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이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새것 사는 것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물건 구입에 시간을 들이는 게 싫다. 그래서 가격에 상관없이 물건구입에 30분이상을 할애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이런 나조차도 두 아이가 다닐 프리스쿨을 고르는 데는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다. 이제 한글을 깨우쳐 가는 애들이 말도 안통하는 미국에서 조금이라도 쉽게 적응하려면 좋은 프리스쿨 선택이 필수란 판단에서다. 또 월 2000달러 이상으로 예정된 프리스쿨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미국에서 베이비시터 노릇만 할 수 없다는 집념으로 정말 프리스쿨 쇼핑에 열정을 쏟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프리스쿨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시간만 나면 와이프는 프리스쿨 쇼핑을 계속하는 눈치다.
연수 확정 후 가장 큰 관심사는 신학기 만 5세가 안되는 큰 아이 유치원 입학이었다. 둘째 딸아이는 교회 등에서 운영한 저렴한 프리스쿨에 등록한 후 YMCA나 시 문화센터 등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등록, 와이프와 교대로 케어하면 별 문제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정 뭐하면 데리고 있으면서 급할 때 데이케어센터에 맡길 요량이었다.
하지만, 큰아이 유치원 입학이 좌절되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둘째 딸아이는 어떻게든 시간만 때우면 되는 차원이지만, 한국에서 유치원에 다녔던 첫째에게는 ‘교육’적 차원의 배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 도착후 집렌트계약 및 전기 인터넷 등 유틸리티를 신청하고, 짬짬이 운전면허를 따다 보니 1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인천공항-시카고-랄리더램공항까지 거의 20여시간의 여정에 면역력이 약해진 두 아이가 눈 결막염과 후두염으로 병원 신세까지 지면서 가뜩이나 힘든 초기정착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큰아이 유치원 입학문제로 교육청을 며칠 오가면서 힘을 빼다보니, 출국후 2주일이 지나 어느새 8월 중순이 됐다.
이젠 프리스쿨의 비용문제를 떠나, 두아이가 동시에 등록할 곳을 찾는 게 급선무가 됐다. 이러다간 아무데도 맡길 곳이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였다. 와이프랑 하루 세 곳 이상씩 프리스쿨 순례를 시작했다. 거주지역인 채플힐을 비롯해 더램, 캐리, 여차하면 노스캐롤라이나 주도인 랄리까지 다 뒤져볼 생각이었다. 구글에서 프리스쿨 데이케어 등을 키워드로 검색한 후 다 돌아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며칠하다보니, 이게 시간낭비도 크거니와 만만찮은 돈이 들었다. 프리스쿨은 대부분 신청서를 접수하는데도 최소 몇십불의 어플리케이션피(application fee)를 낸다. 또 빈자리가 없으면 웨이팅피(waiting fee)를 내야 하는데, 이것도 몇 십불에서 많게는 몇 백불에 달한다. 빈자리가 없다보니(우리는 만으로 2살, 4살짜리 두곳을 동시에 찾는 바람에 빈자리가 더 없다), 쓸데없는 어플리케이션피와 웨이팅피 명목으로 돈을 뿌리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은 한국은 연수생은 물론 우리 애들 또래의 애만 보면 어느 프리스쿨을 다니는지 비용은 얼마인지 등 사전취재를 했다. 그러나 9월 신학기가 다가오는데도 입소문이 나고, 조금 싸다 싶은 곳은 이미 정원이 찼다. 거액의 웨이팅피와 어플리케이션피를 내고 무작정 빈자리가 생길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미국의 프리스쿨은 별 5개짜리로 분류되면 월 tuition이 1000불을 웃돈다. 600불, 800불 등 좀 저렴한 곳들도 있지만 이것 저것 따져보면 가격은 비슷해진다. 가령 1000불을 훌쩍 넘긴 곳은 종일반(오전 8시~오후5시)으로 운영하고, 월 600불짜리가 오전반(8시~12시)이라면 시간당 수업료는 후자가 더 비싼 셈이다. 종일반으로 운영하는 곳은 별도 비용없이 점심과 간식을 제공한다.
미국 프리스쿨은 호텔처럼 별 5개짜리,4개짜리,3개짜리 등으로 등급이 구별된다. 교육 프로그램이이나 시설 등에 따른 등급 구분이 아니라 식사를 제공하면 모두 별 5개짜리인 것으로 안다.
