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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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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마지막 뉴스레터를 씁니다. 요즘 포치(테라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이제 두어 달 뒤면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를 풍경을 마음 속 카메라로 사진 찍듯이 담아 둡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20여 미터가 넘는 키 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마냥 좋습니다. 그다지 부촌도 아닌(사실
좀 가난한 편인) 평범한 타운하우스에 이렇게 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걸 보면 미국인들이야말
로 자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숲 속에 마을을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나무가 집집마다 울타리 구실을 하는 겁니다. 타운하우스가 아닌 단독주택 단지는 정
말 숲 속에 집이 있는 것 같더군요.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키 큰 나무가 쓰러져 집을 덮쳤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합니다.


지난해 7월 애틀란타 공항에 도착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할 때 본 첫 풍경도 숲이었습니다. 울
창한 나무들이 고속도로 옆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운전기사 말로는 숲 속에 길을 내서 그렇
다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도 다른 도로를 보기 어렵게 돼 있습니다. 도로 사이
가 다 숲이니까요.


CNN 기자 출신의 조지아대(UGA) 교수(저널리즘)가 “미국 와서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묻기에 “울창한
숲과 쾌적한 공기”라고 말하니 그가 너털웃음을 짓더군요. 제게는 그 웃음이 “겨우 그거뿐이냐”는
얘기처럼 들렸습니다만 지금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 해도 같은 답변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프라하 음악원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미국에 온 안토닌 드보르작도 미국의 역동적인 도시 뿐 아니라 광활
한 자연에 감명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그 결과물입니다. 특히 4악
장에서 목관악기들이 뿜어내는 낙천적인 선율은 밝고 힘찬 당시 미국의 분위기를 기품있게 묘사하고 있습
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명 ‘빵빠레’로 알려져 행사 음악으로 널리 쓰이기도 하죠. 브람스의 후계자로
유럽에서 잘 나가던 드보르작이 뉴욕 행을 결심한 것은 미국이 제시한 파격적인 스카우트 조건 때문이었
습니다. 프라하 음악원 작곡과 교수의 세 배가 넘는 월급에다 1년에 열 번 연주회를 지휘할 수 있게 해주
고, 휴가를 4개월이나 줬다고 합니다. 유럽인들로부터 문화적 후진국이라고 조롱받던 미국인들은 이렇게
과감한 투자를 통해 이내 후발주자의 서러움을 떨치고 새로운 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릅니다. 자연의 일부
인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자연이 필요하듯이, 예술 또한 필수적이라는 걸 미국인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물론 미국이 모두에게 낙원인 것은 아닙니다. 사회안전망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후진국이나 다름없습니다. 특히 병원비가 비싸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며칠 전에도 한 80대
할아버지가 병원비와 약값을 댈 수가 없다며 병든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자국인들의 쾌적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출입국 장벽을 쳐놓은 나라이
기도 합니다. 미국 공항을 드나들 때마다 느끼는 불쾌한 감정은 비단 동양인들만 느끼는 게 아니더군요.
지난 봄, 유럽에 다녀오는 길에 시카고 공항에서 만난 영국 출신의 스웨덴 교수는 미국의 입국심사 과정
을 “What the hell!”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입국 심사에만 2시간을 기다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미국
에 1년에 한 번씩 와서 강의한다는 그는 “올 때마다 이런 일을 겪는다”며 사람들이 줄을 서든 말든 한
사람 한 사람 할 말 다 하고 농담 따먹기까지 하는 직원들의 태평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평하던 그 사람도 입국 심사대 앞에서는 밝게 웃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더군요. 비행기까지 놓치고 여행
일정이 하루 늘어나게 되었는데도 말이죠. 미국 입국 심사대 앞에서는 누구나 조금씩 비굴해질 수밖에 없
나 봅니다. 입국 스탬프를 쥔 저 손이 갖고 있는 무언의 권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거죠. 비자 인터뷰
부터 공항 입국까지 미국에 들어오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절차에서 미국의 갑질을 느꼈다고 하면 지나
친 과장일까요.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미국 시민권자나 캐나다 여권 소지자는 외국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모든
매스컴이 난리가 났을 겁니다. 돈 쓰러 오는 관광객 다 쫓아낼 작정이냐구요. 미국은 제 1 세계의 중심
답게 그런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너희들이 필요해서 오는 것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식
입니다. 요즘엔 공항 대기가 하도 길어지다보니 미국 언론들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만, 내국인과 외
국인의 대기 시간에 현격한 차이가 나는 문제에 대해 다루는 기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자국민 우선 정책은 워낙 유난스럽습니다. 베트남전을 다룬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저 유명한
마지막 장면, 미군 헬기가 마지막 남은 미국 시민권자들을 태워 베트남을 탈출하는 장면은 성조기가 휘
날리는 한 세계 어디서든 미국인은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살아있는 신화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이런 정신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를 만들어낸 바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유럽의 절대권력에 염증을 느껴 신세계로 망명한 미국의 설계자들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보다 소중하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었던 자유롭고 평등
한 민주주의의 표본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바탕에 이런 숭고한 사상이 자리 잡고 있는 거죠. 그런데 미
국이 국제적 권력을 갖게 되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숭고한 민본주의가 쇼비니즘으로 변질되기 시작합
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을 국가 이기주의라고 표현할 때(사실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요) 가장 우선시하는 이익
이 값싼 석유의 확보라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공지의 사실입니다. 시드니 폴락 감독의 1975년작
<콘돌>(원제: Three days of Condor)이 폭로했던 내용이기도 하죠. 훗날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같은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이런 영화를, 그것도 1970년대에 만들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미국의 위정자들 처지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갑니다. 광활한 대지를 연결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교통수
단이 자동차였고, 자동차를 굴리려면 무엇보다 석유 값을 싸게 유지해야 했던 거죠. 지금은 셰일 석유
를 비롯해 가격 인하의 다른 요인들이 생겨났지만, 어쨌든 미국은 석유 값이 무척 싼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나 유럽에 비하면 거의 절반 가격밖에 안됩니다. 이밖에 미국 물가 중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은 소
고기, 맥주, 옷, 신발 등입니다. 물론 집값도 싸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와 교통, 그리
고 긴장을 푸는 데 필요한 술값을 저렴하게 유지합니다. 서민 대중의 최소한의 부담을 줄이는 게 체제
안정의 필수 요소라는 걸 미국 위정자들은 잘 알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미국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15위(유엔 ‘2015년 세계 행복 보고서’)로 높은 편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이나 몇몇 이례적인 나라들을 제외하면 수위권에 해당합니다. 자기 나라가 워낙 넓으니
해외 여행도 잘 가지 않습니다. 여권이 있는 미국인이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국수주의의 토양
이 잘 갖춰진 셈입니다. 911 테러 당시 <뉴욕타임스>조차 전쟁 분위기에 휩쓸린 걸 보면 잘 알 수 있
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자국 이익에 필요할 경우 언제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입니다. 세계 최대
군수국가로서 무기를 팔아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이익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죠.


