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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알아서… 미국의 청소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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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중고등학생들은 참 자유로워 보입니다. 헐렁한 티셔츠에 엉덩이에 걸치는 청바지 입고, 배낭 메고 스케이트보드 타고 학교를 오가는 모습이, 마치 소풍 가는 아해들 같습니다. 머리를 무스로 삐쭉 세운 남학생들이나 키메라처럼 짙게 분칠한 여학생들을 볼 때면, 도대체 선생님들은 뭐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방과후에는 더 합니다. 교과목이라고 해봐야 체육을 포함해 달랑 여섯뿐이니 참으로 복 받은 셈인데도 학교 끝나면 공원에 모여 놀아제끼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나머지는 집으로 직행하는 아해들이구요. 매일이 토요일 같죠.

하긴 여기 환경 자체가 그럴 만도 합니다. 여기는 방과후 수업도 없고 학원도 없습니다. 교실은 등교시간이 돼야 열리고 하교시간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잠깁니다. 도서관도 마찬가지여서 학교에 남아서 뭘 한다거나 하는 건 상상을 못합니다. 선생님들도 4시 정도면 퇴근하고요. 복장이나 소지품 규정이 있기는 한데, 선생님들이 뭘 지적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숙제를 많이 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중학교가 좀 더 과제를 많이 요구하지만 우리에 비하면 별 거 아니죠. 모두 자신의 ‘시간’과 ‘자유’에 충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겉모습입니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여기서도 공부할 아해들은 공부합니다. 과외도 하고 특별 활동도 합니다. 학교에서도 모든 학생들이 들어야 하는 기본 과목(General Course) 외에 AP(Advanced Placement)라는 상급 과목을 잔뜩 만들어 놓고 공부할 학생들을 기다립니다. AP과목은, 함수가 기본이면 미적분이 AP인데, 원래 대학 학점을 미리 따도록 만든 Option이기 때문에 안 들어도 됩니다. 안 들어도 졸업도 하고 대학도 갈 수 있죠. 하지만 원칙상 그렇다는 것이고, 좋은 대학 가려면 안 들을 수 없습니다.

기본 과목만으로는 이들이 요구하는 입학 평점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기본 과목 시험을 통과해야 들을 수 있고, 수강하더라도 성적도 나쁘면 안 듣느니만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대신 많이 듣고 성적 좋으면 그만큼 기회가 커집니다. AP과목 많이 들었더니 명문 주립대 3학년으로 뽑아 주더라… 실제 상황입니다. 그래서 명문대가 목적인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준비를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방학도 반납하고 계절 학기에 올인합니다. 명문 사립이나 보딩 스쿨 학생들이 공부 많이 하고 잘 하는 이유죠.

뭔가 감이 잡히죠? 그렇습니다. 대학 갈 아해들과 아닌 친구들이 딱 구분된다는 거죠, 시스템 적으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미국 청소년 교육의 목표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건전한 민주 시민 양성’ 쯤 됩니다. 대학 진학이 우선이 아니라는 얘기죠. 하지만 외면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들어야 하는 기본 과목과, 실력이 돼야 수강할 수 있는 대학 진학용 AP 과목, 이렇게 이중으로 커리큘럼을 두고 있는 거죠. 그리고 본인과 부모에게 수시로 정보를 보내 결정을 종용합니다. 여기에는 학습 진도와 태도, 과제와 성적, SAT 일정 등이 망라됩니다.

한마디로, 학교는 양쪽 다 준비하고 있으니 알아서 결정하세요…인 겁니다.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학교 생활을 설계하라는 거죠. 어느 쪽이던 사실 이들에게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직까지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고등학교 졸업으로 끝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도 여기서는 큰 일 한 것으로 받아들여주고 축해해 주죠. 참고로, 미국의 교육 통계를 보면 고교 중퇴율은 30% 정도, 고졸 직후 대학 진학률은 34% 정도입니다.

