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은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2배나 많은 잘 사는 나라지만 ‘마이카’를 가진 국민은 많지 않습
니다. 싱가폴에서 독일의 유명 메이커 차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상당한 부유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싱가
폴의 자동차 가격은 한국의 2배라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바로 차량등록증(COE, Certificates of
Entitlement) 제도 때문입니다.
싱가폴 정부는 차량 대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차량 등록 쿼터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총량을 정하고 이것을 넘어서면 등록을 해주지 않습니다. 싱가폴에서 차를 살 때는 반드시 COE도
함께 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COE의 가격이 어마어마합니다. 싱가폴 교통청(LTA)이 2015년 12월 21일 기준 고시한 COE
가격은 배기량 1600cc 이하가 5만7000싱가폴달러(약 4760만원), 1600cc 초과는 6만싱가폴달러(약 5110만
원)나 됩니다. COE 가격은 차량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하는데 최근 2년 간 평균 5만싱가폴달러 수준
으로 웬만한 중형차 가격과 맞먹습니다.
실제 싱가폴에서 현대 소나타8 2.0(한국의 NF소나타 2.0)을 구입하려면 차량가격 7만3000 싱가폴달러
(각종할인 제외)에다 1600cc 초과 COE 가격 6만 싱가폴달러를 더해 13만3000 싱가폴달러가 듭니다.
한국 돈으로 약 1억1100만원이나 합니다.
한국에서 인기 많은 벤츠는 싱가폴에서도 부의 상징입니다. 싱가폴의 벤츠 구입 가격(COE 포함)은 대략
C200가 20만싱가폴달러(약 1억6700만원), E250는 27만싱가폴달러(2억2550만원), S350는 45만싱가폴달러
(3억7580만원) 수준입니다. 한국에서도 비싼 차들이지만 싱가폴에서는 그 이상입니다. 물론 자동차 딜러
가 ‘COE 리베이트’라는 명목으로 할인을 해 주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내려가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습니다.
COE는 한 번 구입하면 10년 간 유효합니다. COE가 만료되면 폐차하거나 갱신해야 합니다. 중고차를 구
입 할 때도 해당 차량의 COE를 인수하게 됩니다. 4년 된 중고차로 산다고 하면 총 COE 금액 중 6년치
를 함께 지불해야 합니다. 즉 매도자에게 중고차 가격과 함께 6년 치 COE 금액도 지불해야 합니다. 차량
명의 이전을 할 때 COE 가격을 정확하게 계산해 주기 때문에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COE의 개념을 모르고 있다가 싼 맛에 COE 기간이 얼마 안 남은 중고차를 사게 되면 뒷통수를 맞습
니다. ‘가격이 싸서 중고차를 샀는데 COE 기간이 6개월 밖에 안 남았다’라고 하면 6개월 뒤 COE를 새로
구입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집니다. 따라서 중고차를 구입할 때 COE의 남은 기간을
꼭 확인해야 합니다. 모터사이클도 COE가 있어야 하며, 가격이 자동차보다 훨씬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6500 싱가폴달러(약 540만원, 2015년 12월 21일 기준)이나 합니다.
COE 가격은 매주 싱가폴 교통청이 고시합니다. 이 가격에 싱가폴 교통청(LTA) 홈페이지와 DBS, UOB,
OCBC 등 싱가폴 주요 은행의 인터넷 뱅킹을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오픈 비딩 시스템’을 통해
입찰하고 낙찰받는 방식으로 매주 진행됩니다. 자동차 딜러를 통해 대리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따로 수수료는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COE는 싱가폴 경제를 살펴보는 주요 지표이기도 합니다. 경기가 좋아져서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이 많
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심리가 꺾여 자동차가 안 팔리면 가격이 내려갑니다. 1990년 COE 제도가
도입된 이후 초창기에는 투기열풍으로 1600cc COE 가격이 10만싱가폴달러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침체됐을 때는 1600cc 초과 COE 가격이 0 싱가폴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COE로 재테크를 한 사람도 얘기도 종종 들립니다. 자동차를 살 때 COE 가격이 3만 싱가폴달러였는데
이후 경기호황과 함께 COE 가격이 껑충 뛰어서 5만 싱가폴달러에 중고차를 팔았다면 가만히 앉아서 2만
싱가폴 달러를 버는 셈입니다. 반대인 경우는 손해를 감수하고 차를 팔던지 아니면 10년 간 차를 사용하
고 COE를 반납하던지 해야 합니다. COE 만기가 돼 반납할 경우 일정 부분을 되돌려 받는다고 합니다.
COE 가격이 부담되다보니 싱가폴에 있는 한국 주재원들은 리스를 많이 이용합니다만 이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인 사이트에서 올라오는 광고글들을 보면 10년 된 1600cc 일본 차가 한 달에 보험료
포함해 한국 돈으로 약 120만원 리스료를 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싱가폴은 자동차가 매우 비싼 나라라
는 생각이 듭니다.
차량 소유를 규제하는 대신 빠르고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싱가폴에서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게 여러모로 속 편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