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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만족한 ‘캠핑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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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에서 시경캡(24시팀장)을 할 때 캠핑을 처음 경험했다. 매일 사무실에서 얼굴을 맞댄 채 일하고 늦도록 야근하고 술잔 기울이던 사회부장, 사건데스크, 사회정책팀장을 꾀어냈다. 계기가 있었다. 한 국회의원의 외동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졌을 때다. 취재 결과, 자살 동기가 불분명했다. 부모는 사회운동을 오래 해온 이들이었다. 자식과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부모 모두 무척 바빴을 뿐.


좋은 부모까진 못 되어도 아이와 함께 보낼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두달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회사에 매여 사는 남편 탓에 육아와 가사에 맞벌이까지 모두 떠안은 아이 엄마들에겐 자유시간을 줄 수 있고 아이들 자고 난 뒤엔 우리끼리 술 한 잔 하며 쉬는 시간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마침 사회정책팀장이 캠핑 마니아였다. 공교롭게도 사회부장과 사건데스크, 나는 외동아들을 뒀고 사회정책팀장은 아들만 둘이었으니 나름대로 맞춤했던 셈이다.


그렇게 1년간 덜 바쁜 주말을 택해 서너차례 오지(?) 캠핑을 다녀왔다. 캠핑 마니아가 고른 곳은 화장실도 없고 먹을 물도 없는 곳들이었다. 갖춰진 곳은 진정한 캠핑장이 아니라는 센 목소리를 꺾긴 어려웠다. 풍광은 좋았으나 여러 상자 들고 온 생수로 씻고 구덩이 파 일을 봐야 하는 매우 불편한 곳이었음에도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 했다.


미국이 캠핑 천국이라는 말을 어렴풋이 들어왔지만, 캠핑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니다. 막연히 여행을 많이 하며 가족과 함께 부대끼겠다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아이 학교는 엄격했다. 여행을 위해 학교를 빠지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추수감사절 방학, 성탄절·겨울 방학, 봄 방학 등 대개 1주일에서 길어야 2주 남짓한 휴가기간을 거쳐야 기나긴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여름방학 땐 이미 귀국 준비를 병행해야 할 터. 주말 23일의 짬을 내서 캠핑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였다.


우선 아내를 설득하는 게 첫 관문이었다. 캠핑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야외생활이 아무래도 불편할 텐데 특히 꺼리는 것이 지저분한 화장실과 불편한 잠자리, 벌레들이 아닐까. 긴 여행을 할 시간이 많지 않고 딱히 할 일이 없는 주말에 캠핑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 일단 한 번이라도 다녀와 보자,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캠핑이 많이 발달한 곳이다, 라며 설득했다.


다음은 장소와 장비의 문제. 장소를 두루 검색하고 찾아보니 가장 가기 편한 곳이 주립공원 캠핑장이었다. 인터넷 사이트와 예약 시스템이 놀라울 정도로 잘 마련돼 있었다. 공원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대개 캠핑 사이트와 캐빈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8명까지 숙박할 수 있는 캐빈은 가격이 싸지 않았지만 캠핑 사이트의 경우는 1박에 30달러 수준, 통상 주말엔 2박을 기본으로 예약이 가능했다. 한 번 시험 삼아 다녀오기로 한 터이니 가능하면 가깝고 편한 곳으로 잡아야 했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공원을 염두에 뒀다.


공원 시설을 보니, 전기와 물은 캠핑 사이트마다 마련돼 있었다.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Fire Ring)과 테이블도 설치돼 있었다. 나머지 가장 기본적인 장비는 텐트. 식기와 이불은 집에서 쓰는 것들을 차에 실어가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 번 시험 삼아 캠핑 가는 데 텐트를 마련하기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대학에서 캠핑 장비를 대여해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살펴보니, 4인용 텐트를 하루 빌리는 데 10달러였다. 주말은 2박이 기본이니 20달러, 이틀에 10달러하는 해먹, 랜턴(8달러), 침낭 3(24달러), 슬리핑 패드 3(12달러). 대략 캠핑 용품을 학교에서 빌리는 데만 70~80달러가 들었다. 생각보다 대여비용이 적지 않았던 셈. 게다가 주차장과 캠핑 용품 대여 장소 거리가 멀어 빌리고 반납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2박에 60달러를 내고 캠핑장을 예약했다. 대부분 캠핑 사이트는 자리를 미리 정해 예약하지 않고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는 방식이다. 캠핑 사이트 이용료 외에 주립공원 주차비를 따로 내야 한다. 하루에 5달러. 자주 이용할 셈이라면 연간 이용료 50달러를 한 번에 내면 주차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9월 마지막 금요일 오후,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Fort Yargo State Park에 도착했다. 아이 학교가 끝나고 출발한 터라 오후 4시가 넘었는데 공원 사무실엔 이미 사람이 없었다. 대신 캠핑 사이트를 잡은 뒤 캠핑장 호스트에게 등록(check-in)하라고 적혀 있었다. 캠핑장 호스트는 대개 할아버지들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 또한 자원봉사자였다. 보통 이들은 RV(우리는 흔히 캐러밴이라 부르는 버스 크기의 커다란 캠핑카)를 대놓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호스트 일을 한다. 불을 지필 수 있는 장작(Firewood)도 한 무더기에 5달러를 받고 캠핑장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숲에 널려 있는 작은 버려진 나무들을 주울 수 있으니 장작 구입은 2~3 무더기면 넉넉하다.


