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이용 시 유의할 점
미국 사람들 운동 좋아하죠. 그래서 동네마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헬스센터나 체육관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제가 사는 지역에는 YMCA가 각종 체육시설뿐 아니라 초등학생들 애프터 스쿨 프로그램까지 잘 운용하고 있어 여러모로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를 즐겨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우나 시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 적당히 샤워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나름 사우나에서 지지고 온탕에 몸 담그는 걸 의외로 좋아하더군요. 물론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기는 하지만요. 미국에서 생각지도 않은 사우나 시설을 발견해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곳을 처음 찾은 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경험해서 한 줄 적습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제가 있는 채플힐 YMCA의 사우나는 안전문제로 어린이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남성 샤워장을 통해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입구 데스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사우나 전용 문 열쇠를 받아 열어야 합니다. 아래 사진은 사우나 입구에 적힌 문구입니다.
영어 좀 하시는 분들은 앞으로 제가 무슨 얘길 하려는 줄 눈치 채셨을 겁니다.
첫날 기쁜 마음으로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넓은 온탕이 있고 두 개의 건식, 습식 두 개의 사우나가 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분 좋게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빼기 시작했는데 한 10분쯤 지나니 웬 미국 중년 남성이 들어오더군요. 그런데 이 사람이 수영복을 입고 들어오는 겁니다. 속으로 웃었죠. ‘풋, 웬 사우나에 수영복?’ 뭐 샤워장이 수영장하고 연결돼 있는지라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또 다른 남성이 들어오는데 이 친구도 역시 수영복을 입고 있는 겁니다. ‘바보가 또 하나 있군’하고 또 속으로 키득 거렸죠. 몇 달 만에 해보는 사우나라 오래 버티다 보니 30분 가까이 흘렀습니다. 적당히 나가려고 일어서려는 순간 문이 열리는데 ‘오 마이 갓!!!’ 웬 동양인 중년 부부가 들어오는 겁니다. 물론 두 명 모두 수영복을 입었죠. 즉 사우나 시설은 남녀 공용이었던 겁니다.
샤워시설은 남자 여자로 나뉘어져 있지만 서로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공동 사우나로 같이 연결되는 그런 구조입니다. 순간적으로 다시 자리에 앉아 목에 둘렀던 수건으로 급히 무릎 위를 가렸죠.(지금도 ‘그때 그 수건이 없었으면 어찌 됐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일단 급한 부분은 해결했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이 중년 부부가 한국 분들이셨습니다. 제가 사는 채플힐이라는 동네가 빤하게 작은 동네인데 만약 ‘한국 사람이 사우나에 벌거벗고 들어왔더라. 그 친구 어떤 방송사의 기자더라’라는 소문이라도 나면 하루면 온 동네에 다 퍼질 거고 그러면 창피해서라도 짐 싸서 귀국해야 할 판이니까요. 일단 눈을 안 마주치려 머리를 푹 숙이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수건으로 어떻게든 가렸는데 허리에 두르기에는 너무 짧고 작아 일어설 수가 없는 상태였구요. 이미 30분이 지나 숨이 턱턱 막히는데 나갈 수는 없고 속으로 ‘조금만 더 버티자. 그러면 할머님이 나가실 거야. 그리고 하나님, 제발 이 할머니 좀 빨리 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정말 절실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다 나가고 심지어 남편분도 나갔는데 이 할머니 꼼짝을 안하고 아예 드러누우시는 겁니다. 너무 더워서 현기증이 나고 하늘이 노래지는데 ‘죽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할머니가 들어온 지 30분, 그러니까 저는 한 시간 동안 사우나에 있었던 셈이죠. 이쯤 되니 기도의 내용도 바뀌었습니다. ‘하나님, 이 할머니가 안 나가도 좋으니까 제발 다른 여자만 들어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면 저는 정말 죽습니다.’ 사우나 좀 해보신 분들 아실 겁니다. 둘이 있으면 은근히 승부욕이 생겨 서로 먼저 나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그때가 딱 그런 상태였습니다. 한 십 분쯤 더 지나자 할머님이 저를 쓰윽 보시더니 드디어 나가셨습니다. 그 다음에야 저는 한 시간 십 분 동안 땀을 있는 대로 다 뽑아내고 파삭파삭 해진 상태로 초죽음이 돼 기다시피 사우나를 나왔죠.
다시 한 번 문구를 살펴볼까요. co-ed라는 단어 보이시죠. 이게 남녀 공용이라는 뜻이네요. 즉 ‘사우나는 남녀공용 시설이고 18세 이상 사용해라’ 그런 뜻인데 18세 이상만 보였지 남녀공용이라는 단어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 겁니다. 아는 것만 해석하고 당당하게 벌거벗고 들어간 거죠. 남자가 man 여자가 woman인거 잘 압니다. 물론 화장실 가면 gentleman이 남자고 lady가 여자인 것도 알죠. 게다가 성별 따질 때 male이 남자 female이 여자인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co-ed가 남녀공용이라는 거……몰랐습니다.
