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식당, 쇼핑을 자주 하는 곳, 좋아하는 향…
12월 겨울방학을 앞둔 연말 분위기를 뚫고 우리로 치면 학부모 회장과도 같은 ‘룸맘’(Room Mom)으로부터 도착한 메일 한 장을 받고 처음엔 살짝 당황했다. 보낸 메일에는 담임교사와 보조교사의 TMI ‘취향’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가 아침을 자주 먹는 장소까지 적혀 있었다. 다름아닌 연말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에게 보낼 선물을 고르는데 도움이 될 취향 명세서였다.
학부모로서 미국에 와서 가장 크게 ‘문화 차이’란 걸 체감한 분야를 꼽는다면 바로, 교사에게 수시로 소소한 선물이나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김영란법으로 한국에선 케익 하나도 잘 받지 않으려 하는 교사들을 보고 온 터라 더 극명하게 대비됐다.
미국 교사가 가장 선호하는 선물은 키프트 카드
미국에서 교사에게 가장 반응 좋은 선물은 현금, 기프트 카드다. 이곳에선 교사 생일, 할로윈 데이, 추수감사절, 선생님의 날,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감사 카드에 형편에 따라 30~50달러 정도 충전된 기프트 카드를 넣어 보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트에는 시즌 때마다 기프트 카드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는 감사 카드가 빽빽하게 진열된다. 또 기프트 카드를 보낼 때는 가급적 영수증도 함께 보낸다고 한다. 미국에선 해킹으로 선불 기프트 카드에 충전된 금전을 빼가는 사례가 심심치 않아서, 이를 대비해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꼭 기프트 카드 같은 현물을 줄 필욘 없다. 담임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료를 한 병 들고 가거나 좋아하는 스낵을 카드와 함께 가져가도 된다.
이처럼 한국과 달리 교사가 공무원이 아닌데다가 워낙 ‘~데이(day)’에 진심인 미국 문화가 맞물리다 보면 ‘한국이라면’을 상상하게 하는 웃지 못할 사례가 많다. 생일 때 기프트 카드를 보내자,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와! 나 기프트 카드를 받았어!”라며 선물을 준 아이를 안아줬다든가, 어떤 교사는 자신의 생일날 아이들에게 선물을 많이 받을 것을 대비해 학교에 큰 왜건을 끌고 온 게 목격됐다는 이야기들을 전해 듣고 있자니, 내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참고로 그 왜건은 꽉 찼다고 한다.) 한국적 정서는 물론 법에도 위반되는 일들이다.
이와 함께 미국 공립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눈에 띄었던 건 ‘기부 독려’였다. 단순히 기부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 보기엔 열악한 미국 공립학교 교사의 열악한 처우 및 교육 환경과 떼놓고 생각하긴 어려워 보였다. 개학일에 담임선생님이 정한 학용품을 사가야 하는 것부터가 낯설었다. 색연필, 색종이, 마커 등 처음에는 우리 애가 쓰는 물건을 사오라고 하는 줄 알고 이름표를 붙이려고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교육 예산 부족 탓에 학급에서 1년 동안 쓸 비품을 마련하는 것이란 건 나중에 들었다. 준비물 없는 한국 학교를 경험하고 간 터라 더 어색했다. 담임 선생님은 여기에 더해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의 담임 선생님 계정으로 선생님이 별도로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리스트도 제공했다. 부모들의 기부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부족한 물건은 담임 선생님이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고 한다. 마치 최저임금을 받는 미국 레스토랑의 서버가 소비자에게 전가된 ‘팁’으로 이를 메우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 학기가 되면 매번 나오는 단골 뉴스 아이템이 낮은 임금 등 열악한 처우 탓에 교사가 부족하다는 기사다. 이 기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담임은 학기 중인 3월 초, 갑자기 학교를 그만뒀다. 담임 선생님은 개인적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며 학년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데 대한 미안함을 담은 편지를 부모들에게 보냈다. 그 전에 이미 일주일이나 학교에 나오지 않은 터라 이유가 궁금하던 터였다. 교육위원회는 후임 교사 채용 공고를 내겠지만 충원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남은 기간 동안 장기 대체 교사가 담임을 맡을 것이라고 알려왔다. 아이가 이제 겨우 미국 학교에 적응해가는 듯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바뀌면서 다시 적응해야 할 일이 걱정이었다. 같은 학교 3학년의 한 반은 담임이 3번이나 바뀌면서 부모들이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연수를 통해 본 미국 공립 교육의 현실은 듣던 것보다 더 열악해 보였다. 부실하기 그지 않는 학교 급식은 이미 악명이 높으니 그렇다고 친다지만, 지난해 8월 개학 진전까지 운전기사를 구하지 못해 벌어진 스쿨버스 대란은 한국인의 눈높이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이 연일 헤드라인으로 보도를 했지만, 일부 지역은 학년도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스쿨버스를 배정이 안돼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등하교 시킨다는 얘기도 들린다. 급하게 채용한 버스기사가 아이를 엉뚱한 곳에 내려줘 논란이 된 사례도 전국 뉴스에 보도돼 큰 논란이 됐는데, 필자가 살고 있는 채플힐에서 10분 거리인 힐스보로에서 벌어진 일이다. 휴대폰에 아이의 실종을 알리는 엠버 경고가 심심찮게 울리는 이곳 현실을 감안하면 부모들에겐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