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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리포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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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영어, 영어,



2000년 9월 27일, 드디어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미국 대학에서 받는 첫 수업에 설레기도 했습니다. 저널리즘 석사과정에 모두 13명이 등록을 했는데 외국학생은 3명이고 10명은 미국인입니다. 남자는 저를 포함해 SBS기자인 허윤석씨와 중국 신화통신에서 온 웬신, 그리고 미국인 크리스 등 4명뿐이고 나머지 9명은 여자입니다. 미국 언론인의 구성도 최근 여성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 대부분의 신문사는 여기자의 수가 절반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온 웬신은 고등학교를, 우리로 이야기하면 외국어학교를 다녔고 신화통신에서도 외신부에서 영어로 기사를 썼기 때문에 영어가 상당한 수준입니다. 반면 저나 허윤석씨는 그야말로 영어 때문에 무지하게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강의를 녹음하기도 했는데 저는 몇번하다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우선 녹음한 것을 수차례 반복해도 못알아듣는 부분이 쉽게 들리는 것도 아니고 수업의 대부분이 토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강의를 녹음한다는게 의미가 없습니다. 영어는 정말 괴롭습니다. 교수가 강의하는 것도 처음에는 거의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고 학생들 말은 너무 빠르고 정확히 발음하지를 않아서 정말 한두마디도 알아듣기 힘듭니다. 처음 한 두달은 수업시간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껌뻑거리다가 나오는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생기는 해프닝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저널리즘 세미나라고 현직 기자나 발행인 등을 초청해서 경험담을 듣는 수업이 있는데 이게 2주일에 한번씩 있습니다. 그런데 첫 수업시간에 그 말을 못알아들었습니다. 그 다음주에 제가 운전면허 실기시험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조금 늦어져서 수업시간에 늦을까봐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수업시간이 넘었는데도 저랑 허윤석씨만 강의실에 앉아있을 뿐 아무도 나타나질 않는 겁니다. 참으로 참담한 기분이더군요. 그 이후에도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여러 차례 황당한 일을 당했지만 자세한 언급은 삼가겠습니다.



*영어공부



미국에 와서 수업이라도 들으시려면 영어, 특히 회화공부는 착실하게 해 놓는게 좋습니다. 여기 역사학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는 한국에 있을 때 영화도 상당부분 알아들을 정도였는데 정작 여기 와서 첫해에는 강의를 알아듣지 못해 무지하게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그게 유학 첫 해 통과의례 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회화공부를 해놓는 게 아무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적응시간을 단축시키는데 훨씬 낳을 겁니다. 지금은 처음보다는 많이 낳아져서 귀는 조금씩 뚫리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말하는 게 안돼서 강의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서 한두마디 해보는데 상대방이 못알아 듣겠다고 다시 이야기 해달라고 말하면 그 다음부터는 창피를 당할 까봐 두렵기도 하고 주눅이 들어서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말이죠.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왠만한 지성인이라면 상대방이 영어를 못한다고 무시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실력을 늘리는 첩경입니다. 제가 이 짧은 영어로 팔로 알토 시장이나 지역언론사 발행인, 그리고 월세가 갑자기 치솟아 올라서 쫒겨나게 될 처지에 놓인 주민 등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인터뷰를 했지만 한 사람도 제 서투른 영어를 비웃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못알아 들으면 다시 말해달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전화인터뷰를 하다가 더러 제 영어에 짜증내는 사람들도 있긴 했습니다만 대부분은 친절하게 천천히 다시 이야기 해줍니다. 교수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수업시간이든 개인적인 대화이든 중요한 말인 것 같은데 제가 못알아 들었으면 반드시 다시 물어봅니다. 정 안되면 이메일이라도 보냅니다. 그게 여기서는 부끄러운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데만 3개월이 걸렸습니다.

스피킹에 대한 제 경험 하나만 이야기 하죠. 모두 영어를 너무 잘하니까 (미국사람이 영어 잘하는 건 당연한 거죠) 저도 덩달아서 잘 되지도 않는 영어를 빠르게 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 영어선생이나 다름 없는 클래스메이트(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들이 저한테 진지하게 충고를 하더군요. 천천히 정확히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절대로 빨리 말하지 말라고요. 영어도 자기 분수를 아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요즘에는 짧은 문장으로 정확하게 제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리스닝은 워낙 많은 방법이 알려져 있어서 제가 별달리 이야기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제 생각으로는 AFKN 이나 CNN 등 뉴스영어를 듣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같습니다. 저도 많이 해봤는데 강의를 듣거나 회화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요. 저는 매일 가능하면 빼먹지 않고 PBS Jim Lehrer의 NewsHour(http://www.pbs.org/newshour/)를 듣습니다. 뉴스토픽을 가지고 Pundits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을 Pundit이라고 합니다)가 출연해 토론을 벌이는 거죠. 절반쯤은 뉴스영어고 절반이상은 토론영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늘리는데는 물론이고 그때 그때 이슈가 무엇인지를 아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이 사이트가 좋은 점은 스크립트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스크립트는 10번이상 반복해도 안 들릴 때에만 봐야합니다. 스크립트가 없으면 답답하지만 스크립트에 의존하면 영어듣기는 “절대로” 늘지 않습니다.



다음 회에는 스탠포드대학의 수업과 교수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