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서머캠프 광클하는 미국 워킹맘들

by

한국으로 치면 구청에 해당하는 캐리 커뮤니티센터가 홈페이지에 고지한 서머캠프 등록일자 알림문. 올해 캐리의 서머캠프 등록은 3월 5일 등록이 시작된다는 알림문과 캠프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은 2월 초부터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지난 3월 5일은 제가 미국에 도착한 지 딱 6개월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연수를 시작한 지 212일 지났고, 이제 153일이 남았습니다. 연수의 절반은 현지 생활에 적응하느라 숨 가쁘게 달렸습니다. 저는 회사 선배의 집·자동차·무빙을 물려받아, 남들보다 쉬운 출발을 했는데도, 얼마나 좌충우돌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상황을 등산에 비유하면, 오르막길을 지나 내리막에 접어들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오르막길이 끝나니 주변 미국인들의 삶이 눈에 들어옵니다. 얼마 전 아이의 여름방학 돌봄(서머캠프) 프로그램을 신청하면서 미국 맞벌이의 애환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은 방학 때 다양한 기관에서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지역사회에서 방학 때에도 돌봄 절벽 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이를 유료로 돌봐준다는 뜻입니다.

미국에선 YMCA나 사설학원 운영하는 서머캠프도 많지만, 동네 ‘커뮤니티센터(구청)’에서 운영하는 캠프가 인기가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모리스빌은 지난 2월부터 서머캠프 등록을 받았는데, 온라인 등록 창이 열리자마자 마감될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저는 저희 아이가 속한 농구팀 코치이자, 아이 친구인 엄마가 알려줘서 이 서머캠프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저희 아이는 지난해 모리스빌 농구리그에 참여했습니다. 파란 단체복이 저희 아이팀인데, 그 아이들 뒤에 서 있는 농구 코치가 저에게 모리스빌 서머캠프의 존재를 알려주었습니다. 코치는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데, 막내가 농구를 좋아하고 자신은 고등학교 때 농구선수였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2학년 농구 코치도 겸하고 있습니다.

모리스빌 서머캠프의 인기 비결은 긴 돌봄 시간과 저렴한 가격입니다. 모리스빌 거주민은 일주일 118달러(약 17만 원)에 등록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돌봐줍니다. 한 달에 472달러(약 68만 원)면 일하는 부모는 아이 걱정 없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초등학교 건물을 쓰고, 자원봉사자를 활용해 비용을 낮출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쉽게도 광클(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클릭) 등록에 실패한 저는 이웃 동네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설학원이나 YMCA는 한 주에 200달러가 넘어서 비용 부담이 컸습니다. 그러다가 이웃 동네인 캐리의 서머캠프가 3월 5일 오전 7시에 접수를 시작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주소는 모리스빌이지만, 생활권역은 캐리로 분류돼 거주민 등록이 가능합니다.

캐리의 서머캠프 프로그램은 무척이나 다양했습니다. 레고로 STEM(과학, 기술, 공학)을 배우고, 캐리 아트센터에서 드라마를 찍고, 현직 미국 여자대학 농구 선수 코치로부터 농구를 배우는 캠프까지 100개가 넘는 캠프가 웹사이트에 뜹니다. 등록 과정은 모리스빌만큼 치열했습니다.

오전 7시에 맞춰서 노트북으로 접속했는데, 인기 있는 캠프는 빠르게 매진됐습니다. ‘예비 의사 체험’ ‘레고로 코딩’ ‘체스 챔피언’ 같은 두뇌형 캠프 프로그램은 5분 만에 ‘등록 불가’ 사인이 떴습니다. 인원이 다 찼다는 뜻이죠. 미국 엄마들도 캠프에 등록하려고 ‘오픈런’한다고 생각하니 동병상련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엉거주춤하다가 인기 캠프는 놓치고, 아트센터에서 운영하는 미술 프로그램에 등록했습니다. 모리스빌과 비교해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짧고, 가격은 비싸지만 예체능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캐리 캠프 가격대가 높기도 합니다. 캐리에의 서머 캠프는 한 주에 180달러부터 시작하고, 농구 캠프는 약 330달러에 달합니다.

한국에서는 방학이 가까워져 오면 아이를 맡길 학원을 찾아다니느라, 속병이 날 정도였는데, 여기는 구청 홈페이지 만들어가도 100여 개가 넘는 돌봄 교육 프로그램이 널려있으니 ‘이곳이 천국’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여름 캠프뿐만 아니라 방과후 프로그램도 부럽습니다.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가 전쟁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점심 먹고 오후 1시쯤 수업이 끝나고, 방과후학교에 당첨되더라도, 오후 4시면 끝납니다. 아이들은 아빠나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학원 뺑뺑이를 돕니다.

오후 5시 30분쯤 방과후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는 YMCA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문 밖으로 나옵니다. 저희 아이는 학기 초반에는 선생님이 차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을 기다렸는데, 지금은 선생님이 정문을 열면 총알처럼 뛰쳐나옵니다. 대학생들이 방과후선생님으로 주로 근무하는데, 시간당 14~18달러의 급여를 받습니다.

미국은 부모가 퇴근하는 오후 6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가 다니는 웨이크카운티 초등학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수업을 하고, 그 후에 YMCA가 운영하는 방과후학교에서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돌봐줍니다. 하교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교내 돌봄교실로 갑니다. 비용은 한 달에 300달러(약 40만원) 정도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는 1시간쯤 학교 숙제를 한 후에, 간식을 먹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놉니다. 일하는 부모들은 오후 5시 30분쯤 돌봄 선생님으로부터 땀에 푹 절은 아이를 인계받아서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곳에서는 학교 선생님이 아이를 학원 차에 태워서 보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도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방학이나 방과 후에 아이들을 봐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면 좋겠습니다. 있는 시설과 인력을 활용해서 비용은 낮추면서, 돌봄의 폭을 넓히는 방안을 지자체가 고민하고, 쓸데없는 규제를 풀어나간다면 분명히 해답이 있을 겁니다.

저는 오늘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갑니다. 아이는 볕에 그은 얼굴로 오늘 하루를 얼마나 신나게 보냈는지 차 뒷좌석에서 재잘거릴 겁니다. 미국 생활 반환점에 서서, 자두처럼 반짝이는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며 다짐합니다. 남은 연수 기간 또 한 번 심기일전해서 나머지 절반도 잘 해보자.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행복했던 이 경험이 한국에서도 가능하게 지혜를 나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