‘스스로 결정한다’ … 그러고 보니 미국 청소년 교육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미국의 교육 제도는 사실 우리와 비슷합니다. 고등학교가 4년이기는 하지만 초중고를 다 합치면 12년이라던지, SAT와 에세이, 특별 활동 점수 등을 섞어 신입생을 뽑는다던지, 온라인으로 자녀의 학교생활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했다던지 하는 걸 보면 외형은 거의 같습니다. 자유주의 국가의 교육 시스템이 원래 비슷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동안 소위 미국 박사들이 베낄 만큼 베껴온 탓이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흡사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에서는 좀 많이 다른 듯 합니다. 이곳에서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처럼 교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받습니다. 자기 교실이 없다는 건데, 고등학교에는 심지어 담임 선생님도 없습니다. 학교 생활을 행정적으로 도와주는 카운셀러가 있을 뿐이지요. 조금씩 수업이 다르니 시간표도 각자 짜야하고 제출할 과제도 ‘알아서’ 챙겨야 합니다. 쉬는 시간이 5분, 점심시간도 30분 밖에 안되니 시간 관리도 잘 해야죠. 체육복 갈아입기에도 부족하니까요. 봉사나 클럽 활동도, 많이 했다, 이런 건 도움이 안됩니다. 리더십과 창의성이 드러나야죠. 선생님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도 ‘organizing’, 즉 개인의 학교 생활 매니지먼트입니다.

아, 두발이나 복장도 ‘자율’이지요. 사복 입혔더니 통제가 안되더라, 이런 생각은 아예 안합니다. 개인 선택권 침해라는 거죠. 책임지게 하면 되는데 그런 걸 왜 막나…이럽니다. 이런 태도는 입학 첫날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규정집부터 주거든요. 그리고 온오프로 반복 교육합니다. 그런 뒤 위반하면? 학교 경찰이 뜨고, 곧바로 징계 절차에 들어갑니다. 다 알려줬다, 이거죠. 더구나 강요된 그 교복값이 백만원이다, 이러면 뒤로 넘어갑니다. 기부금 마련을 위한 행사는 많지만, 가정에 경제적 부담을 직접 요구하는 일은 상상을 못하니까요. 차갑기는 하지만 분명하죠.

그렇다고 여기 제도나 관행이 다 좋은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선 주변에서 별로 챙기지 않으니 한번 뒤떨어지면 따라가기 어렵죠. 중요한 것만 가르쳐서 그런가, 대체로 기초 지식도 부족해 보입니다. 고등학생이면 어른 취급하니 일찍부터 음주음약(?)하거나, 결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돈 벌어야 하고, 중퇴가 양산되지요. 빈곤층 지역일수록 심해서, 30% 정도인 중퇴율이, 이것도 높습니다만, 50%로 껑충 뜁니다. 고교 중퇴자 120만명의 50% 이상이 전체의 12%인 2천개 학교에서 나올 정도로 편차가 큰 상황입니다.

이런 학력 차이는 부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계층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죠. 미국 정부가 ‘No Child Left Behin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균 학력 높이기, 졸업률 높이기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이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아, 그렇다고 미국 사회가 저학력인 것은 아닙니다. 2년제 이상 대졸자 비율이, 2005년 기준 미 통계국 자료로는25세 이상 인구의 36.2%, 2010년 OECD 발표로는 25세 이상 34세 미만 인구의 40.3%에 달하니까요. 대략 7천만 명 정도가 되겠네요. 참고로 OECD 자료에 우리나라는 56%로 돼 있습니다.

좀 샜습니다만, 암튼 그동안 국내 학자들이 많이 연구(?)해 왔다는데도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보완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다른 것 같구요. 일단 학업 자율성에서는 우리가 떨어지고, 학업 성취도에서는 미국이 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적어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중등 교육,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면 필요한 게 뭘까요? 우리 청소년 교육의 도약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 수많은 개혁과 개편을 거친 우리 교육이 빼먹은 게 과연 무엇일까요? 아, 그만하겠습니다. 또 개혁 얘기 나올까 두려워지네요.

*YTN 김진우 차장은 2010년 7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연수중입니다. 문의사항은 kimjinoo@ytn.co.kr로 연락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