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어 날씨가 추워지면서 주말마다 집중했던 것이 박물관 탐방이었다. 어차피 야외 활동은 어려우니 이참에 아이들과 함께 워싱턴 D.C. 주변에 있는 유명 박물관 문을 모조리 두드려 보잔 거였다.
그 결과 미국에 오자마자 찾았던 국립미술관, 자연사박물관, 항공우주박물관 외에 관광객들의 선호도가 비교적 낮은 홀로코스트 박물관, 네이티브 아메리칸(인디언) 박물관, 아프리칸 아메리칸(흑인) 박물관, 아시아미술관, 육군박물관 등 각종 박물관을 겨울 동안 줄줄이 섭렵할 수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구글 지도에 무작정 ‘museum’을 입력하고 훑어가던 중 발견한 곳이 바로 국립총기박물관(National Firearms Museum)이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국립총기박물관은 놀랍게도 전미총기협회(NRA·National Rifle Association) 건물에 딸린 박물관으로 협회가 총기 문화 확산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었다. 미국 내 총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뉴스에 등장하는 바로 그 단체, 미국 최대의 총기 관련 입법 로비 단체라는 NRA 본부가 집 근처인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박물관은 건물 1층이었다. 협회 건물 뒤쪽에 있는 박물관 입구에서 벨을 누르면 직원이 문을 열어주는데 친절하게 관람 방향까지 설명해줬다. 박물관은 한 개 층이나 규모는 제법 컸다. 당연히 전시의 목적은 총기 전반과 총기 소유권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 증진이다. 전시관은 총기가 어떻게 미국 역사, 또 미국인의 삶과 함께했는지, 총이라는 물건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것인지를 역설하는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총기는 총 3,000정가량이라고 한다. 유명 인사들이 소지했던 총기, 각종 영화에 사용됐던 총기, 라이터나 주머니칼, 너클 등 특수한 형태로 제작된 총기 등이 각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총기 제작 방법, 총기와 미국사, 총과 사냥 등 주제별 전시도 여럿이라 전체를 다 돌아보는 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걔 중 가장 경악스러웠던 코너는 ‘소년의 방’이었다. 언뜻 보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소년의 방인데 야구 글러브, 만화책, 재킷 등이 널브러져 있는 방 곳곳에는 크고 작은 총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도 장난감이 아닌 진짜 총이! 거기에는 ‘미국 가정에 있는 소년의 방을 가상으로 꾸몄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총기 소유에 관한 미국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은 십분 이해하고 있지만 살상 무기가 가득한 소년의 방은 도무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수시로 총기 사고가 발생한다. 2022년 한해 총기 사망자는 4만 8,830명, 하루에 134명꼴로 유명을 달리했다. 연수 기간인 2024년 2월에도 미주리주에서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 우승 행진 도중 괴한이 총기를 난사해 2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총기 규제 여론이 잠시 일지만 NRA의 노력 탓인지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이번 대선에서도 공화당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기 소유권을 보호하겠다고 공약했다.
총기박물관에 함께 간 아들 녀석은 총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번쩍번쩍한 물건들을 보니 탐이 난다고 했다. 그런 심정은 아빠 손을 잡고 총기박물관을 방문하는 미국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한국 국적의 아들 녀석과는 달리 분명 머잖아 대부분 자신의 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총기 규제 논의가 앞으로도 계속 벌어지겠지만 NRA 역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니까.
*국립총기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nra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