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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통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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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IT조선팀의 우병현 기자는 실리콘밸리의 인터넷 닷컴사 외 현지에서 “정보통신 전문 미디어 보도 시스템”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연수중인 조선일보 우병현기자입니다. 8월 7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약 한달 가량 새로운 환경과 좌충우돌하면서 적응기간을 거친 뒤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늘 새로움을 접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는 또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린 이후 기본 생활 틀을 갖추기 까지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 중에는 남들이 알까 봐 창피해서 말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도 있습니다.

제가 자리잡은 곳은 샌프란시스코와 산 호세 중간쯤 되는 포스터 시티(Fsoter City)입니다. 염전지대를 주택도시로 개발한 곳으로 샌프란시스코 만에 접해 있습니다. 제 집앞에 요즘 정보통신 불경기속에서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CRM회사 시벨이 자리잡고 있고, 또 검색엔진의 대명사 잉크토미사 새 본사 건물이 한창 공사중입니다.

아파트에 입주한 첫날 제 딸의 일성(一聲)이 “아빠 여기 미국 맞아요”였습니다. 아파트 곳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시벨과 오라클에 다니는 인도인과 중국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월말부터 아파트를 떠나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면서 실리콘 밸리 불경기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실리콘 밸리에 도착하여 처음 접한 소식은 하이테크 또는 정보통신 전문 언론사들의 몰락이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또 정보통신분야 담당 기자로서 그 전후 사정이 궁금했습니다.



뉴 이코노미(New Economy) 지향 미디어들의 도전과 시련



1990년대 후반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 밸리를 무대로 등장했던 정보통신 전문 미디어들에게 올해 여름을 시련의 계절이었습니다. 올 후반기는 이들 미디어사들에게 더욱 가혹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생존하느냐 사라지느냐라는 절대절명의 과제가 그들 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더 인더스트리 스탠더드(The Industry Standard)는 8월 마지막주부터 출판을 중단했습니다.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하이테크전문잡지사 레드 헤링(Red Herring)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새 주인을 찾기 위해 물밑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 업사이드(Upside) 와이어드(Wired) 등 나머지 신 경제 지향 잡지사들도 광고수익격감을 타개할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경제 지향 잡지의 간판스타였던 비즈니스2.0(Business2.0)을 인수한 이컴퍼니 나우(eCompany Now)는 이번 달부터 ‘비즈니스2.0’ 이란 제호아래 이컴퍼니 조직과 비즈니스2.0조직을 통합하여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이 잡지는 AOL타임워너사를 대주주로 삼고 있어 다른 신생 미디어에 비해 자금력면에서 우위를 갖고 있으나, 신경제 지향 미디어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속에서 과연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시 됩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과 나스닥 붐을 계기로 등장했던 이들 신생 미디어들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소개, 하이테크 기업 정보, 나스닥 투자정보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새로운 독자와 광고시장을 개척했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포춘, 포브스, 비즈니스위크 등 기존 경제 미디어와 차별성을 보이면서 이른바 ‘신경제 잡지(The New Economy Media)’로 불렸습니다.

특히 신생 미디어들은 인터넷 붐을 타고 속속 등장한 이른바 닷컴 기업을 중심으로 인터넷 솔루션회사, 온라인마케팅회사, 온라인광고회사 등 연관 산업을 주요 광고주로 삼으면서 2-3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 신생 미디어의 몰락 또는 시련을 인터넷 경제의 성장과 쇠락곡선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요 광고주들인 닷컴 기업의 거품이 빠지면서, 이들에 의존하는 신생 미디어들도 연쇄적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생 미디어의 위기를 단순히 정보통신관련 경제 침체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레드 헤링 와이어드 패스트컴퍼니 등은 인터넷 붐이 본격적으로 불기 전에 창간된 미디어로 꽤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존립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광고시장의 변화외에 다른 미디어 경영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신경제를 지향하는 신생 미디어들이 왜 고속 질주하다가, 한 순간에 위기에 처했는가를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아직도 관련 정보가 충분치 않습니다. 또 아직도 위기가 계속되고 있어 이들 미디어가 어떻게 타개해나갈지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산호세 머큐리는 스탠더드지 정간과 관련해 패트리카 설리번(Patrica Sullivan) 스탠더드 온라인 뉴스 편집 간부의 글을 소개했습니다. 지난 5월 스탠더드의 위기속에서 명예퇴직를 선택했던 설리번은 스탠더드지의 최근 정간소식에 접한 뒤, 자신이 경험했던 스탠더드 내부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았습니다.(설리번 기고문의 원문은 몬타나 저널리즘 리뷰에 게재된 Online Reality Check입니다.)

산호세 머큐리에서 온라인 뉴스 편집 출신인 설리번은 먼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스탠더드지로 옮겼을 때 흥분을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이어 스탠더드가 고속 질주하는 사이,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 직원들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 브레이크 없는 규모확대 등 스탠더드 내부에서 벌어졌던 각종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설리번에 따르면 스탠더드지는 고속성장기간동안 샴페인을 즐기는 데만 몰두했을 뿐, 다가올 위기를 어떻게 관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로지 ‘현재’를 즐겼을 뿐 ‘미래’에 대비하지 않는 내부 분위기를 설리번은 기고문 곳곳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설리번은 지난 스탠더드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저널리즘’의 실종을 떠올렸습니다. 자신도 스탠더드가 제공한 안락함을 즐겼지만, 돌이켜보면 진정한 저널리즘의 사명을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의 자세가 엿보입니다. 또 하이테크 산업현장을 알리고, 새로운 경제 흐름을 짚어내 세상에 널리 알리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사람들이 도외시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설리번의 글을 통해 미디어산업은 몇몇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신생 미디어이든, 기존 미디어든 경영진의 위기 관리 능력이 미디어 사활에 가장 큰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영진은 확장 시기 판단을 비롯해, 위기 관리를 위해 자금운영과 인력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집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조그마한 위기 앞에서도 무너질 것입니다.

둘째, 미디어산업과 저널리즘의 경계선에 관한 것입니다. 인터넷 빅뱅 이후 미디어산업을 하이테크 벤처 산업 못지 않게 매력 있는 투자대상으로 여기는 풍토가 널리 퍼졌습니다. 이에 따라 신생 미디어사들은 너도 나도 기업공개를 목표로 삼았으며, 그 목표를 위해 외향을 키우고 선전하는데 엄청난 돈을 사용했습니다.

미디어업체는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해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엄연히 사기업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하는 미디어산업이 다른 하이테크 산업처럼 황금알을 낳는 투자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미디어 산업은 어디까지나 제한된 독자와 광고시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현실 경제 능력을 상회하는 시장은 거품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새로운 산업 표준을 제정하여 새로운 시장을 일거에 장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이테크 산업과 같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산업 선도성을 지니기 어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미디어 산업은 안정된 독자와 광고주를 획득하는데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으며 이 원칙은 신 경제 지향 신생 미디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보통신산업 성장을 계기로 인류가 맞고 있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은 상식과 보편적인 역사인식아래 세상의 흐름을 보고 들어 이를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인터넷 경제의 거품시비에 상관없이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현상입니다. 우리는 1990년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또 앞으로 하이테크는 인류의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 관점에서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역사에 기록할 놓고 깊이 연구하고 또한 새로운 저널리즘 전통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제는 전문지식 습득에서부터 새로운 직업 윤리문제까지 포괄적인 것들입니다.

/펜맨@실리콘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