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이후, 6개월여동안 가깝게 지내던 한 동료 연수생 한분이 1년 연수생활을 마치고 지난주 서울로 돌아가셨습니다. 모 대학 교수님이신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자연스레 알게된 분입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연수생들과 가끔 운동도 함께하고, 술자리도 갖다보니 여러모로 통하는게 많아 친하게 됐습니다.
공항으로 가던날 아침에 다른 연수생분과 함께 배웅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가운데 분이 이번에 귀국하신 분이시고, 옆에 모자 쓴 사람이 접니다. 2주일 전쯤엔 자주 뵜던 다른 연수생 한 분도 귀국하셨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다섯달 남짓 있으면 귀국해야합니다만, 평소 가깝게 지내던 두 분이 먼저 떠나시고 나니까 며칠 동안은 많이 허전하더군요.
동료 연수생들끼리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한국에서 미국이라는 넓디넓은 땅에 와서, 거기서도 같은 지역, 같은 아파트에서 1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것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라구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미국에서 6개월여 연수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기준으로 주변의 동료 연수생들을 보면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변 연수생들과 교류를 갖는 분들이 한 부류라면, 소극적으로 교류를 맺는 분들이 계시고, 아예 주변 한국 사람들과 교류를 갖지 않으시려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극적 교류란, 사람들을 만나기는 만나되 필요한 때를 제외하곤 그다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분들을 말합니다.
미국에 연수를 와서, 초면의 다른 연수생들을 사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야도 모두 다르고, 나이들도 제 각각인데다, 모두 한국에서는 ‘한가락 한다’(?)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주 친해지면 모를까,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간에 존칭을 쓰며 조심스럽게 대하는게 일반적 관행입니다.
제 경우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편에 속하긴 합니다만,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오는 사람 막지는 않지만, 일부러 끌어오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서울에서야 가끔은 인연을 만들려고, 일부러 끌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이곳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냐 싶어섭니다.
주변을 보면 훨씬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사귀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국처럼 저녁마다 술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내기 때문에 ‘적극적’이다라는 표현이 애매하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주변 연수생들과 자주 어울리며 지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반면 교류에 소극적인 연수생들을 보면, ‘학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대부분은 “그렇잖아도 복잡한 한국을 떠나 머리 식히러 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사람들에게 치일 일이 있느냐“면서, 어울리기를 꺼려하시는 분들입니다.
소극적인 분들은 아주 가끔 모습을 내보일 뿐, 보통은 가족과 함께 조용히 1년을 보내다 한국으로 돌아가십니다. 이곳 표현으로 ‘은둔생활’을 하다 가십니다. 이런 분들은 특히 주변 연수생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연수생들을 보고는 ”이해못하겠다. 그렇잖아도 소중한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쓸 필요가 있느냐“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미국 연수기간동안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에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를 놓고 봤을 때, 어떤게 옳고 그르다는 식의 잣대를 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를 것입니다.
다만, 제 판단으로 보면 한국에서 인간관계에 적극적인 분들은 이곳에 와서도 적극적인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 소극적이셨던 분들은 이곳에 와서도 역시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한국에서야 ‘일’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이 낯선 사람들을 만나야할 때가 많습니다만, 이곳에서는 그럴 일도 없고, 자연스레 개개인이 가진 본래 성향들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인연’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처음 사람을 만나고, 괜찮다싶으면 적극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편에 속합니다. 이 때문에 가끔 사람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던 일도 있었습니다만, 그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새로 사귀면서 얻은 것들이 훨씬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귀는데는 상호간에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시간도 투자해야하고, 돈도 투자해야하고, 몸도 투자해야 하고, 많은 정성도 들여야 합니다. 누구나 좋은 인연들을 맺고 싶어합니다만, 좋은 인연이라는게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지만 해외 연수까지 와서 새로운 사람과 사귀기위해, 그것도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도 모를 ‘미지의 인연’을 위해 시간과 돈과 몸과 정성을 투자한다는게 자칫 귀찮고, 힘들고, 공허한 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수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날 것이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다 자기하기 나름일 것이고, 자기가 만족하는 방식대로 살면 그만일지 모릅니다. 맹자의 말을 빗대어 말하자면, “너에게서 나오는 것은 너에게로 되돌아간다”고나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