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6일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프루덴셜 센터에서 열린 ‘불후의명곡 in US’ 공연 때 “패티! 패티!”라고 외치며 환호하는 미국 K-POP 팬의 모습이다.
“어머 뉴진스라니!”…가야 할 결심!
한국을 떠나기 석 달 전, 지난해 5월이었다. ‘불후의명곡’ 연출을 맡고 있는 입사 동기, 형근이 형을 만났다. 10월에 뉴욕에서 공연하니 보러 오라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소싯적 프로듀서 맛을 조금 본 터라 가능할까 싶었다. 그 많은 인력과 출연진을 보내고, 먹이고, 재우고, 공연까지 한다는데 얼마나 많은 돈과 품이 들지 가늠이 안 됐다.
석 달 뒤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봤다. 10월 26일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불후의 명곡’의 뉴욕 특집 공연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수 패티김과 박정현, 김태우, 싸이, 영탁, 그룹 잔나비, 에이티즈, 뉴진스 등이 출연한다고 적혀 있었다. 어머! 뉴진스라니! 이름밖에 모르지만, 요즘 핫하다니, 이 공연 꼭 보러 ‘가야 할 결심’을 했다.
꿈이 이뤄지는 콘크리트 정글 ‘뉴욕’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내렸다. 셔틀과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 다리로 갔다. 이스트 리버 너머로 월스트리트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다리 위엔 “꿈이 이뤄지는 콘크리트 정글, 할 수 없는 게 없다”라는 제이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가 끊임없이 귀를 맴돈다. 연봉 20만 달러를 받아야 월세가 안 밀리고 살 수 있다는 이곳, 바라보는 것만으로 소원을 이룬 관광객과 높은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노점상이 어울려 다리 위는 북적였다.
다리를 건넌 발걸음은 부두로 향했다. 그곳에서 배에 몸을 실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러 가는 크루즈다. 배는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가로지르는 이스트 리버에서 출발했다. 맨해튼 브리지와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 어퍼 베이로 나아갔다. 어퍼 베이에 다다르자 오른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뉴저지와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허드슨 리버를 거슬러 올라갔다. 이미 해는 지고 빌딩 숲 사이로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배는 잠시 멈춰 서 달오름을 구경했다. 이때 턱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가 빽빽한 사람 숲을 비집고 내게 다가왔다. 자신을 호주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니 사진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무슨 사진? 달이 떠올라 사람들이 탄성을 지를 때 내가 망원렌즈로 달을 찍는 걸 봤단다. 10달러를 줄 테니 집에 돌아가서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사진을 보지도 않고 사겠다고 하니 당황스럽기도 했고, 남에게 팔만한 사진을 찍을 실력도 아니라 부끄럽기도 했지만, 노신사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었다. 즉석에서 와이파이로 월출 사진 몇 장을 뽑아 메신저로 넘겨드렸다.
이윽고 배는 침로를 남쪽으로 다시 돌렸다. 멀리 해넘이로 붉게 물든 어퍼 베이 위에 우뚝 선 자유의 여신상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배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자유의 여신상에 다가섰다. 해는 져 밤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박명과 조명에 기대고, 감도를 올려 셔터를 눌렀다.
“공통 나르면 돼”…???
짧았던 뉴욕 여행을 마친 밤, 메인 프로듀서님과 통화했다. 연출진 입장에선 스태프를 많이 데려올 수 없어 일손이 부족한 터였다. 뭘 하면 되느냐고 묻자 “공통 나르면 돼”라고 한다. ‘공통’이 뭘까? 하여튼 일찍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장소와 출연진에 변동이 있었다. 장소는 8만 석 규모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2만 석 규모의 프루덴셜 센터로 바뀌었다. 그리고 뉴진스가 빠졌다. 괜찮다. 아는 노래도 없으니까 하기엔 아쉬웠다.
