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사태와 관련해 제가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미국 언론의 첨단 보도 기법과 ‘정보생활의 균형성'(Balance of Media)이라는 주제입니다. 특히 미국 주요 언론들의 디지털 미디어 기술 활용 전략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건이 발생한 날 주요 소식을 인터넷에 의존했습니다. 한국에서 TV를 가져오지 않은 탓에 사건 자체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회사 후배의 전화를 받고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후 급히 TV를 구입하여, TV 신문 인터넷 등 3개 매체를 주요 정보원으로 삼아 관련 뉴스를 추적했습니다.
한국에서 TV를 가장 적게 보는 직업중의 하나가 아마 신문기자일 것입니다. 취재생활 리듬에 맞추다 보면 취재에 필요한 생중계나 당직 근무용 TV모니터이 외에는 TV앞에 앉을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테러사건을 계기로 TV를 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미국 방송사들은 매일 테러사건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현지 특파원에게 위성비디오폰을 지급하여 화상전화로 특파원을 불러내 현장소식을 듣는 기법도 등장했습니다. 걸프전에서 SNG(위성을 통한 뉴스생중계)가 화제로 떠올랐던 점이 상기됐습니다.
그동안 신문과 인터넷에 편중됐던 정보 생활이 TV, 신문, 인터넷, 잡지, 라디오 등 다양한 미디어로 분산되면서 ‘독자’로서 새로운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 주요 언론들은 그 동안 축적된 온라인 보도기법을 이번 사태 보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인터넷 붐속에서 축적된 각종 첨단 기법이 대형 사건을 계기로 본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CNN, MSNBC,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사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속보, 심층보도, 멀티미디어활용보도, 여론조성 등 다양한 정보매개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그래픽기법을 이용하여 4대의 비행기경로를 상세히 보여줬으며, CNN은 월드트레이드센터 폭파장면을 단독 입수하여 비디오클립으로 제공했습니다.
이들 언론사들은 또 텍스트, 비디오, 디지털 사진, 그래픽 등 다양한 정보표현수단을 총 동원하여 이번 사건을 입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또 성금모금 등 미국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중심 매개체로서 인터넷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눈에 보기에 신기할 정도로 미국 언론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독자으로는 미국 언론의 일사분란함을 이끌어가는 요소를 전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흐름를 잘 살펴보면 TV, 신문, 인터넷 등 각기 다른 미디어 영역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조화를 완성하는 접착제로서 디지털 미디어기술이 기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피터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조사기관은 테러사태이후 주요 뉴스사이트의 정보 이용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방식의 미디어측정은 미디어 시스템의 변화를 잘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인터넷 정보량이 늘었느냐, 그리고 인터넷 TV나 신문의 독자를 앗아가느냐 등과 같은 질문은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이 기존 미디어를 어떻게 보완하고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느냐는 관점이 부각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미국의 첨단 보도기법을 접하고 그 신속함과 정교함에 놀라면서도 인터넷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테러 사건보도를 통해 의외로 인터넷이란 매체는 제한된 ‘정보창(Information Window)’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 점은 앞으로 제가 검증하고 연구해야 할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구심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있을 때보다 TV를 통한 정보입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더욱 또렷하게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
신문-인터넷-TV를 축으로 하여 시간, 주제, 목적 등에 따라 정보를 섭취하면서 인간의 정보생활은 항상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3개 미디어 영역은 각기 고유의 장점을 지니고 있고, 또 3개 영역이 지닌 한계와 단점을 잘 보완하고 있습니다. 정보 이용자 역시 3개 영역(여기에 라디오방송 영역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을 정보 이용목적이나 정보환경에 따라 적절히 활용할 때 비로소 기본 정보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미디어시스템은 3개영역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며, 가까운 미래의 미디어 형태도 그런 시스템을 추구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런데 제가 현 시점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 점은 인터넷이 지니고 있는 미디어로서 한계와 단점입니다. 인터넷 예찬론자인 제게는 큰 변화입니다.
1990년대 중반이후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보편성을 비롯하여 확장성, 비동기성, 풀뿌리 성격 등 장점에 환호하고 이상적인 미디어로 추켜세웠습니다.
또 다른 한편에선1990년대 후반 인터넷 산업의 거품붕괴를 경험하면서 인터넷 미디어의 산업적 한계에 실망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영향력이 증대하면 할수록 수익구조는 악화되는 이중성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점 때문에 인터넷 미디어를 ‘돈먹는 하마’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인터넷이 미디어로서 지닌 본질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과학적인 고찰입니다. 지난 5-6년동안 이뤄진 온갖 실험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경험을 충분히 한 만큼 이쯤에서 인터넷의 진짜 모습을 찾아내야 합니다. 연수를 통해 이 관점에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생각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다른 연수기에 비해 실전 연수정보와 현장 정보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연수기에선 미국 서부지역 연수와 관련한 실전 정보를 전하겠습니다.
해외연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