프리스쿨은 처음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프리스쿨에 한번 등록하면 개인적 이유로 휴학이 힘들다. 방학도 없다. 만약 개인적 이유로 다음달 tuition을 안내고 휴학을 하게 되면 등록이 철회되고, 나중에 재등록할 때 거액의 어플리케이션피와 웨이팅피를 내는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장기 여행을 자주하는 연수생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시스템이다. 일정 정원을 유지함으로써 프리스쿨이 정상운영되고, 들고나는 것을 최소화시켜 원생의 정서적 안정을 도모한다는 설명이었지만 나에겐 횡포처럼 비춰졌을 뿐이다. 좋은 프리스쿨일수록 빈자리가 나지 않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애들 프리스쿨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풀렸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은 직원 및 학생복지 등 차원으로 캠퍼스내에 자체 프리스쿨을 운영하고, 학교주변의 민간 교육기관들과 제휴 COOP Daycare center를 운영한다. 가령 내가 연수간 듀크대학은 제휴맺은 프리스쿨이 20개가 넘는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캠퍼스내 프리스쿨 등록을 희망했다. 출국전부터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비지팅스칼라(visiting scholar) 자녀의 입학자격여부 및 입학에 필요한 절차를 문의했다.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고, 빈자리가 생기면 곳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미국의 행정처리는 항상 이런 식이다.입학 자격이 없더라도 단박에 거절하지 않는다. 나중에 직접 프리스쿨 등을 담당하는 휴먼리소스(human resources) 담당자와 면담한 결과, 비지팅 스칼라 자녀는 캠퍼스내 프리스쿨 입학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주변 제휴맺은 프리스쿨을 소개시켜 줬지만, 2명을 한꺼번에 입학시킬 만한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듀크내 프리스쿨을 방문하게 됐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순례를 하다보니, 실수로 듀크캠퍼스내 프리스쿨을 찾게 된 것. 그냥 돌아설려다 와이프가 시설이 어떤지 둘러나 보자고 해서, 내친김에 등록을 위한 상담까지 했다. 마침 두 아이를 위한 빈자리가 있으며, 등록비 70달러와 함께 신청서를 작성해 내라고 했다. “웬 떡이냐” 싶어 그 다음날 바로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다음날 최종 등록여부를 알려주겠다는 담당자의 연락이 며칠째 없어, 찾아가니 듀크대 휴먼리소스 센터의 담당자가 퇴짜를 놨단다. 입학은 그의 허락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휴먼리소스센터 프리스쿨 담당자를 다시 만났다. 처음 등록 자격 운운했을 때는 듀크 교직원에 대한 우선권을 돌려서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빈자리가 있는데도 비지팅스칼라 자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생각됐다. 첫 면담과 달리 눈에 불을 켜고 등록을 위한 정확한 자격요건이 뭔지 물었다. 교직원과 일부 학생인데, payroll(급료지불명부)에 등재된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적지 않은 tuition을 내는데 왜 자격이 안되냐고 따지니, 대학에 돈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대상이라고 완곡하게 설명했다.(이 부분은 사실 자신이 없다. 오역했을 수도…)
비지팅스칼라 담당부서에 이미 자격여부를 문의, 결론을 내린 사안이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생각나는대로 항의를 했다. 듀크대학이 비지팅스칼라를 유치하면서 많은 혜택이 있는 것처럼 홍보했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에서 차별할 수 있으냐…비지팅 스칼라에 대한 듀크의 이 같은 차별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 등등.
이런 협박이 통했을리 없다. 하지만 담당자의 사무적인 태도가 좀 바뀐 것은 사실이다. 가격이 싼 것도 아닌데 왜 듀크내 프리스쿨에 굳이 등록할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둘을 한꺼번에 보낼 프리스쿨을 찾을 수가 없고, 더구나 듀크처럼 요일을 선택하는 시스템의 프리스쿨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더니, 그가 제휴 센터들에 직접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애들 보낸 프리스쿨을 찾아냈다. 듀크에 선불로 낸 70불의 어플리케이션피는 돌려받던지, 소개한 곳의 신청비를 면제받던지 양자택일하라고 했다. 그 곳의 신청비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1명당 230달러란다. 여튼, 듀크내 프리스쿨 등록에는 실패했지만, 한번 더 두드려본 덕에 적당한 프리스쿨을 찾았고 수백불에 달하는 어플리케이션피도 절약할 수 있었다.
이 프리스쿨에는 화,수,목 3일만 보낸다. 와이프와 상의끝에 애들과 주말을 활용해 길게 여행도 다니고, 비용도 줄이는 차원에서 3일만 보내기로 했다. 하루 6시간인데, 호텔체크인-아웃시스템처럼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중 편한 시간에 6시간동안 애들을 맡기면 된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이 시스템에 와이프의 불만이 쌓여 가는 중이다. 단순 탁아소처럼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와이프의 불만이 한계에 다달으면 또 다시 프리스쿨 쇼핑을 해야 한다. 참고로 지금 보내는 프리스쿨 비용은 하루 6시간씩 3일을 보내는 조건으로 두 애 합쳐 1000불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태권도와 축구 등 애프터스쿨 프로그램에 등록, 자칫 부족할 수 있는 미국애들과의 교류를 넓혀주고 있다. 또.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일주일에 4일씩을 휴일로 쓸 수 있어 맘껏 여행도 하고, 호텔등을 주말을 피해 예약하니 다소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애써 위안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