10여 캠핑 사이트 중 비어있는 몇 곳을 둘러본 뒤 적당한 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자리가 널찍해 미니밴을 옆에 대고 텐트를 치고 나서도 공간은 넉넉했다. 이웃 캠퍼들과 거리도 서로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 충분했다. 다만 텐트 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 대부분 RV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점, 대다수 캠퍼들은 호스트와 비슷한 노인들이었다는 것 등이 예상과 달랐다. 그러나 2박 캠핑을 하는 데 문제될 만한 것은 없었다. 여느 캠퍼들처럼 장작불을 지펴 고기를 굽고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밤하늘 별도 보고 텐트에서 보드게임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첫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내도 만족스러워 했다. 무엇보다 아내의 승인(!)이 떨어진 건, 화장실 등의 시설 때문이었다. 정말 깨끗했다. 주기적으로 호스트가 화장실 관리를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화장실에는 샤워시설도 마련돼 있었다. 초가을인데도 화장실과 샤워실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러 주립공원 캠핑장을 가봐도 화장실의 청결함은 한결 같았다.


번거롭게 매번 대여하기 어려운 캠핑 장비 일부를 구입하기로 하고, 살펴봤다. 아마존닷컴을 비롯해 다양한 캠핑 장비 판매업체들을 뒤져보니 한국과는 캠핑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품이 없었다. 한국에선 수백만원을 넘어서는 텐트가 그리 특별하지 않은데 이곳에선 적절한 가격대의 텐트가 일반적이다. 여러모로 살펴보고 300달러 정도에 3명이 넉넉히 이용할 수 있는 평범한 텐트를 구입하고 슬리핑 매트와 침낭, 버너 등도 적절한 수준으로 갖췄다. 쓰다가 팔고 가든 한국에 가져가든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구입한 텐트는 지난 가을 서너차례 이용했다. 수십곳의 캠핑장이 있는 주립공원 중 집에서 가까운 순으로 캠핑을 떠났다. 캠핑장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호수가 있거나 폭포가 있는 곳도 있고 산세가 수려한 트레일을 갖춘 곳도 있었다. 노하우가 쌓여가면서 아이의 자전거를 싣고 가기도 하고 노트북 컴퓨터에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받아 가을밤 텐트 안에서 함께 보기도 했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집에 있는 전기장판을 들고 가서 이용하기도 했다. 선이 긴 멀티탭을 활용해 외부 전원을 연결해 몸을 지지며 잠잘 수 있다.


날씨를 잘 살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10월 말 Moccasin Creek State Park에서 캠핑을 할 땐 둘째날 밤부터 셋째날 아침까지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 떨어지는 텐트 속에서 지내는 운치(?)도 적잖이 쏠쏠하지만 다음날 아침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 문제였다. 차를 텐트 옆에 댈 수 있으므로 그나마 비를 많이 맞지 않고 정리할 수 있었다. 캠핑장을 예약하고 나서 날씨 예보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되 사흘 전까지는 수수료 없이 예약을 취소할 수 있다.


조지아주는 한국처럼 겨울이 춥진 않지만 텐트를 치고 생활하기엔 아무래도 무리다. 그래서 겨울엔 일부 주립공원에 있는 몽골식 천막(Yurt)도 이용해봤다. 최대 6명까지 잘 수 있는 시설인데 캐빈보다는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천막 내부에 난방시설도 있고 천장엔 작은 구멍이 투명 플라스틱으로 처리돼 있어 밤하늘까지 올려다 보인다. 텐트를 치는 대신 천막을 이용하는 것을 제외하곤 다른 캠핑 사이트와 똑같다. 비용은 1박에 70달러가량.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 서부 여행 때 무척 부러운 광경도 목격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이동하던 중 바닷가 주립공원(California State Beach)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드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캠퍼들이 가득했다. 물론 RV가 많았지만 텐트도 적지 않은 곳이었다. 서부여행을 계획하며 캠핑 생각을 못한 게 무척 아쉬웠다.


아이가 여름방학을 하는 5월 이후론 좀 더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중부를 종단해 고교시절 친구가 사는 캐나다 위니펙까지 다녀올 생각이다. 비용을 아끼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해 텐트를 싣고 다니며 캠핑도 할 계획이다. 사막이나 바닷가 공원에서 텐트 치고 밥 해먹을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도 긴장되기도 짜릿하기도 하다.