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싱글을 위한 런던 정착 안내서 – 집 구하기 편

by

 


이 글은 나처럼 영국 런던에 홀로 떨어질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게다가 나처럼 해외 유학 및
체류 경험이 없는 초보를 위한 안내서다. 깨볶는 신혼부부가 로맨틱 데이트를 즐길 곳, 아이가
원어민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물 좋은 학교, 4인 가족 평균 생활비 등이 궁금하신 분들
에겐 큰 도움이 안될 지 모른다. 언론인 연수 90% 이상이 미국, 그것도 동서부의 학군 좋은 도시
몇곳에 쏠리는 걸 감안하면 이 글이 도움될 이가 많지는 않을 듯하다. 그래도 나처럼 정보에
목마른 고군분투 런던 싱글들을 위해 몇가지 정착 팁을 남기고자 한다.


연수자 선정의 기쁨은 잠시. 그나저나 1년간 어디서 산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다.
런던 물가가 스위스 취리히와 더불어 세계 1,2위를 다툰다는 것은 잘 알려진 터.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없듯 교통이 편하면 주변이 시끄럽고, 조용하고 쾌적하면 방이 코딱지 만하다.
그나마 숨쉬고 살만한 방은 연수 지원금을 통째 바쳐야 할 정도다.(대학 기숙사가 대안일 수
있지만 사실 꽤 비싸다). 결론은 선택과 집중이다.


내 경우엔 쾌적함보다 편의성을 우위에 뒀다. 어차피 자주 여행 다니다보면 집 비울 일도 적잖을
테고 넓은 방 비싸게 얻어 비워두느니 내 한몸 쉴 공간이 최대한 런던 중심에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1존 끄트머리 빅토리아라인 핌리코(pimlico)역에 그야말로 고시원 같은 방을 얻었다.
2존까지도 괜찮다. 어차피 오이스터 카드로 쓰는 교통비는 1,2존까진 똑같이 커버된다.
골드스미스 대학에 인접한 캐나다워터나 시내접근성이 좋은 스위스코티지 등이 2존이면서 인기가
많은 지역이다. 당연히 방값은 2존, 3존으로 나갈 수록 낮아진다.


그런데 어떻게 구하느냐. 사전답사를 통해 집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쁜 기자생활에 그런
호사가 있을리 없다. 방법은 두가지. 일단 이민가방 들고 무조건 도착한 뒤 민박이나 호텔에
머물면서 발바닥이 마르고 닳도록 뷰잉(viewing) 다니는 것. 아니면 무턱대고 인터넷을 통해
구한 다음 가서 살아보고 옮기는 것. 난 후자를 택했다. ‘아니 그래도 큰돈 주고 살 집을 어떻게
보지도 않고 결정해?’ 런던 싱글이라면 가능하다.


싱글의 장점은 민첩성과 기동력. 런던은 여느 대도시와 비교해서도 들고 나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선 월세(p/m)가 아니라 주세(p/w)가 기준이 된다. 그만큼 최소 계약기간(minimum stay)이
길지 않고(많은 경우 3주) 보증금(deposit)도 많지 않다. 약속된 기간에 맞춰 미리 고지만 하면
(notice) 방을 빼기가 쉽다. 즉 살아보고 옮겨도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단 조건이 있다. 옮길 때 가벼워야 한다. 평생 살기라도 할 것처럼 짐을 퍼질렀다간 이사 몇번
하다 등골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런던의 집들은 여느 유럽 주택처럼 연식이 오래 돼 엘리
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다) 짐을 어떻게 줄이느냐. 있는 짐을 줄일 순 없다. 만들지 않으면 된다.
즉 세간살이를 장만하지 않기로 한다. 한국식 빌트인 오피스텔을 런던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심지어 식기, 침구류까지 다 갖춰져 있는!!


런던에는 이런 스테이가 아주 흔하다. 그야말로 모두 갖춰져 있는(all furnished) 플랏 셰어
(flat share)가 중심가에선 일반적인 거주 형태다. 플랏은 한국식 아파트를 상상하면 된다
(실상은 연립주택 수준). 플랏 셰어는 남들과 화장실, 욕실, 주방과 가전 및 주방용품 일체를
공유하는 것이다. 자기 방이 있는 호스텔 혹은 여럿이 함께 사는 콘도를 상상하면 된다.


