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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미 대선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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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A: “트럼프를 지지해요!”
기자: “이유는요?”
유권자A: “다 너무 좋아요(AWESOME)!”

유권자B: “이번엔 민주당 지지자라도 트럼프를 뽑을 걸요.”
기자: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유권자B: “저는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여기에 왔고 시민권을 얻었어요. 그때만 해도 이곳은 아주 살기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끔찍해요.”

사전 투표소 앞에서 YTN 미 대선 방송용 인터뷰를 한참 진행하다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라? 이곳은 캘리포니아가 아니었던가? ‘ 캘리포니아.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 538명 가운데 무려 10%, 54명의 선거인단이 분포돼 있어 대선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장 크지만, 최근 8차례 대선에서 계속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민주당 승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역이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서, 그것도 민주당세가 더 강하다는 도시 지역인데, 사전 투표소 두 곳에서 인터뷰에 응해준 10명 가운데,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이 단 1명이라니. 물론, 캘리포니아 자체가 워낙 넓어 특정 지역, 그것도 단 10명의 응답으로 여론을 일반화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막연하게 인식해온 여론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인터뷰를 통해서도 분명히 감지되고 있었다.

미 대선 승리자는 트럼프였다. 경합지로 분류됐던 지역을 이례적으로 싹쓸이하며 큰 격차로 차기 대통령이 됐다. 물론, 민주당 텃밭이라 불리는 캘리포니아 주는 전체 대선 결과와 달리 민주당 승리였다. 해리스 58.7%, 트럼프 38.1%로 해리스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 생활 석 달밖에 안된 풋내기도 감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말로 있었던 걸까. 캘리포니아도 과거와는 양상이 달랐다. 4년 전 캘리포니아에선 바이든이 트럼프를 63%대 34%로 눌렀다. 8년 전엔 클린턴이 트럼프를 31%p 격차로 눌렀다. 하지만 이번엔 20%p 격차. 공화당 트럼프라는 같은 상대였지만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트럼프 당선에 가장 놀란 건 언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주요 언론 대부분은 물론 미 언론의 조사를 토대로 보도하게 되는 한국 주요 언론 대부분이 투표 종료 시간까지도 전체 결과를 경합, 또는 해리스 박빙 승리로 예측해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선 종료와 함께 미국에서는 언론이 편파적이라는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다. 이미 미국에서도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은 팽배해 있다. 이 역시 빙산의 일각이지만, 인터뷰를 진행했던 10명 가운데 언론의 선거 보도가 공정하냐는 질문에는 10명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 선거 여론조사를 진행해봤던 나로서는 미 언론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선거 결과를 고작 몇 천 명 조사로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말이 안 되는 일일 수 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연합 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표본 수를 최대한 늘리고 사전 여론조사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정확도를 높이려는 시도를 물론 언론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하지만 표본을 늘려도 응답자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언론의 조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 변수는 더더욱 변동성이 커진다.

그러면, 의문이 생긴다. 맞지도 않고 이젠 사람들이 믿지도 않는 조사를 언론은 왜 하는 것일까. 여론조사는 선거일 이전에 사람들이 여론을 궁금해 하니, 대신 조사를 해서 정보를 제공한다 치자. 그럼 몇 시간만 지나면 나오는 선거 결과를 두고 출구조사는 왜 하는 것일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언론은 단순히 사람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선거 조사를 실시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 조사는 결과 예측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분석을 통해 유권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정치적 논의를 촉진시키는 취지도 있다. 출구조사는 단순히 선거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응답자의 연령별 성별 결과를 더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각 여론이 어떤 이유로 형성됐는지를 알아내도록 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학문적 분석도 이뤄지고 정치적 논의도 활발해진다, 선순환이 된다면 정치권에서는 더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해 올바른 정책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취지가 좋다 해도 신뢰가 뒷받침될 수 없다면 선거 조사는 갈등만 부추기게 된다. 특히 여론마저 지지 진영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뉘어 대치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신뢰를 또 다시 잃게 된 미 대선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신뢰성 있는 선거 조사’의 방법론을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