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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통신2 [곰같은 기업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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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연수중인 우병현기자입니다. 첫 소식을 띄운 뒤 한참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 9월 11일 발생한 미국 테러사건은 21세기 초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미국 각지에 흩어져 연수중인 LG상남 연수 언론인들도 직-간접적으로 이번 사태영향 아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시기에 연수중인 언론인들은 역사적인 사건이후 미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진 셈입니다. 저는 미국 서부지역에 위치해 있어 직접 피해지역인 동부의 분위기를 체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이번 사건이 미국인의 일상생활에서부터 공동체 전체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다른 지역 연수자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중복되는 것을 피하면서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주제를 갖고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경제 지향적인 실리콘 밸리의 최대 관심은 역시 테러가 미치는 경제 및 투자환경의 변화입니다. 테러사건 이전까지 논쟁의 초점은 하이테크 산업 버블이 미국 경제 전체의 불경기를 가져올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테러사건이후에는 그런 논쟁을 떠나 경기후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테러사건이 경기논쟁에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은 셈입니다.



실리콘 밸리는 테러 사건이후 장기간 침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긴 동면에 대비하는 모습을 확연히 보이고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젓줄인 벤처 캐피털리스트(VC)들은 “겨울을 견뎌내는 곰 같은 기업에게만 투자하겠다”면서 한파에 대비하고 있고, 신생 기업(Start-ups)들은 미래의 가치를 강조하기 보다 당장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는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앞으로 3-5년 정도 잠복기를 거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됐던 고속성장의 신화는 당분간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익사이트앳홈, 엑소더스 등 한때 신 경제를 주도하는 스타 기업으로 각광을 받았던 기업들이 잇따라 몰락하면서 실리콘밸리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최근 실리콘 밸리에서 ‘하이테크 산업의 위기관리 능력’을 주제로 삼은 행사가 곳곳에서 열립니다. 한 예로 인큐베이팅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가라지닷컴(garage.com)은 10월말 ‘Tough Market Tactics’를 주제로 부트캠프를 열 계획입니다.

가트너그룹이 플리리다에서 주최한 세미나의 주제도 ‘하이테크 산업이 테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강기 경제에서 기술산업의 도전전략은’ 등과 같이 생존전략에 집중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실리콘 밸리를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이테크 산업 문화와 시스템이 테러사건의 영향아래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올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쯤에는 실리콘 밸리의 새로운 모습이 조금씩 드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리콘 밸리 중심 세력들이 앞으로 하이테크 경제를 어떻게 재편해나가는가를 잘 지켜보는 것은 한국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실리콘 밸리 주류들은 이번 위기를 실리콘 밸리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것으로는 보지는 않습니다. 1980년대에도 이미 PC산업과 관련해 거품을 경험했었고, 또 앞으로 하이테크 도전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도 테러 사건여파로 보안이나 인증 관련 산업이나 기업들이 관심을 모으고 주가가 오른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실리콘 밸리내에서는 중심 흐름이 아닙니다. 실리콘 밸리의 역사는 ‘창조적 파괴’ 또는 ‘반항적 해커’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보안산업은 어떤 시기, 어떤 사회에서나 사회 시스템 운영에 따른 불가피한 지출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안산업이 산업 자체의 틀을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실리콘 밸리 내 곳곳에서 겨울 곰처럼 새로운 봄을 기다리며 체력을 축적하고 있는 벤처 기업들은 기존 시장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원합니다. 그래야 억만장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