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얽힌 얘기들과 샌디에고 지명의 유래를 짚어보고 몇 가지 여행 팁을 전할까 합니다.
1) 경찰차가 뒤쫓아 오면 긴장하게 되기는 어디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처지라면 한결 긴장이 더할 수밖에 없겠지요.
운전하다가 경찰이 차를 세우라고 하면 안전한 곳으로 차를 세운 다음 두 손으로 핸들을 그냥 잡고 있으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손을 내리거나 다른 행동을 하면 총을 꺼내는 줄 안다는 것이죠. 어쨌든 경찰과 마주치게 되면 최대한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최상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오래 사신 분들 얘기로는 ‘미안하다’(I`m sorry)는 얘기는 절대 하지 말라는 주문입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진짜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결과밖에 안 된다는 얘기네요.
한 번은 이곳에서 만난 선배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꽃바구니라도 하나 준비해 가겠다고 저의 아내가 차를 몰고 나갔었죠.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싶은데, 웬걸 경찰 사이렌과 함께 ‘오른쪽에 차를 세우라’는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지더군요. 예감이 이상하여 나가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저의 아내 차였습니다. 제가 멀찌감치 서서 “남편인데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아예 “저만치 우편함 쪽으로 가 있어라”고 하면서 근처에 못 가게 하더군요.
경찰은 아내한테 “꼼짝하지 말고 운전면허증과 보험증명서를 제시하라”고 했습니다. 면허증이야 지갑 속에 있지만, 보험증명서는 보조석 앞의 캐비닛에 넣어두었거든요. 아내가 그 사실을 얘기하면서 “보험증을 꺼내려면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괜찮으냐”고 묻자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운전면허증과 차량번호를 가지고 운전경력에 관한 몇 가지 추적 조사를 했지만 전과사실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지요.
그러자 경찰은 “왜 자기가 따라오는데 차를 세우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아내는 “사이렌도 켜지 않았고 나를 따라 오는 줄 몰랐다”며 오히려 “나를 따라온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죠. 그러자 경찰은 “조금 전에 교차로에서 왜 차를 기우뚱거렸느냐”고 물었고, 아내는 “차를 회전하는 동안에 옆 좌석에 둔 꽃바구니가 넘어져 바로 세우느라 약간 흔들렸나 보다”고 했죠.
결국 경찰은 “차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음주운전이라고 생각해 따라왔다”면서 꽃바구니 등을 절대 넘어지지 않게 안전하게 묶은 다음에 운전하라며 그냥 가더군요. 다행히 티켓은 커녕 경고장(Warning)도 받지 않았습니다.
역시 위기순간에도 지나치게 긴장하지 말고(때로는 당당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2) 중고차 번호판과 등록증
단기 연수라도 6개월 코스라면 중고차를 사는 경우와 렌트를 하는 경우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1년 코스라면 중고차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들 합니다. 1년 후에 되팔 때에 1,000~2,000 달러가량 밑지는 셈인데, 보험료도 더해야 합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좀 더 싼 보험도 있지만 저는 AAA(‘트리플A’라고 하죠)에 가입하고 회원카드까지 발급받았는데, 미니밴 보험료로 1,000달러(와이프 포함 1,100달러)를 냈습니다. 렌트를 한 친구들을 보면 한 달에 보험료를 포함하여 350~470달러를 내고 있습니다.
중고차를 딜러로부터 구입할 경우엔 번호판과 등록증을 받는데 최대 90일이 걸립니다. 제가 중고차 딜러한테서 4년 된 혼다 오딧세이 미니밴을 구입하고선 2주 후에 번호판이 배달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이 친구들이 2주라고 말하면 평일(비즈니스 데이) 기준입니다.
기다려도 안 오길래 차량국(DMV)에 가서 확인을 했더니 딜러들의 경우 차를 팔면 90일 동안 세금을 안내고 이용할 수 있는 밀월기간(Grace period)이 있다는 답변입니다. 제가 차를 구입하면서 자동차 등록세랑 번호판 값이랑 모두 지급했는데, 이 돈을 90일 동안 딜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딜러한테 한 번도 전화를 안 했는데, 역시나 90일이 지나자마자 번호판이랑 ‘타이틀’과 자동차등록증이 우편으로 배달돼 왔습니다. 주소가 안 바뀐 상태였을 뿐 아니라 제 이름마저 한 글자가 오타였습니다. 자동차 고유번호가 있으니까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혼자 판단하지 마십시오. DMV에 갔더니 신고서류를 한 장 주는데, 거기엔 ‘등록증 이름이 잘못 기재되었으니 (이런 이름으로) 고쳐 달라’는 항목이 별도로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얘기겠죠. 이름과 주소를 정정 신청했더니 등록증은 바로 발급해주고, 타이틀은 2~3일 후에 우편으로 배달될 거라고 하더군요.
