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이 차도를 점령한 이유
워싱턴 DC에 와보니 ‘야외 천막 식당’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끕니다.
야외 천막 식당들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식당들이 인도가 아닌 ‘차도’에 야외 식당을 설치했기 떄문입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인도에 의자와 테이블을 깔아 놓고 야외영업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자신이 영업하는 식당 앞에 차선 하나를 막고 그 위에 임시로 천막을 설치해 야외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미국에서 시행 중인 ‘알 프레스코’(al fresco)’라는 정책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알 프레스코는 이탈리아어로 ‘신선한 공기’라는 뜻입니다. 코로나로 요식업소들이 타격을 입자워싱턴DC, 뉴욕, LA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이 식당의 야외 영업을 허용하는 ‘알 프레스코’ 프로그램을 가동했습니다. 이들 도시들은 알 프레스코가 코로나로 침체된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차도에 야외식당을 설치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고 차량의 운행이 줄었으니 그 공간을 활용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도로에나 야외 식당 영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야외에서 먹는 게 좋아도 자동차 매연과 소음 속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겁니다. 따라서 대로변에 위치한 대형 프렌차이즈 식당 보다는 하나 안쪽으로 들어와 주택가에 위치한 골목 상권의 소규모 음식점들이 ‘알 프레스코’ 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차도에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만든 야외식당들은 코로나에 지친 소비자들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제가 연수하는 기관은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입니다. 워싱턴DC 백악관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회전교차로인 로건써클(서쪽)과 듀퐁써클(동쪽)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로건써클 주위에는 남북으로 뻗은 14번 양쪽으로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미 동부의 햄버거를 상징하는 ‘쉐이크쉑 버거’를 비롯해 1958년에 생긴 벤스 칠리 보울까지 다양한 음식점들이 많습니다. 벤스 칠리는 워싱턴DC의 주요 관문인 레이건공항(DCA)에도 들어와 있으니 워싱턴DC 14번가까지 찾아갈 여유가 없으신 분들은 레이건 공항에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일반 메뉴에 1달러를 더 내면 양파와 치즈를 추가할 수 있는데 ‘강추’합니다.
역시 14번가에 위치한 슬립스트림(SLIPSTREAM)이란 커피샵도 워싱턴DC에서 꼭 맛보아 할 커피집에 꼽힐 정도로 유명합니다. 이 곳의 스페셜티는 다양한 종류의 카페라테라고 합니다. 저는 이곳의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를 좋아합니다. 쉐이크쉑은 야외 식당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벤스 칠리와 슬립스트림은 모두 야외 식당을 운영합니다. 아직까지는 날씨가 좋아서 인지 손님들도 실내보다는 실외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낮에는 14번가도 다소 한산합니다. 가을학기가 시작된 조지타운 인근 정도만 학생들로 붐빌 뿐 워싱턴 DC 전체가 다소 한가로운 편입니다.
저녁에는 풍경이 바뀝니다. 14번가도 활력을 되찾습니다. ‘알 프레스코’가 힘을 발휘합니다. 워싱턴DC 14번가에 위치한 르 디플로멧(Le Diplomate)이란 프렌치 레스토랑은 싱싱한 생굴, 스테이크 타르타르(한국 육회랑 비슷합니다) 등등 ‘맛집’으로 알려졌습니다. 얼마 전 바이든 조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더욱 유명해 졌네요. 르 디플로멧도 야외 천막 식당을 운영합니다. 이곳은 식당 내부는 물론이고 야외 식당까지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만석입니다.
워싱턴 DC 뿐 아니라 뉴욕, LA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이 ‘알 프레스코’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뉴욕은 코로나 변이가 위협하면서 대부분의 식당에서 백신을 접종했다는 증명이 있어야 실내 입장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백신을 맞기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나요? 야외 식당이 해결책을 제공합니다.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도 야외 식당에서는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LA는 차도를 점령한 야외식당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한 워싱턴DC나 뉴욕과 달리 LA도로는 여전히 차가 우선입니다. 식당도 차도에서 야외영업을 하기 보다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 주차장이나 인도에 대형 텐트를 설치하고 영업을 합니다.
그래도 식당업주들에게 ‘알 프레스코’는 가뭄의 단비 같습니다. 심지어 LA에서는 코로나와 관계없이 야외영업을 ‘영구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도 실내 쇼핑몰은 상당 수 매장들이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워싱턴DC의 대표 역인 유니온역사 안에도 공실로 텅 빈 공간이 다수 보입니다. DC에는 다양한 설치 미술들이 곳곳에 많은지라 유니온 역 안의 공간도 처음에는 실내 ‘설치 미술’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임차인’을 구한다는 표지가 붙어 있네요.
‘알 프레스코’에 대한 반대 의견도 상당합니다.
저도 야외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실내와는 다른 탁 트인 느낌이 들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DC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려 하니 차도를 막은 식당들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도로를 막아 놓은 야외 식당들로 인해 차와 자전거가 섞이면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은 자동차 운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고요. 주택가에 위치한 야외식당들은 소음으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크다고 합니다.
뉴욕은 그래도 자전거 도로를 확보한 상태에서 하나 건너 차도에 야외 식당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백신 수급이나 접종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의 ‘알 프레스코’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겁니다. 확진자가 늘고 있는 상황도 우려됩니다.
그러나 분명 ‘알 프레스코’는 미국 정책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생각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이라고 봤습니다. 이러한 이기심을 통제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통제’는 다른 구성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막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국가가 이기적으로 타고 난 개인을 이타적인 존재로 개선하려 하면 국가는 개인의 영혼까지도 지배하려 할 수 있기 떄문입니다. 정부가 언제까지 요식업자들에게 ‘이해’를 강요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