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게 되면서 이곳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체험해보려고 애썼다. 그 중에서도 음식은 가장 일상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뭘 먹는지, 로컬 맛집은 뭐가 있는지 찾아나섰다. 한국의 된장찌개 같은 평범한 일상 음식을 알고 싶었다. ‘아메리칸’ 식당을 몇 군데 가봤지만 우리가 아는 햄버거, 베이글 샌드위치, 감자튀김, 스테이크 같은 게 대부분이었다. 그게 아니면 멕시코 음식 타코를 파는 레스토랑이 많았다. 미국은 스페인어가 제2공용어로 쓰일 만큼 라틴계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치폴레’ 같은 멕시칸 푸드 체인은 맥도날드만큼이나 많이 보였다.
길을 걸으며 식당을 유심히 살펴보다보니 다양한 국가의 전통음식점도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이태원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음식들이다. 여기 있을 때 체험해보자 해서 여러 곳을 다녔다.
대표적으로 ‘지중해식(Mediterranean) 레스토랑’이 있다. 멕시칸 다음으로 많이 보인 음식점이다. 한국에선 지중해 요리라고 하면 그리스로 대표되는 남유럽 음식을 떠올렸다. 실제로는 지중해를 면하고 있는 터키,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등 중동 음식이 더 보편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피타 샌드위치’가 대중적인 메뉴다. 피타(Pita)는 밀가루로 만든 플랫 브레드의 일종인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빵 안에 토마토, 오이, 양배추 등 각종 야채와 고기를 넣어 만든다. 빵주머니가 볼록해질 정도로 속을 채워주는데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 고기를 먹기 싫다면 ‘팔라펠(Falafel)’을 넣으면 된다. 팔라펠은 콩을 갈아 패티나 볼 모양으로 튀겨낸 음식으로, 중동 요리에 보편적으로 쓰인다. 팔라펠을 넣은 피타 샌드위치는 유대인들에 의해 대중화됐다고 한다. 샌드위치 형태가 아니라 접시에 같은 재료를 담아 내놓는 플래터 방식으로도 먹을 수도 있다. 밖에서 간단하게 먹을 일이 있으면 햄버거 대신 피타 샌드위치를 자주 먹었다. DC 시내에 있는 ‘Little Sesame’, ‘Roti Mediterranean’ 등이 대표적인 중동음식점이다. 하지만 가장 맛있는 집은 유대계 친구가 소개해준 가게 ‘Dalia’s Falafel’(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역 근처)였다.
DC 북쪽 동네 애덤스 모건(Adams Morgan)과 쇼(Shaw)는 에티오피아 커뮤니티가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어 ‘리틀 에티오피아’로 불린다. 1970년대 에티오피아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그 중 많은 이들이 워싱턴 DC에 정착했다고 한다. 구글맵에서 평점이 높은 에티오피아 음식점 ‘Family Ethiopian Restaurant’을 찾아가봤다. 대표 메뉴는 에티오피아 전통 빵 인제라(Injera) 위에 샐러드, 고기 등을 얹어 먹는 요리다. 인제라는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곡물 ‘테프(Teff)’로 만든 얇은 발효빵인데, 우리의 쌀밥처럼 현지 사람들이 매일 먹는 주식이라고 한다. 좁쌀보다 작은 테프는 칼슘, 철분 등 영양소가 풍부해 차세대 ‘슈퍼곡물’로 불린다.
사실 빵이라기보다는 얇은 팬케이크, 우리나라의 전병에 가깝다. 넓고 둥근 인제라 위에 돼지고기, 양고기, 소고기 등 육류와 샐러드, 채소를 아프리카식 소스와 향신료로 조리한 메뉴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대표 플래터를 시켰다. 커다란 접시에 담긴 음식을 여러 사람이 나눠먹는 방식은 한국의 음식 문화와 비슷했다. 인제라를 먹을 땐 손으로 뜯어 고기와 채소를 말아 쌈처럼 말거나 소스에 찍어 먹는다. 포크를 주지 않길래 물어보니 가게 사장은 원래 손으로 먹는 거라고 아프리카 식으로 해보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먹다가 익숙하지 않아서 나중엔 포크를 받긴 했지만 재밌는 경험이었다. 에티오피아 하면 커피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집 커피 역시 에티오피아 명성에 걸맞게 DC에서 마셔본 커피 중 가장 진하고 맛있었다.
DC 북동쪽 노마(Noma) 지역에 ‘유니온 마켓’이라는 식당가가 있다. 한국의 성수동처럼 오래된 상업지구를 재개발해 트렌디한 식당, 상점이 모여있다. 비유하자면 뉴욕의 첼시 마켓에 해당한다(규모는 훨씬 작다). 유니온 마켓에서 처음 접한 남인도 전통음식 ‘도사(Dosa)’는 가끔 생각나는 메뉴다. 렌틸콩이나 쌀을 발효시켜 만든 반죽을 크레페처럼 얇게 펴 굽고 그 위에 가지, 호박 등 여러 볶은 채소를 담아내는 요리다. 요즘 트렌드로 치면 비건에다 글루텐 프리여서 건강하게 한 끼 먹을 수 있다. 한국에서 인도음식점에 가면 카레와 탄두리 치킨만 먹었는데 앞으로는 도사부터 찾을 것 같다.
DC는 마치 세계음식 백화점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DC는 하와이를 제외한 미국 50개 주에서도 인종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2020년 측정한 다양성 지수(무작위로 2명을 선택했을 때 인종이 서로 다른 확률)를 보면, 캘리포니아(69.7%), 네바다(68.8%), 메릴랜드(67.3%)에 이어 워싱턴 DC(67.2%)가 4위다. 미국 전체 평균은 61.1%다.
여기 와서 초반에 ‘미국 집밥’이 궁금해 미국인들을 만나면 집에서 뭘 먹는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조부모님이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여서 어릴 때부터 이탈리아 음식을 많이 먹었어요.” “전 아프리카 음식을 주로 먹어요.” DC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음식 문화를 유지하면서 사는 곳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미국에서 매일 먹는 건 한식이다. H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한식 온라인 쇼핑몰 ‘울타리’, 아시아 식재료 온라인 몰 ‘Weee’에서 식재료를 주문하면 한국식 식단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나한테 햄버거는 속이 더부룩해지는 음식이지만 현지인에겐 된장찌개 같은 음식일 수 있겠다 싶다.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나라가 미국이구나, 오늘도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