신참 기자 시절에 ‘대한민국의 친미파들’이라는 주제의 기사를 기획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공
부하고 돌아와 요직에 앉아서 한국의 미국화를 추구하는 인맥을 추적해 보자는 기획이었는데, 당연하게
도(!) 기사는 기획단계에서 중단됐습니다. 기획의도가 너무 방대한 데다, 카테고리를 특정하기도 어려
웠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문제의식은,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 이승만 대통령 이후, 한국사회를 이끌어가
는 세력이 지나치게 미국에 경도 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양극화 문제를 적극 제기했던 기자로서 당시
저는, 선진국 가운데 심각한 양극화 문제를 안고 있는 미국이 우리의 롤모델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
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미국과 한국은 갖고 있는 ‘본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이 부분은 굳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지정학적 요인이나 자원, 인구, 경제력 등으로 볼
때 우리가 따라야 할 사회 모델은 미국보다는 유럽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중국의 부상으로 강대국들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마당에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좇다가는 구한
말의 자중지란을 반복할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북한 뒤에 소련이 있었듯이, 남한 뒤에 미국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소련이 망한 뒤 중국마저 멀어지면서 북한은 지금 고립
무원의 상태입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은 북한이 국제사회로 스스로 걸어
나오도록 길을 터주는 것입니다.(디테일은 생략하겠습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한반도의 통일
을 원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남한을 핵우산 아래 묶어두고 북한과 적절히 긴장상태에 있는 게 여러모로
(중국 견제, 무기 판매 등) 유리합니다. 중국은 미국과의 사이에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두는 게 더 안
전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더구나 북한은 지금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중국의 속국처럼 되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반도가 커지고 강력해지는 걸 두려워하는 일본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런 반통일적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컨대 미국
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전략에 편승하는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은 아니라는 사실은 직시해야 합니다. 미국
은 철저히 자국 이익 위주로 움직이는 상식적인 나라니까요. 미국이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했을까요. 거꾸로 말해서 자국 이익에 도
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외면
해서는 안될 겁니다.
 
미국에 살아본 소회를 적어보겠다고 시작한 글이 너무 무거워졌네요. 해방 이후 한국인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우리나라의 앞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일종의 직무유
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슴 밑바닥에 있었나봅니다. 미국을 설계한 건국의 아버지들의 눈으로 통일
된 한국의 미래상을 그려보면 대충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미국 헌법 전문에 그 힌트가 나와 있습니다.
좀 길더라도 인용해 보겠습니다.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establish Justice,
insure domestic Tranquility, provide for the common defence, promote the general Welfare, and
secure the Blessings of Liberty to ourselves and our Posterity, do ordain and establish this
Constitution fo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대문자로 쓰인 모든 대의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완전한 통일’입니다. 이어서 정의와 평화,
국방과 복지, 그리고 자유와 번영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라고 이처럼 소박한, 하지만 위대한 꿈을 꾸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