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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일 케이크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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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하늘 위로 우뚝 솟은 기다란 초에 불꽃이 일렁였습니다.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또 다른 불꽃들이 연달아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펑’ 소리와 함께 불꽃들은 다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불꽃들로 변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귀마개를 하고 한참을 잔디밭에 얌전히 앉아 있던 아이는 손뼉을 치며 어머니에게 조잘거렸습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 높은 생일 케이크 초를 볼 일은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 중간쯤 적힌 ‘자유 250(Freedom 250)’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자들은 별들로 동그랗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하늘을 수놓았던 형형색색의 불꽃놀이가 끝나자 생일 케이크 초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다시 미국 성조기가 그려졌습니다. 성조기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얼굴로 변하더니 다시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옆을 스쳐 지나가던 청년 두 명의 대화 중 유난히 한 문장이 귀에 꽂혔습니다. “이게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야.”

건국 250주년 맞은 미국

올해 1월 5일 밤 ‘미국의 빛(The Illumination of America)’이라는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mapping) 쇼가 막을 내렸습니다. 프로젝션 맵핑은 벽이나 건물에 빔 프로젝터처럼 영상을 쏴 꾸미는 기술인데, 이번 쇼에선 높이가 약 169m에 달하는 워싱턴 기념탑이 활용됐습니다. 참고로 워싱턴 DC의 상징인 워싱턴 기념탑은 완공됐던 1884년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

‘미국의 빛’이 막을 내린 1월 5일 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일 케이크 초로 변한 워싱턴 기념탑.

새해 전날부터 총 6일간 진행된 미국의 빛은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입니다. 약 20분 분량의 영상이 매일 오후 7시부터 11시 30분까지 워싱턴 기념탑을 캔버스 삼아 펼쳐졌습니다. 첫날과 제가 갔던 마지막 날에는 불꽃놀이까지 더해졌습니다. 특히 첫날에는 새해 카운트다운까지 하며 다음 날 0시 30분까지 진행됐다고 합니다.

찬 기운이 장갑 끝을 뚫고 들어오는데도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지켜봤습니다. 미국인들이 어떤 역사를 중요하게 꼽고 있는지 엿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50년 동안 발생한 수많은 일들 중 자랑스럽고 기념할 만한 역사적 지점들로 영상을 구성했을 테니까요.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를 이끌기 위해 만들어진 초당파적 국가 기구인 ‘프리덤 250(Freedom 250)’은 프로젝션 맵핑 쇼에 대해 “이 몰입형 빛의 캔버스는 미국의 발견과 확장, 독립, 그리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서사적으로 그려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노출 74억 건”

영상은 기념탑 꼭대기가 파란 물결로 변하며 시작됐습니다. 탑은 금세 바닷물로 가득 차오르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내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폴 리비어가 “영국군이 온다!”고 외치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보스턴의 은 세공사였던 그는 미국 독립전쟁이 터졌을 때 영국군의 진격 소식을 알린 영웅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강을 건넜고 깃펜이 독립선언서를 실시간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모습이 워싱턴 기념탑에 쏘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번 프로젝션 맵핑 쇼에서 자신들의 개척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서부로 향하는 이들의 여정과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이 지나가더니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오벨리스크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내레이션이 계속됐습니다. “미국은 인류를 우주 시대로 인도했습니다. 우리가 별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은 동안 이곳 고국에선 새로운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컴퓨터가 펜실베이니아의 한 연구소에서 탄생했고, 새로운 영역을 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를 연결해 모든 이가 지식의 빛에 닿을 수 있게 했습니다.”

보수성향 연구단체 헤리티지 재단의 간행물인 ‘데일리 시그널’은 이번 프로젝션 맵핑 쇼의 TV 시청자 수가 약 2억9900만 명을 기록했고 온라인 노출 수는 74억 건에 달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관계자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사 마지막 날 백악관으로 되돌아올 때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 원’이 워싱턴 기념탑 상공을 두 바퀴 선회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더 화려할 독립 기념일

‘미국의 빛’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독립 기념일 당일인 7월 4일에 더 큰 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백악관은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셔널 몰에 모여 하루 종일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함께 할 예정”이라며 “전 세계가 지금까지 봤던 가장 장엄한 애국심의 표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조 연설을 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불꽃놀이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백악관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7월 4일 독립 기념일 행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독립 기념일을 포함해 7월 10일까지는 ‘그레이트 아메리칸 스테이트 페어(The Great American State Fair)’도 열립니다. 미국의 모든 주를 상징하는 전시관들이 내셔널 몰에 들어서고 각 주(州)별 전시관에선 해당 지역만의 고유한 특색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놀이기구와 게임, 고전적인 먹거리 등 전통적인 축제 요소들도 더해진다고 해 더욱 궁금해집니다.

전 독립 기념일 행사는 직접 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앞으로 이 역사적 사실 하나는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바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해입니다. 2026년에서 250을 빼면 나오는 1776년입니다. 사실 올해 첫날이 되기 전까지는, 워싱턴 기념탑의 촛불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