미국 와서 느낀 것 중 하나가 미국 사람들 참 공공장소에서 자기 몸 드러내는데 익숙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낮에 길에서 웃통 벗고 뛰는 남자들이 수두룩하고 여자들도 짧은 바지에 탱크 탑만 입고 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해변에 가면 더 하죠. 그래서 얼핏 참 노출에 관대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좀 잘못된 생각인 걸 깨달았습니다. 막상 모두 벗어야 하는 샤워장이나 탈의실에서는 알몸으로 다니는 게 의외로 실례인 듯 하더군요. 모두들 큰 타월을 허리에 두르거나 피치 못할 경우에도 다들 벽으로 돌아서서 조심스럽게 옷을 벗거나 입습니다. 특히 아이들 벗은 몸을 오래 쳐다봤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딱 좋습니다. 우리 기준으로는 벗지 말아야 할 장소에서는 훌훌 잘 벗으면서 막상 벌거벗는 장소에서는 서로 안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사실 잘 이해가 안가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디포짓?…..신용카드 사용내역? 청구내역?
미국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이 굴뚝인데 항상 가슴에 돌을 던지는 게 있습니다. 바로 ‘디포짓(deposit)’이죠. 우리로 따지면 일종의 보증금인데 처음 도착하면 이게 꽤 부담이 됩니다. 우선 집에 입주할 때 한 달 치 정도 집세를 디포짓으로 맡기게 됩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개통하면 또 몇 백 달러의 디포짓을 내야하죠. 물론 프리 페이드 폰(선불 폰)을 사용하면 이런 디파짓을 안내도 됩니다만 싸게 쓰는 만큼 또 단점도 있습니다. 여기에다 제가 사는 동네의 경우 전기를 개통해도 디포짓을 내야 합니다. 물론 나중에 돌려받는 돈이니 장기적으로 볼 때는 큰 손해는 아니지만 일단 돈이 묶이는데다 돌려받는 과정도 번거롭습니다. 대부분 수표로 돌려받아야 하는데 귀국 시점과 잘 안 맞는 경우가 많아서 귀국 후 다른 사람에게 수신을 부탁 한 뒤 다시 한화로 보내 달라고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좀 여유가 있는 분들은 디포짓을 그냥 포기하던지 아니면 남아 있을 후배나 동료에게 받아서 잘 사용하라고 인심 쓰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사실 액수가 크다 보니 이런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이런 디포짓이 붙는 또 하나의 경우가 호텔입니다. 호텔에서 체크 인 할 때 신용카드를 제시하면 숙박료 외에 몇 십 달러에서 많게는 몇 백 달러까지 선 결제를 합니다. 예를 들면 예약 시 신고 안한 추가 인원이 드러나거나 애완동물을 동반했을 경우 또는 기물을 파손했을 경우를 대비한 거죠. 사실 우리나라도 호텔 투숙 시 신용카드를 오픈 하죠. 이것도 일종의 디포짓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점은 미국 호텔은 일정 액수를 먼저 결제한 뒤에 문제가 없으면 나중에 체크 인 할 때 취소승인을 하는 수순을 밟습니다. 미국의 모든 호텔이 다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묶었던 호텔은 모두 이런 절차를 거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처음에는 무지하게 헛갈리더군요. “체크인시 동반자 어쩌구 애완동물 저쩌구 얘기하면서 얼마 얼마다” 하는 설명은 알아들었는데 이게 선 결제하겠다라는 뜻인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돌아온 뒤 정산을 하는 과정에서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보니 묶었던 호텔마다 모두 몇 십 달러, 몇 백 달러씩 추가결제가 돼 있는 걸 발견하면서 끙끙 앓기 시작하게 됩니다. 부당 요금을 받은 거 같은데 항의하려니 전화 영어가 짧아 자신이 없고.(미국에서 겪는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전화 영어 통화입니다.) 그래도 한두 푼이 아닌 이상 가만있을 수 없어 용기를 내 전화를 들었습니다. “당신네 호텔이 숙박료를 잘못 계산한 거 같다. 어떻게 돌려받아야 하냐” 등등 영어로 외워서 전화를 걸면 일단 질문은 되는데 그쪽에서 ‘두두 다다’ 대답하는 영어를 알아듣기가 사실 쉽지 않더군요. 아무튼 자기네는 추가 요금 받은 거 없고 딱 받을 것만 받았다고 얘기하는데 속으로 정말 눈물이 날 만큼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호텔 체인 본사 고객센터에 이메일을 보내 자초지종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추신에다 답변 내용은 꼭 이메일로 알려주고 전화는 어려우니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죠. 그랬더니 즉시 다음과 같은 메일이 오더군요. “역시 본사는 다르구나. 신속하군” 하면서 반가운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안 한다 안 해”라고 외치며 다시 묶었던 호텔들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그중 한 호텔 직원이 아주 천천히 차근차근히 영어로 설명해줬습니다. “자기네들도 그런 항의 전화를 많이 받고 있는데 체크 아웃 시 문제가 없으면 모두 취소승인을 했다. 실제로 청구되지는 않을 거다. 외국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전산상의 문제가 있는지 사용내역만 남고 취소내역은 뜨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취소 확실히 했으니 걱정 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며칠 뒤 신용카드 청구서 내역을 살펴봤더니 딱 숙박요금만 결제되고 체크 인 디포짓은 청구되지 않았습니다. 호텔이 바가지 씌웠다고 화를 냈지만 결국은 호텔 시스템을 잘 몰랐던 저의 실수였습니다. 그리고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청구내역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몰랐던 거죠. 하지만 신용카드 사용내역에 왜 취소 내역은 띄지 않는지 아직 의문입니다. 취소 내역만 인터넷에 바로 떠도 이런 고생은 안했을 텐데 싶기는 합니다. 혹 미국에서 호텔 투숙 시 이런 문제를 겪으신다면 당황하지 마시고 차분히 살펴보시면 될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