차량 소유 권리증이라 할 수 있는 타이틀은 ‘Vehicle Certificate of Titl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에선 이 종이가 핑크 색이기 때문에 흔히 ‘핑크 슬립(Pink Slip)’이라고 합니다. 여기엔 앞으로 차를 팔 때 누가 누구한테 판다는 매매 당사자의 주소와 서명을 할 수 있는 칸이 마련돼 있습니다. 핑크슬립이 없으면 차를 매매할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경우엔 즉시 DMV에 신고하고 재발급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핑크슬립은 집에 잘 보관해 두고, 대신에 하얀 종이로 된 등록확인서만 차에 비치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는군요.
자동차 번호판(License Plate)은 2개가 있는데, 몇 년(오른쪽 위) 몇 월(왼쪽 위)까지 세금을 냈다는 표시가 있는 것을 자동차 뒤편에 부착하고, 표시가 없는 것을 앞면에 달면 됩니다. 아예 앞 번호판이 없는 주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돈을 더 내면 ‘개인 번호판’(Personalized Plate)이라고 하여 자신이 원하는 숫자와 글자를 넣은 번호판을 발급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냥 일곱 글자(숫자1개+알파벳3개+숫자3개)로 된 표준형(Standard)으로 달았습니다.
3) 샌디에고 지명의 유래
샌디에고 지명은 근대 유럽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결론적으로 1602년 스페인의 탐험대를 이끈 ‘세바스찬 비스카이노’가 지금의 샌디에고 항구에 도착했을 때의 성인 ‘축일’(Feast day)을 따라 이곳 지명을 샌디에고로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이 축일은 가톨릭 전통에서 나온 것인데, 당시 해당하는 성인이 ‘알칼라의 세인트 디아쿠스’였다는 거죠. 공교롭게도 그 때의 탐험대 함선의 이름도 샌디에고였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1542년 스페인 국왕의 후원 아래 탐험대를 이끈 ‘후앙 로드리게즈 카브리요’가 지금의 샌디에고만에 도착했을 때는 그 무렵의 성인 축일을 따 이곳 지명을 ‘산 미구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곳엔 수천 년 동안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죠.
그 당시만 해도 캘리포니아는 섬으로 생각됐고 스페인에 첫 발견에 따른 선점권이 있다고 여겨졌다는데, 1768년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러시아 상선들이 고기잡이를 하자 스페인은 이곳을 확실한 점령지로 굳히려고 합니다. 정치적 목적이지만 종교적 목적으로 포장됐죠.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 국왕은 뉴스페인(지금의 멕시코)에 정복 탐험명령을 내려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사였던 ‘프라이어스’(Friars)를 탐험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주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신부가 프란체스코 수도원장으로 임명됐고 군대가 동행했습니다. 지금도 샌디에고의 퀄컴 구장(스테이디엄)을 지나는 길 이름이 ‘프라이어스 로드’입니다.
주니페로 세라 신부는 정복지를 다니며 성당을 세우는데 캘리포니아의 첫 교회(성당)가 1769년 7월16일 샌디에고에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는 5년 후에 6마일 동쪽으로 옮겨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미션 바실리카 샌디에고 데 알칼라’(Mission Basilica San Diego de Alcala)입니다. 퀄컴 구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앞에는 샌디에고 강이 흐르고 있죠. 처음 세워졌던 곳엔 ‘주니페로 세라 박물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의 일부로 편입됐고, 2년여에 걸친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미국이 승리하자 1848년 ‘과달루페 히달고 조약’으로 캘리포니아와 아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등이 미국령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같은 해 골드러시에 힘입어 인구가 급증하자 1850년 9월9일 주(State)로 편입됐죠.
4) 샌디에고 주변 여행 팁
샌디에고 안에선 해양생물과 고래쇼로 유명한 ‘씨월드’(www.seaworld.com)가 손꼽히죠. 가격은 계절 따라 계속 바뀌기 때문에 웹사이트를 반드시 참조하시구요, 물을 뒤집어쓰는 이벤트가 많아 겨울엔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발보아공원(Balboa Park)엔 15개의 박물관과 다양한 공연예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2월 초엔 이틀간 특별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하구요. 박물관 입장은 유료인데,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인류사박물관이나 우주박물관 등이 눈길을 끌더군요.
샌디에고 동물원(www.sandiegozoo.org)도 명소로 꼽히는데 두 군데가 있습니다. 발보아 파크에 있는 것을 흔히 ‘샌디에고 주(zoo)`라고 하고, 다운타운에서 동북쪽으로 40분 거리의 에스콘디도 지역에 있는 것을 ‘와일드 애니멀 파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속촌이라고 할 수 있는 ‘올드타운’이 있고, 다운타운에는 샌디에고 문화발달의 시발점인 개스램프쿼터 (Gas Lamp Quarter)가 있습니다.