이런 집을 누가 세놓느냐. 대체로 영국 본주인과 계약한 세입자가 다시 세놓는(sublet) 경우가 많다.
영국에선 이런 재임대가 허용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소득을 올리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보통
방 3-4개인 플랏에 세입자가 방 하나를 쓰고 나머지를 재임대하거나 아예 원세입자가 전체 방을
하나씩 서블렛 주기도 한다. 그런데 서블렛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을 얻었다가 재임대를 해서
말썽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니 주의해야 한다. 이런 걸 방지하려면 정식 부동산을 통해서 계약서를
써야 하는데 이런 계약서 비용이 이사 비용을 상회한다 하니 자주 이용하긴 어렵다.


결국 나는 영국 유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영국사랑 사이트(www.04uk.com)을 이용했다.
이곳은 한국의 부동산 거래사이트 ‘피터팬의 방 구하기’ 같은 곳이다(각종 생활용품 거래도
활발하다). 영국 한인이 총 4만 5천명쯤 되고 이 중 3만명 가까운 절대 다수가 런던에 밀집해 있다.
몇달 간 사이트를 예의주시하고 런던 거주 경험자들로부터 들은 정보를 종합하니 이곳에서 선호하는
곳과 가격의 비례관계는 대체로 일관성이 있었다. 한차례 예약 취소 소동을 겪은 끝에 핌리코의
타운하우스 싱글룸에 안착할 수 있었다.


계약서? 정식으로 따로 쓰진 않았다. 런던대 SOAS 박사과정에 다닌다는 원세입자가 ‘보증금 얼마를
받았음’ 하는 자필 서류를 한장 건네주긴 했지만 법적으론 안 통할 것 같다. 일종의 ‘한국인 신용
담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한국인이니까 서로 믿기로 하는 거다. 원세입자는 이 집을 2년 전
부동산 에이전시를 통해 계약했다고 한다. 그는 집에 함께 살지 않고 외곽 다른 집에 살면서 가끔
관리하러 들렀다. 벽 한쪽에 청소 등과 관련된 공동생활 규칙이 적혀 있었지만 대체로 서블렛 입주자
들끼리 양해 하에 질서 있게 돌아갔다.


나의 경우 다른 입주자들도 모두 한국인 여성이었다. 학생이거나 워킹 홀리데이 신분이거나 했다.
외국인 입주자들과 함께 생활하면 영어가 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영국적 분위기상 공동생활을 한다 해도 크게 말 섞을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그런 집을
원한다면 영국사랑보다는 검트리(gumtree.co.uk)를 알아보는 게 낫다. 단 검트리의 집은 고지된 것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꽤 있다고 해서 유학생들 사이에선 복불복인 사이트로 통한다.


모든 게 갖춰져 있는 집에 입주하다보니 내가 새로 장만만한 건 침대 및 베개 커버(이불은 상비돼
있다)와 락앤락 식기 몇개, 개인 머그컵 정도다. 이런 생활용품도 영국사랑 사이트에 수시로 ‘귀국
정리 처분’ 형태로 자주 올라온다. 나는 이 벼룩시장을 통해 헤어드라이기와 다리미를 장만했다.
생활용품을 새로 살 땐 아고스(Argos)나 이케아를 많이 이용한다. 한국식 식재료는 뉴몰동으로 불리는
뉴몰든 한인타운이 가장 풍부하고 2존 골더스그린 역에도 한인마트가 두개 있다.


살아보니 런던 물가가 비싸다 해도 공산품이나 식재료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역시 집값과 교통비
가 제일 큰 부담이다. 외식은 자주 하지 않지만, 가격대별 선택의 여지가 많다. ‘영국 음식 맛없다’고
소문 났지만 대신에 각국 요리집이 다채롭게 밀집한 곳 또한 런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느 펍에서
즐길 수 있는 거품 풍부한 라거와 에일은 별다른 안주 없이도 런던의 밤을 풍요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