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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에서 4) 잡탕찌개가 넘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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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두고 melting pot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잡탕재료들이 넘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일탈하지 않게 중심을 잃지 않는 법 말이죠.

스탠포드만 해도 Hoover 연구소와 제가 있는 Asia Pacific Research Center는 분위기가 완연히 다릅니다. 우선 이 두 연구소가 주최하는 세미나 참석자들의 면면이 그 차이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Hoover 연구소 세미나의 청중은 주로 6-70대 백인 노인분들이십니다.제가 그 분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다가 세미나가 시작됐어도 계속 밀려들어오시는 silver의 물결에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열의가 뜨겁습니다. 처음엔, 요즘같이 미국경제가 휘청거릴 때 과거 Hoover 대통령의 경제 부흥책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며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려는 노인분들의 관광코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질문의 수위를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모두 한때 hoover 연구소에 있었거나 관련 직책을 하다 은퇴를 하고 hoover에 affiliation·을 둔 보수적 지식인층들입니다. A/PARC은 그에 비하면 50이 넘으신 분들은 겸연쩍어 할 정도로 젊은 층이 주류지요. 두 연구소 모두 각각 똑같이 테러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그 선택한 용어들이 선명한 비교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Hoover 에서는 evil에 의해 당했다(발제자) 유학제도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청중 질문)는 내용이 나온 반면 A/PARC에서는 이슬람 일부 부족의 극단적인 과격함을 전체 이슬람인들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쪽으로 비중을 두었거든요. 한 대학에서 상반된 이데올로기가 공존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에선 어찌보면 당연할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 많은 인종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이름아래 녹아들게 하는

저 저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제가 보건대, 정직과 신용,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합리성에 있었습니다.



몇 달전에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퇴학을 당했습니다. 역사 시험 시간에 cheating을 했기 때문입니다. 큰 시험도 아니었습니다. 모두 합쳐 열문제도 안되는 간단한 쪽지시험이었으니까요. 당장 학교에서 위원회가 소집됐고 책상에 글자 하나 적어놓은 것이고 성적에 영향을 미칠 시험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처를 바란다는 학생의 장문의 청원은 단 한마디, ‘퇴학’조치로

간단하게 묵살됐습니다. 이곳 교육에서, 부정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Stanford 대학에서는 주차권을 두 가지로 팝니다.

캠퍼스 여기저기에 많이 퍼져있고 주요한 건물과 가까운 A lot은 일년에 오백여달러로,

천만평에 달하는 캠퍼스의 구석진 곳만 찾아 천덕꾸러기처럼 배치되어 있는 백여달러의

C lot에 비해 월등한 편리함을 자랑합니다. 그나마 C lot은 싼 맛에 많은 학생들이 구입하기 때문에 없는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오전 8시 반만 되도 치열한 주차 전쟁이 벌어집니다. 돈이 없으면 부지런하기라도 하라는 메시지를 이곳은 주차권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그 시각이 넘어 뒤늦게 도착한 학생들은 빈 공간을 찾아 빙빙 차를 몰고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다 정 안되면 10분당 25센트에 달하는 교내 유료 주차구역에 눈물을 머금고 동전을 집어넣기도 하고…. 더 시간이 급하면 A lot에 잠깐 실례하자는 유혹도 받을 수 있겠죠. 단속 경찰도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남의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유료구역에서도 꼬박꼬박 돈을 다 집어넣구요.

사실 경찰이 단속을 하긴 하는데 하루에 한 군데 정도만 합니다. 천만평에 흩어진 주차장을 어떻게 일일이 다 보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느슨한 단속 와중에도 한번 걸리면

벌금은 수백달러입니다. 신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관대한 사회의 규율을 어긴

참담한 죄값이죠.



평등보다는 자유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개인주의를 절묘하게 사회 공익에 맞아 떨어지게 한 점도

오늘날의 미국을 유지하는 힘입니다.

미국은 우측통행입니다. 그래서 복도를 지나다보면 모두들 오른쪽으로 걸어가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모든 오른쪽으로 붙어 왼쪽은 갈 길 급해 뛰어갈 사람을 위해 비워두죠.

쇼핑센터나 시장들의 좁은 골목에서도 별 접촉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이들이 항상 오른쪽 통행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가끔 방해자가 있긴 한데 2-4살짜리 갓 걷기 시작한 유아들입니다. 며칠 전에 수퍼마켓에서 한번 부딪칠 뻔 했는데 그 어머니인 듯한 백인여성이 제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더군요. 공적인 공간에서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부주의했다구요. 이들에게 공공장소에서의 질서는 몸에 배어있는 기본입니다. 레스토랑이나 조그만 스낵바에서도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소리를 크게 지르는 일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이면을 들추어보면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어서이기도 하겠죠. 공공 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이해에 반하는 일이 일어났을 경우 재판을 거는 것이 이곳에서는 낯 설은 일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자기 주머니에서 막대한 위로금을 물어주기 이전에, 알아서 공공질서를 지키자는 공감대가 서로에게 형성이 되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개인주의를 공공의 이익에 접목시킨 벤담이 다시 태어났다면 바로 자신의 철학이 지향했던 바라고 무릎을 칠 일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