공연 당일, 정오쯤 뉴어크의 프루덴셜 센터에 도착했다. 스태프와 장비가 오가는 뒷문으로 들어갔다. 조연출인 박 PD를 만났다. 스태프 비표를 받았다. 업무지시도 받았다. 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의 오른쪽에서 공통과 비품의 이동, 출연진의 안내 등 진행을 맡으면 된다고 한다. 공통이 뭐냐고 물으니, 가수의 출연 순서가 적힌 공을 진행자가 뽑는데 그걸 담는 통이란다. 아하!
“있어 보니 명당이더라”
공연장 안은 한국에서 온 스태프와 현지에서 고용한 스태프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의사소통 문제나 문화의 차이로 티격태격하거나 일 처리가 더딘 점도 왕왕 보였다. 그래도 공연은 해야 하고, 방송은 나가야 하니 무대와 좌석 설치, 리허설까지 숨 가쁘게 진행됐다. 저녁 6시가 되자 관객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고, 본 공연에 앞서 에이티즈 팬들을 위한 무대가 시작됐다.
나는 돌출무대 오른쪽 계단 앞 펜스 난간에 자리했다. 낮에 비표를 건네준 박 PD도 나란히 앉았다. 라이브 방송은 아니지만, 라이브 공연인지라 방해돼선 안 될 것 같아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선지 감히 카메라를 들 여유가 없었고, 연출자의 콜에 맞춰 큐시트를 따라 읽다가 공통을 들고 몇 차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1부 녹화는 9시가 다 돼서야 마무리됐고, 곧이어 2부 녹화가 시작됐다. 변화도 생겼다. 진행이 가빠지면서 공통을 올리고 내리는 걸 대폭 줄였다. 덕분에 짬이 생겼다. 가방에 넣어둔 카메라를 슬쩍 꺼내 들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내 위치는 본무대와 돌출무대 사이 오른쪽이었다. 본무대는 물론 돌출무대와 무대 통로를 지나는 출연자, 관객까지 모두 가까이서 담을 수 있는 명당이었다.
‘불후의명곡 in US’ 최고의 가수는?
이날 뉴진스는 없었지만, 쟁쟁한 K-POP 가수들이 함께했다. 패티김 선생님을 필두(이하 정규앨범 데뷔 순)로 박정현, 김태우, 싸이, 영탁, 잔나비, 에이티즈, 이찬원이 무대에 올랐다. 이 가운데 미국 K-POP 팬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가수는 예상과 달랐다.
먼저 재미교포로 보이는 가수 이찬원 씨의 팬 분들은 공연 전부터 미국 관객들에게 응원을 가르쳤다. 처음 해보는 한국식 응원이 신선했는지 미국 K-POP 팬들도 금세 응원을 따라 하며 흥을 돋웠다. 그런데 이 팬들, 그룹 에이티즈의 사전 공연을 보기 위해 가장 비싼 티켓을 사서 들어온 에이티즈 팬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이찬원의 팬도 에이티즈의 팬도 모두 울린 분이 있었으니 바로 데뷔 65년 차 패티김 선생님이었다.
리허설 때만 해도 다들 걱정했다. 부축받고 리허설에 참여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질 공연, 1부와 2부 2차례나 무대에 올라야 하는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자 30년은 젊어진 듯 넘치는 활력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이날 재미교포를 제외한 관객은 주로 10대에서 20대 미국 여성들이었고, 이들이 무대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팔십 대 할머니, 난생처음 듣는 그녀의 노래에 감동한 미국 관객들은 노래가 잠시 끊어지자 ‘패티! 패티!’를 환호하며 거장을 응원했다.
이날 공연은 자정까지 다섯 시간 넘게 이어졌고, 지난해 11월 18일, 25일, 2주에 걸쳐 방송됐다. 이미 보신 분도 있겠지만, 이날의 감동과 여운, 느끼고 싶은 분은 KBS 홈페이지나 유튜브에서 보시길 권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