코로나도 섬은 마릴린 먼로가 영화를 찍은 것으로도 유명하죠. 햐얀 모래사장과 함께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 코로나도’, 샌디에고 육지와 코로나도 섬을 연결시키는 ‘코로나도 다리’, 코로나도 골프장 등이 볼 만합니다. 처음 여기에 도착한지 보름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곳인데, 코로나도 비치에선 파도가 거세지 않아 서핑 초보자들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미드웨이호가 관광상품으로 정박해 있는 씨포트 빌리지(Seaport Village)도 가 볼 만합니다. 다운타운에서 가깝죠. 씨월드와 함께 어우러진 미션베이(Mission Bay) 공원에선 수상스포츠는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를 타고 일주할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등대가 있는 포인트 로마(Point Loma)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뾰족한 부분 끝에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구요, 12월에서 2월 사이에 고래를 볼 수 있으며 해양유람선도 운행하고 있습니다.
이따금씩 바람을 쐬고 싶을 땐 라호야 코브(La Jolla Vove)나 라호야 비치, 오션 비치, 퍼시픽 비치 등을 거닐면 제격이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라호야 코브에선 자연속의 물개들이 춤추는 광경을 즐기면서 인근 카페에서 커피 한잔 곁들이면 그만이고, 오션비치 부두를 거니면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일품입니다. 부두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많구요. 오션비치에선 서핑을 즐기는 이들도 많습니다. 퍼시픽 비치에선 밤이 되면 광란의 파티가 열린다는데 직접 안 봐서 잘은 모르겠네요.
이제 자동차를 조금 달려 볼까요.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차로 30분 거리에 레고랜드 (Legoland California ; www.legoland.com)가 있습니다.
1시간 거리엔 ‘산 후앙 카피스트라노’ 성당이 있는데, 미사 중에 지진이 발생해 무너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입니다. 북쪽으로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디즈니랜드도 빠뜨릴 수 없죠.
샌디에고 동북쪽으로 차로 1시간 30분가량 걸리는 곳에 ‘줄리앙’(Julian)이 있습니다. 1870년대 골드러시로 번창했던 곳인데, 지금은 애플파이로 유명합니다. 11월께는 과수원에서 5~10달러짜리 종이봉투를 구입해 직접 사과를 따서 가져갈 수 있는 이벤트도 즐길 수 있습니다. 줄리앙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쿠야마카 호수’(Cuyamaca lake)에서 피크닉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줄리앙 부근엔 ‘팔로마 마운틴(Palomar mountain) 주립공원’이 있는데 아직 못 가봤습니다. 돌아가기 전에 들려봐야 할 텐데 말이죠. 클리블랜드 국유림의 고산지대에 전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캠핑장은 물론 송어낚시를 할 수 있는 작은 호수가 있다고 합니다. 직경 200인치짜리를 포함한 특수 천체 망원경이 설치된 ‘천문대’(Palomar Observatory)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줄리앙 가기 직전에 다른 길로 접어들어 30분 정도 달리면 ‘안자 보레고 사막(Anza Borrego Desert) 주립공원’이 나옵니다. 사막도 좋지만 1~2월엔 선인장을 비롯한 야생화가 볼거리를 장식합니다. 미리 전화로 확인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비가 안 내려 꽃이 피지 않았다네요. 특히 ‘데스밸리(Death Valley) 국립공원’을 다녀오신 분은 야생화가 없는 경우엔 반드시 실망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데스밸리는 샌디에고에서 차로 7시간(안 쉬고 가면)~10시간(좀 쉬고 숙소까지 가면) 걸립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라스베이거스를 경유해 오면 운전하는 피로를 다소 줄일 수도 있겠죠. 라스베이거스에서 샌디에고까지는 5시간 잡으면 넉넉합니다.
멕시코시티와 칸쿤휴양지를 묶어 4박5일짜리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톨릭 신자들 중엔 파티마와 루르드 등과 함께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 손꼽히는 과달루페성지만 방문하는 경우도 더러 있더군요. 이 성지는 멕시코시티 도시 안에 있습니다. 멕시코시티까지는 로스앤젤리스 공항에서 3시간 55분 날아야 합니다.
쇼핑 얘기가 빠졌죠. 이곳에선 다운타운 부근에 있는 패션밸리(Fashion Valley), 북쪽으로 차로 30분가량 달려가는 레고랜드 인근의 ‘칼스배드 아울렛’, 남쪽으로 20분가량 달린 곳에 있는 ‘국경 아울렛’ 등이 있습니다. 물론 2시간쯤 거리인 팜스프링 아울렛도 있죠.
칼스배드엔 여기서 10년 이상 사신 분들이 한국으로 출장 갈 때면 주로 폴로 셔츠를 사러 자주 들리더라구요. 지금의 한국 사정을 잘 몰라서 그런 건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칼스배드 아울렛 바로 인근에 있는 화원도 6달러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데 구경거리입니다.
국경 아울렛은 글자 그대로 멕시코와의 국경 바로 직전에 있는 곳인데, 정확한 명칭은 ‘San Diego Factory Outlet Center’이며 지명을 따서 ‘샌 이시드로’(San Ysidro) 아울렛이라고도 합니다.
패션밸리는 6개의 대형 백화점과 18개의 AMC극장이 들어선 대형 쇼핑몰인데, 주로 중고가품들이 많은 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