있는데 루안워의 가격은 잉워보다 1.5배에서 2배쯤 비쌉니다. 루안워는 침대가 넓어 편안하고 푹신푹신하며 4인 1실의 형태로 돼있으며 잠잘 때는 안으로 잠글 수 있습니다. 잉워는 양편에 상중하 3단으로 된 6개의 침대가 배치돼 있으며, 루안워처럼 하나의 방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이 없이 바로 복도에 연결돼 있습니다. 잉워는 장거리 여행객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기차이며 루안워에 비해 훨씬 많이 마련돼 있습니다.
잉워의 경우 상중하단의 가격이 조금씩 다른데, 공간이 좁은 상단이 가장 싸고 공간이 넓어 앉을 수도 있는 하단이 가장 비쌉니다. 이런 가격차는 이용의 편의성을 감안한 것으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너 사람이 일행이 돼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경우 값이 좀 비싸더라도 루안워를 끊으면 여러모로 쾌적하고 안전한 여행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한두 사람이 여행할 경우 루안워는 오히려 안전 면에서 취약할 수 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동안 낯선 사람들과 지내야 하니 좀처럼 긴장을 풀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반면 잉워는 열린 공간에서 옆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쉽게 돼있습니다. 금연 칸임에도 불구하고 줄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도 있고 내복 바람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있고 큰 소리로 쉬지않고 수다를 떠는 사람도 있어서 조용하고 안락한 여행이 되기는 다소 어렵지만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웃이나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침대칸이 필요 없는 낮 시간 단거리 운행 열차의 경우에는 루안쭈어(軟座)나 잉쭈어(硬座) 같은 좌석칸이 마련돼 있습니다. 루안쭈어가 잉쭈어에 비해 공간이 넓고 좌석도 편안하게 돼있지만, 의자를 뒤로 기댈 수는 없습니다.
이밖에 입석표에 해당하는 짠퍄오(站票)가 있는데 당일 표를 구할 수 없거나 돈이 없을 경우 입석표를 사게 됩니다.
중국에서 기차표는 보통 4일 전에 예매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음력 설(春節), 노동절 등 성수기에는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 표를 사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물론 암표상(퍄오판즈票販子)이 있어 웃돈을 주고 급한 표를 살수는 있지만, 성수기나 특별 수송기간 기간에는 표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웃돈이 표 값을 능가하기도 합니다.
중국 기차 여행의 최대 단점 가운데 하나는 미리 왕복표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출발하는 역에서만 표를 팔기 때문에 일정이 짜여진 여행을 할 때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돌아오는 차편을 확인하고 가능하면 표를 사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중국 기차의 또 다른 특징은 열차 안에 항상 뜨거운 물이 구비돼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중국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 때문인데, 세수할 물은 없어도 대부분 차 마실 뜨거운 물은 있습니다. 한국인처럼 차 마시는 습관이 돼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 물은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늦은 밤 출출할 때, 침대 칸에서 끓여 먹는 컵 라면의 맛은 정말 각별합니다. 요즘엔 중국 사람들도 컵 라면을 많이 먹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대개 기차를 탈 때 장거리 여행에 대비해 먹을 것을 잔뜩 싸옵니다. 이중 꼭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타이완의 이름 없는 식용유 회사에서 대륙의 라면 시장을 석권하며 굴지의 식품 기업으로 발돋움한 캉스푸(康師傅) 라면입니다. 캉스푸는 한국 사람들 입맛에도 맞는 편이어서 훌륭한 대용품이 됩니다.
중국에서 기차 여행은 여러 가지 색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자신의 여행 목적에 맞는 기차 편을 정하고 표를 사는 것을 비롯해 매 순간마다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침대 칸에 눕거나 기댄 채로 대륙의 광활하고 다양한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며, 우연히 만난 중국 사람들과 함께 독특한 향이 나는 꽈절(瓜子兒, 훈제한 해바라기씨나 호박씨 등)을 함께 까먹으며 친구가 돼가는 과정이나, 컵라면을 안주 삼아 5위엔 짜리 얼궈터우(二鍋頭) 술 한 잔을 나눠마신 경험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추억거리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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